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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처녀 몸매’ 연예인에 열광하시나요?

당신도 ‘처녀 몸매’ 연예인에 열광하시나요?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내의 일기>

  어제부터 시작된 폭염 때문에 호진이 엉덩이와 이마에 땀띠가 나버렸다. 오늘은 호진이 친구들과 호준이네 집에 놀러 가기로 해서 동네친구 세찬이네와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폭염을 주의하라는 안내 문자메시지가 와서 더 겁이 났지만 그래도 호준이네 집 거실에 에어컨이 있으니까 시원하게 있을 수 있다.

  호진이가 잠깐 걷나 싶더니 역시나 안아달라고 조른다. 몸무게 10.5kg, 체온 36.5도(아이들은 이것보다 체온이 높기도 하다)의 호진이를 안고 가다보면 덥고 힘들어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고” 소리도 마음껏 낼 수 없다. 호진이가 어느새 그 말을 배워 버릴까봐 대신 “헛둘, 헛둘” 하며 걷는다.

  전철역까지는 7분 정도 걸리는데 반도 못 걷고 이미 지쳐버렸다. 이미 지쳐 있는 세찬이네를 만나 호준이네로 이동했다. 아이들을 내려놓자마자 세찬이 엄마와 나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30분 남짓 호준이네로 오는 동안 내 영혼이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더니 조금 정신이 든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엄마들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보따리를 펼친다. 아이들 넷이 모두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상태라 감기에 좋다는 배숙을 만드는 얘기도 하고,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나면서 해볼 만한 활동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엄마들, 아니 여자들의 공통 고민 ‘살’ 얘기를 시작했다. 

  “어쩜 살이 이렇게도 안 빠질까. 애 낳으면 빠질 줄 알았고 이렇게 힘들면 빠지겠거니 했는데 안 빠지네. 나 안 힘든 건가봐.”

  “그러게. 뱃살이랑 팔뚝 살은 왜 이렇게 안 빠지고 느는 것 같지?”

  그러다가 우리는 온유 엄마를 보며 부러워했다. 온유 엄마는 우리 중에 제일 마르고 그 흔한 뱃살도 없다.

  “아냐, 나 임신기간 동안 17kg 쪘어. 지금도 보이는 데만 날씬한 거야.”

  그 말은 우리 셋을 분노하게 했다. 

  “언니! 언니는 임신했을 때도 배만 나왔었잖아. 나머지는 붓기지 뭐.”

  “언니, 우리가 그동안 봐온 정이 있어서 (더 비난하고 싶지만) 봐주는 거야.”

  “그래. 그동안 우리가 같이 흘린 눈물이 있어서 이 정도로 참겠어.”

  결혼 전에 아이를 데리고 있는 뚱뚱한 엄마를 보고 ‘왜 저렇게 살이 쪘을까. 애는 안 주고 엄마만 먹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게으른 건지 아니면 살을 뺄 생각이 없는 건지, 여자로서 가꾸지 않고 저렇게 사는 게 괜찮을까 싶었다. 그런데 애를 낳아보니 알겠다. 

  출산 후엔 몸이 달라지는 게 사실이다. 임신기간 동안 풍선처럼 한껏 부풀었다가 푹 꺼져버린 배는 한동안 줄어드는 것 같더니 더 이상 변화가 없다. 모유수유 기간 동안 늘어버린 위장은 줄이기가 힘들었다. 또, 아이를 돌보느라 끼니를 거르거나 제때 못 먹는 때도 많다. 그러다가 밥을 먹게 돼도 아이 눈치 보느라 허겁지겁 먹게 되고, 그렇게 살찌우기 아주 좋은 습관이 만들어졌다.   

  임신기간 동안 찐 살을 빼고 싶어도 호진이를 돌보다 보면 힘이 들고 단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게다가 피곤하긴 어찌나 피곤한지 밥 먹고 얼마 안 돼서 호진이를 재우게 되면 그대로 스르르 잠들기도 한다. 너무 힘든 날이면 밤에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위안이 된다.

  살이 쪄서 우울하다. 찐 살을 옷으로 가릴 수 없는 여름이라 더 우울하다. 우울하고 더우니까 ‘치맥(치킨+맥주)’이 먹고 싶다. 8월 말에 대학 후배 결혼식에 가야 하니까 참아야겠다. 둘째가 생겼냐고 물어보면 그땐 소주가 먹고 싶을 것 같다.

#2. <남편의 반성문>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제가 딱히 반성할 일은 없겠네요. 단언컨대 아내에게 살을 빼라는 스트레스는 한 번도 준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자신부터 비만인의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죠. 살을 빼야 하는데 안 빠져서 고민이라고 아내가 우울해 할 때면, 저는 늘 괜찮다고 말해줬습니다. 위로를 하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아내는 다이어트를 해야 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가 다이어트를 확실히 좀 해야 할 상황이죠. 그런데 오늘 일기를 보니 아내의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가 봅니다.

  아내의 일기를 보고 나서 인터넷에 ‘임신 다이어트’를 검색해봤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기사 제목이 <박지윤 30kg 감량 비법 식단 '소금·설탕 금지' 다이어트 성형효과 톡톡>입니다.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지윤씨가 임신하고 몸무게가 30kg 늘었는데, 운동 없이 식이요법만으로 ‘성형수술 수준의’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이야기를 한 덕분에 인터넷에는 비슷한 기사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밖에도 20kg을 뺐다는 연예인, 15kg을 뺐다는 연예인 등 다른 사례도 끝없이 보입니다.

  조금 더 기사를 찾아 읽다 보니 ‘임신 중 다이어트’라는 말도 보입니다. 임신 후에 다이어트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임신 중에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임신 중에 살이 너무 많이 찌면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무게 관리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신 중 다이어트’ 체험사례를 말하는 블로그 글에는 다이어트의 목적이 주로 ‘몸매 관리’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처녀 때의 몸매로 돌아가기 위해서’ 임신 중에도 다이어트를 한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날씬한 몸매에 집착하는 걸까요? 외모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라면 당연히 이해하겠지만, 그냥 보통 사람들조차 이렇게 살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도한 비만은 질병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비만보다 ‘비만에 대한 강박관념’이 더 심각한 질병 같습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여성 2116명에게 ‘현재 다이어트 중이거나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실제 비만인 사람은 약 11%에 불과했습니다.

  여성이 임신을 하면 살이 찌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문가들은 임신부는 하루 340~450kcal의 열량이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몸무게로 보면 약 14kg입니다. 여기에는 태아의 무게와 태아에게 혈액과 영양소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체액의 무게가 포함됩니다. 물론 이는 임신 전 체질량지수(BMI)가 20~26인 정상체중 여성의 경우이고, BMI가 19.8 이하인 저체중 여성들은 평균 16~18kg 증가하는 게 정상입니다. 반대로 BMI 26~29의 과체중 여성은 9~10kg 정도 느는 것이 정상입니다.

  살이 찐 사람을 보면 ‘게으르고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몸매관리가 곧 자기관리라고 인식되는 세상이죠. 그래서 출산을 하고 나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것을 당사자인 여성들만의 잘못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날씬한 몸매’를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시선이 확산됐을 때 누가 이익을 보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거고요.

  다시 ‘임신 다이어트’라는 검색어로 검색된 기사들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출산 후 다이어트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사 아래에, “만약 직장이나 육아 등으로 인해 다이어트 식단 조절이나 운동할 시간이 부족할 경우, 다이어트 전문가의 도움이나 전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전문가의 멘트가 소개됐습니다. 이름도 성도 없는 이 ‘전문가’는 “○○○ 다이어트(www.×××××××.com) 전문가”라고만 소개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마지막은 ‘○○○’ 브랜드 다이어트 제품의 장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임신 중 다이어트’ 사례를 이야기하던 블로그 글도 ‘기-승-전-다이어트 쉐이크 홍보’로 끝나던 것이 생각나네요. 광풍(狂風)이라 할 만한 우리 사회의 다이어트 집착. 이 광풍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지, 이 광풍은 누구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는 건지 냉정하게 한번 따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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