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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진단 넘어 ‘민주주의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위기 진단 넘어  ‘민주주의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글  이승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전문위원) / ishi@kdemo.or.kr

UN은 지금부터 불과 35년 후인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인간들이 각자의 생명유지를 위해 나눌 수 있는 자원은 한계에 다다랐다. 최근 50년간 세계 인구의 계속되는 증가와 함께 무분별한 산업화와 자원개발, 소비촉진, 그리고 환경파괴 및 지구온난화 악화는 우리의 삶을 더욱 어렵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성장 중심 산업화가 계속해서 세계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지속가능개발위원이자 서리 대학교 교수인 팀 잭슨의 『성장 없는 번영』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성장 중심 산업화가 지속될 경우 세계경제는 2100년에는 1950년보다 80배 이상 성장할 것이고, 자연 생태계는 더욱 심각하게 파괴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2050년의 시점에서 최소한 OECD 국가에서만이라도 산업화의 풍요로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 규모가 지금보다 15배(1950년의 75배 이상)는 되어야 한다. 21세기 말에는 경제 규모가 1950년 규모의 200배에 달할 것이라고 하니 이 상태, 이 속도가 계속되는 경제성장이 가져올 자연 생태계의 파괴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 될 것이다. 

현재도 어려운데 미래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 기피가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인구를 통제하면 쾌적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체주의적이고 배제적인 상상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성장 중심 산업화의 심각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그리고 서구와 제3세계의 산업화 속도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1970년대부터 심각한 경고가 이어졌다. 대량생산을 위한 DDT 살충제 사용이 가져온 환경파괴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환경운동의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해가 이미 1962년이었다.  

 

성장 중심의 과잉 생산과 소비의 폐해

대량생산과 소비가 활성화되자 생산품의 원거리 수송을 위해 살충제, 방부제를 사용함은 물론 수많은 화학적 가공을 하게 됐다. 또 대형 발전소 건설 등으로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그럼에도 생산자 즉 기업들은 막대한 양의 생산품을 소비하기 위해서 지역과 공동체별로 발전해온 전통적 생활양식과 소비문화를 해체시키고, ‘근대화’와 ‘지구적 표준’으로 포장된 ‘획일화’, ‘규격과 통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가정 냉장고, 마이 카, 러닝머신, 대형 AV시스템 등 필수품으로 여기지 않았던 상품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결합된 제품들이 매일매일 상품으로 쏟아져 나오다보니 고장난 상품에 대한 수리보다는 신상품 교환에 익숙해지면서 상품의 평균 사용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넘쳐나는 폐기물과 쓰레기가 결국 ‘성장 중심 산업화’의 상징이자 지표가 되고 있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선 더 큰 시장과 더 많은 상품이 필요하기에 의료, 교육, 주택과 같은 공공재까지도 사영화되고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것까지 생명을 담보로 ‘구매’해야 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밀양 765KV 송전탑 사태’와 같은 국가-기업-전력 소비자의 카르텔이 만들어 낸 처절한 아픔이 생겨나기도 한다.   

성장 중심의 과잉 생산과 소비는 심각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수없이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이 생계형 자살을 부추기는 ‘가계 부채’의 심각성이다. 한국은 알다시피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이며, 2013년 평균 매일 약 40명이 자살한다. 유서 등을 통해 배경을 살펴보면 ‘부채’, 그리고 그와 관련한 경제적 압박이나 학업 스트레스 등이 가장 흔한 자살 동기다. 교육, 의료, 주택과 관련 부채가 많다.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SUV, 건강보조 식품 등의 유행 상품이 마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제품처럼 다가오면서 개개인은 더 많은 소비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일자리와 임금이 한정된 상태에서 강요되는 소비는 결국 부채를 늘리는 방법만으로 가능하다. 

부채를 동원하는 소비,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성장 중심 산업화를 유지시키는 거대한 동력이자 구조라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전 세계 금융 위기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성장 중심 산업화는 환경문제와 국가 간 불균형을 넘어서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의 세계화로 이어진다. 성장 속도와 규모는 오십 년 전에 비할 바 없이 엄청나게 확대되었지만 오히려 우리의 현실은 불안, 빈곤, 위험의 늪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자원과 에너지를 자율적으로 생산·관리하지 못한 채, 강요된 소비의 늪에서 부채에 허덕이다 보면 시민들이 최후에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정치’다. 민주주의와 정치의 상실은 시민들의 자율적 공동체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생태적 공존의 법칙을 찾아서

‘성장’은 현재 위기의 원인이다. 성장은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윤리적 접근이 아니라 성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즉 ‘탈성장’을 중심에 둔 생태적 공존의 법칙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정치,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자율적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 한국민주주의연구소의 새로운 연구과제는 이러한 위기에 대한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 민주주의 모델을 그려 나가려고 한다. 탈성장과 생태주의적 가치를 중심에 두면서, 지속가능하고 동시에 공존가능한 공동체의 설계도를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이 설계는 지난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어깨 위에 올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민주화 운동의 궤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양한 지역적 전통과 지혜로운 경험들을 민주적으로 복원시키고, 경쟁이 아닌 연대를 사회적 원리로 세우는 일. 이렇게 민주화의 새로운 궤도를 그리는 것은 대규모 성장 중심 산업화를 배경으로 하는 대의제·엘리트 민주주의와 포괄 정당식 의회정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와 민주주의의 운영 원리를 함께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권위주의적 사회질서를 넘어서 ‘나’ 스스로 나의 생명을 관리하고 나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자유로운 ‘내’가 자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준비하고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키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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