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초청으로 독일에 잠시 거주할 때가 57세였다. 당시 필자는 하이델베르크의 네카 강위쪽‘하이덱거의 숲’이라일컫는풍광좋은그이의거처에 동료들과 함께 찾아가 술도 얻어 마시고 여행도 다녔다. 그에게는 혹 그때가 잠시 다가온 인생의 호시절이 아니었을까. 4년 후인 그는 환갑을 앞두고 또다시 구속되는 수모를 겪는다. 한겨레신문 창간기념으로 북한취재단 방북을 기획했다는 이유였다. 필경 그의 사주엔 입옥살(入獄煞)이 단단히 끼었던지 이미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36살인1964년에 필화사건 ‘(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 안’이란 지극히 사실적인 기사 때문이었다.)으로 구속된 것을 필두로 그 후 끊임없이 교도소행과 언론사로부터의 강제해직과 교수직 강제해직을 번갈아 당했다. 1977년엔 그의 책『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로 구속·기소되어 징역형2년을선고받는다. 물론반공법위반이었다. 독재정권 시절 그들이 저지른 현대판 분서갱유로 무수한 책들이 이른바 판금도서목록에 오르는데 박정희 정권시 대표적인 판금도서 제일 앞에는 그의 책과 이름이 적혀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지식인들은 책을 읽으며 그들이 꿈꾸는 민주주의의 세상과 만난다. 우리의 비루먹은 지성은 올바르고 균형 잡힌 지적 인식욕에늘목말라했다. 그래서몰래숨죽이며판금된책을구해 읽으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갔던 것이다. 편견의 장막을 걷어버리는데 그의 글만큼 명확한 근거와 진실만이 가질수있는도도함에견줄만한게드물던시절이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의 왕성한 집필은 뇌출혈로 인한 우측반신마비로 종언을 고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시대의 전조를 꿰뚫고 예언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안에 우뚝 서 있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향방 잃은 우리들을 때론 준엄하고 때론 자애롭게 다독인다. 그는 지금 경기도 수리산 자락에서 격변의 역사를 살아오느라 헤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조용히 생의 여적(餘滴)을 음미하는 중일 터이다. 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새삼 그립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새삼 그립다.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