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은 첫째 참정권의 확대 요구를 점차 수용하는 것이었고 둘째 인민 주권의 행사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으로 규정했고 그렇게 제도화시킨 것이다. 대중의 정치적 진출을 허용하면서 그것의급진화를방지하기위한기제로서선거권의부분적인확장과대의제가도입되었다. 그러한 과정 자체는 지배계급의 탄압 속에서 노동계급과 빈민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희생을 통해 겨우 달성되었다. 19세기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프랑스의 여러 혁명들은 그러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부르주아들은 재산권, 교육 정도에 따라 참정권을 제한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몇 차례에 걸친 참정권 투쟁을 거친 19세기 후반에서야 겨우 남성 보통선거가 도입되었고 프랑스는 몇 차례에 걸친 혁명과 반혁명을 통해 달성할 수 있었다. 미국은 내전을 통해 남성 보통선거를 달성했지만 인종차별주의는 20세기 중반까지 지속적인 짐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한편, 19세기 유럽의 산업화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숫자가 확대되었고 이들의 정치적 투쟁은 민주주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이 1863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되었다. 보통선거쟁취를 중시한 라살의 급진 민주주의노선과 사회주의를 강조하면서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리프크네히트와 베벨의 노선이 합해져 1875년에 강력한 독일 사회민주당이 만들어졌다. 1850년대 유럽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했다. 어느 나라도 남성 보통선거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영국, 북유럽, 네덜란드 등에서는 간접선거로 대의제 의회가 구성되었지만 엄격한 연령 제한, 재산 자격의 기준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졌다. 게다가 임명이나 세습으로 구성된 상원이 대의제 의회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영국은 인구 2천 7백만 명에 선거 유권자 수는 1백만 명 정도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