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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3000`이 바라는 세상 평화, 화해, 나눔

 
 
한껏 퍼붓지도 못하는 장마 같지 않은 장마철 날씨는 ‘덥다’란 표현이 맞지 않다.‘ 후텁지근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서울 시청광장에 형형색색 깃발들이 눈에 들어온다. 6월 25일, 한국전쟁이라는 미묘한 역사적 시기 시청광장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다. 그런 시청광장의 모습 속에서 무려 50여 년 전 소설 <광장>의 주인공인 이명훈이 떠올랐다. 소설 속 이명준이 혼란스러워하던 ‘광장’과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저‘광장’을 비유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런지, 이제 그만 저 틀을 벗어나서 화해할 순 없을까. 취재 약속이 돼 있는‘평화3000’으로가는 택시 안에서 잠깐 동안 스친 생각들 때문에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념을 넘어선 인도적 지원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건 사실이에요.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여러 정보나 경로, 최근의 북한상황, 특히 중국이나 제 3국을 통해 탈북한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살펴 볼 때 식량난부터 모든 생활 기반이 북한 스스로 자립할 상황이 안 되는 게 맞아요. 북한주민들이 1년을 살려면 쌀 520만 톤 정도가 필요한데 140만 톤이 부족하다고 해요. 먹는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데 다른 문제야 뭐 안 봐도…….”
북한에 식량 지원과 함께 문화, 체육교류를 하는‘평화 3000’박창일(49세) 위원장의 조심스런 대답이다. ‘평화 3000’은 순수 민간단체로서 활동하지만 사업 내용상 일 부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는 대북지원사업을 온전히 할 수 없다. 물론 정부 지원 때문에 북한에 대한 표현이 조심스러운 것은 아니다. 순수 민간단체들이 북한돕기운동을 하
면 마치‘퍼주기 식’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양측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런 민간단체들의 활동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좀 더 부드럽게,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서 무조건 식량을 지원해주는 일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평양시 장충동에 콩우유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땅과 건물은 북한이 남에서는 식량의 원료인 콩과 기술(기계)을 대서 남북합작 콩우유 공장을 설립하도록 했다. 콩우유공장에서 하루에 200㎖ 500잔이 생산돼 주변 소학교, 병원, 유치원, 탁아소, 노인들에게 배급된다.‘ 평화3000’에서는 지어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우유가 실제 북한인민들에게 제대로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1년에 2~3회 방문하여 모니터링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양 남포시에 두부공장을 두 개 설립했다. 이 또한 콩우유공장과 같은 남북합작 작품이다.
한 공장에서 하루에 800모가 생산돼 주민들에게 분배된다. 육류섭취가 불가능하니 단백질로라도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기 위해서다. 이 사업들을 진행하며 콩 원료비만해도 꽤 들어갔는데 앞으로 곡류값이 더 오른다는 이야기에 박 위원장이 내심 고민하는 표정이다. 원료 부족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들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한발 더 가까이
 
“정치는 남과 북의 견해차가 크니까 삐걱거리는 수가 많아요. 정권 분위기나 정책노선 또는 주변 강대국들과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 때문에 시간과 조율이 좀 걸리는 일이죠. 하지만 비정치적인 것으로 접근하면 남북은 또 다른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체육분야 였습니다.”
‘평화3000’은 북한에서 인기있는 체육 종목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2006년에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때 북한의 빙상선수들이 입고 참가한 빙상복이 바로‘평화3000’에서 지원해 준 것이다. 올림픽 규정 상 쇼트트랙에 참석하는 선수 복장이 스케이트 날 같은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당시 그 규정에 맞는 빙상복이 없어서 참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화3000’의 지원으로 북한 선수들이 쇼트트랙에 참석을 할 수 있었다며 당시 북한 선수들이 너무 좋아했고 고마워했다는 박 위원장의 말이다.
남북한에서 모두 인기 있는 종목인 축구가 남북교류의 가장‘적합한’분야라고 판단한 ‘평화3000’은 축구로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북한에 축구장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한 북한 상황에 제대로 된 축구경기장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축구장 조성은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가 아닌 남한 민간단체인‘평화3000’과 평양시 체육단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사업은 인천광역시가 동참해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합작 지원이라는 큰 성과를 이뤄냈다.
“아마 이 인조 잔디구장은 북한 선수들 연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10년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잔디구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박 위원장은 남북이 교류하기 위해서는 식량을 지원해주는 일도 시급하지만 이처럼 비정치적인 분야를 통해야 오래 쌓인 벽이 무너진다고 판단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6?15행사 때 금강산에 다녀온 느낌을 말하면서 이런 민간단체들의 교류와 활동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변화하는 북한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금강산 바위에‘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라고 빨간 페인트로 써 놓은 걸 볼 수 있었는데 금년 행사 때 그 글씨를 막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민간교류가 정치나 이념적 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평화, 화해, 나눔
 
 
민간단체이면서 하는 일이 워낙 활발한데다‘평화3000’ 이란 이름도 내심 궁금했다. 박 위원장 말인즉슨 단체 이름에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큰 포부가 담겨있다고 했다. ‘평화3000’이라 함은 새로운 시대 뉴밀레니엄이란 3,000년에는‘평화’, 남북이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화해 하자는‘화해’, 매월 1천명이 넘는 후원회원들이 보내주는 1인당 성금이 3,000원이란‘나눔’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평화3000’이란 단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평화3000’이 대북 인도사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싸이클론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버마 피해자들에게 성금을 보내 주거나 베트남 메콩강 하류 번쩨성이란 빈민 지역에 주택개조와 화장실 마련, 식수 공급을 위한 수도시설 설비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인종과 국경,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그들의‘평화’‘화해’,‘ 나눔’의 실천은 가장 가까운북한의 인도적 지원 사업뿐 아니라 앞으로도 제 3세계 빈민 국가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할 예정이다.
 
그들은 또 남북 평화를 위한 가족 단위의 평화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경의선 열차를 타고 도라산 역에서 내려 몸으로‘평화’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달려라 꼬마 열차, 유럽까지 쭉>이란 프로그램은 지난 2005년 해방 60주년 정부 공식행사에 채택되어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박 위원장은 가톨릭 사제다. 그는 지난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지내며‘교회’라는 틀 속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종교’를 뛰어 넘어 조금 더 외향을 넓힐 수 있는 NGO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듬해 곧바로‘평화 3000’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본당으로 가실 생각은 없으세요?”인터뷰 말미에 넌지시 웃으면서 물었다. “허허, 본당은 이제…….”어쩌면그는 못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사제이지만 교회 밖에서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글·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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