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 열려있고 모두와 함께하는 ‘행동하는 박물관’
모두에 열려있고 모두와 함께하는 ‘행동하는 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을 기억하는 공간
글 이지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교육홍보팀장) / war_women@hanmail.net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1994년 ‘여성과전쟁사료관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의 디딤돌을 놓게 된다. 이후 서대문에 위치해 있던 정대협 사무실 내에 전시와 교육공간으로서 교육관(미니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2003년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을 모시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한 추모회 및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한 점화식 개최를 진행하였다.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일은 할머니들이 겪으신 고통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하고 활동하는 것이라는 취지 아래 열린 행사였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없는 상황에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때 가장 먼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짓기 위한 후원을 시작해 주셨다.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지원금을 모아서 백만 원 혹은 이백만 원의 성금을 후원해 주었다. 한 할머니는 일부러 적금을 들어 천만 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먼저 돈을 내면 시민들이 감동받아서 우리 뒤를 이어 많이 내주겠지.” 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정대협은 그 성금을 박물관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었기에 ‘주춧돌기금’이라 이름 붙였다.
점화식 이후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2004년 12월 16일, 사회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건립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모금, 부지 마련, 건축·설계 세 분야의 사업계획을 확정하여 본격적으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개인부터 시작하여 각종 친목모임, 단체들, 그리고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에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박물관 건립 후원을 위해 일본건설위원회가 발족(2009년)되었고, 일본 현지에서 모금, 홍보, 세미나 등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주었다. 그렇게 약 9년 동안 발로 뛰어 20억 원이 넘는 기금이 모였다.
반대 여론 장애물을 넘어서다
박물관 건립을 위한 부지 선정의 조건으로 역사적 연관성, 접근성, 자연친화적 공간의 세 조건을 고려하였는데, 마침 서울시에서 서울시 소유의 땅인 서대문독립공원 내 작은 매점 자리를 부지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주었다. 그러나 2008년 11월 광복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독립공원 내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건축을 허가한 것은 몰역사적인 행위로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는 사업인가를 내주고도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박물관 건립을 바라며 주춧돌기금을 낸 피해자 할머니들 대부분은 고인이 되었다.
더 이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사업을 지연시킬 수 없게 되자 정대협은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공개증언을 한 지 20년,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1,000회가 되는 2011년에 들어서면서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서대문독립공원 부지를 보류하고 새로운 건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 시내 전역을 돌아다닌 끝에 마포구 성미산 끝자락에 있는 주택을 박물관 건물로 매입하게 되었다.
건축문화운동이라는 새로운 실험
박물관 건축에 관련해서도 기존과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의 건축 관련 NGO 중 새건축사협회와 함께 리모델링 설계를 추진하면서, 건축가들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참여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설계자는 공모를 통해서 선정하고, 건축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리모델링소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설계를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전시 기획은 직접 정대협 활동가가 맡아서 진행했고, 전시물 설치는 전시 전문 업체에 맡겨 진행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정대협의 리모델링과 전시에 정부예산 일부 지원 방침을 결의하고 5억 원을 지원해 주었다.
박물관 설계는 와이즈건축에서 담당했으며 이후 서울시 건축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무런 역사적 연고가 없는 주택가에 대지 345.52m²(약 104평)의 이층 집을 리모델링해서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전숙희 와이즈건축 대표는 상징성이 없는 공간에 좁게 자리 잡은 박물관이 오히려 의미 있다고 했다. “잡초처럼 오랜 시간 싸워온 피해자들의 처절함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건축설계자는 “상처를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공간보다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물관에 있는 정원에는 언제 와도 꽃을 볼 수 있도록 야생화를 심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박물관이 찾기도 힘든 마을 한가운데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의 말을 빌려 대답해 준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이 살아 돌아와서 1991년도까지 거의 45년을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자로 살아왔어요. 그러나 정대협 신고 전화를 통해 세상에 다시 나오기 시작하였고, 세상에 당당히 서게 되었고, 이제는 사람들 가운데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박물관이 동네 한가운데에 위치한 의미를 알아주길 바랍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이런 과정을 통해 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관하였다. “아이들이 역사를 보고 배워서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할머니들의 뜻에 따라 어린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다.
인권·평화를 엮는 ‘평화맵의 센터’
개관 이후 지금까지 박물관을 관람한 사람은 2만 5천 명을 훌쩍 넘고 있다. 방문객의 요청에 따라 지속적인 교육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자 삶의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함께 제시해 주고 있다.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역사 속에 덮으려고 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세계억인서명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하고, 단체가 방문하면 박물관 관람 후 함께 거리 홍보전을 나가기도 한다. 콩고 내전으로 인한 성폭력 피해자들과 베트남 전쟁시 한국군에 의해 피해당한 여성들에게 지원되고 있는 나비기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그 뜻을 함께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은 꾸준히 뜨겁다. 개별 학교 혹은 동아리들은 박물관 후원물품을 팔아서 다시 후원금으로 보내주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자원활동을 하는 개인별 단체별 팀들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박물관과 함께 일하고 있다. 박물관 벽면과 주변의 벽면에 벽화 그리기를 할 때는 80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박물관은 명실상부하게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와 함께하는 ‘행동하는 박물관’이 된 것이다.
박물관과 지역사회가 상호 유기체적 관계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골목길을 평화의 거리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논의 중에 있다. 앞으로는 서울 여러 지역과 연계를 맺고, 전국적으로도 특정 지역과 연계를 맺어 평화라는 이슈를 줄기로 엮는 ‘평화맵의 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연장·특별 개관을 정기적으로 사전 공지하고 있습니다. ★ 관람요금 어르신 1000원, 일반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