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가족을 지켜보는 ‘이웃의 감시자’
당신 가족을 지켜보는 ‘이웃의 감시자’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내의 일기>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우편함을 확인했다. 대부분 공과금 납부고지서나 지역신문 정도인데 오늘은 여성가족부에서 우편물이 왔다. 뜯어보니 집 인근에 사는 성범죄자 신상정보다. 무섭다. 여자로서도 무섭고 딸이 있는 엄마로서도 무섭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택배를 받을 때도 무섭다. 늘 보던 택배아저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땐 경계하게 되고 먼저 문을 열어 아저씨를 확인할 때도 있다. 가끔은 집 앞에 놓고 가주십사 부탁하기도 한다.
대학생 때 친정아버지가 합기도장에 데려가서 막무가내로 등록했을 때도 내 얼굴이면 아무도 안 건드린다고, 걱정 말라고 하며 대들기도 했었다. 이제 딸을 낳고 보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대학생이 돼서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딸의 곁에 붙어다니며 보살펴줄 수도 없고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그 마음도 모르고 나는 몇 달간 정말 합기도장에 억지로 다니다가 관뒀다.
그날 오후 호진이와 놀고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 요즘 택배 시킨 것도 없는데 뭐지?’
인터폰 화면에 보이는 사람은 집 옆 건물에 있는 문구점 아주머니다. 문구점 아주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4월,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마친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택배를 받을 사람이 없어 택배아저씨가 문구점에 택배를 맡겨두셨다. ‘다음 날 찾으러 가야지’ 했는데, 다음 날 아침 7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찾아가세요.”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아주머니의 말투는 택배를 맡아주시는 게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는 것 같았다. 앞으로 맡기지 말라고 할까봐 잔뜩 걱정을 하며 서둘러 갔다. 문구점에 찾아가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고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하니 웃는 낯으로 “그러셨구나” 하셨다. 그 후에도 가끔 집을 비울 때면 택배를 문구점에 맡겨달라고 했다. 가끔 그런 부탁이 죄송해서, 텃밭에서 재배한 열무를 드리기도 하고 욕심 부리느라 너무 많이 사버린 과일을 나누기도 했다.
호진이랑 외출하는 길에 문구점 앞을 지나면 호진이를 보며 환한 얼굴로 인사해주셨고, 가끔은 문구점에서 몇 백 원짜리 엽서나 포장지를 사면서 아주머니와 한참 얘기하기도 했다. 밖에서 문구점 안이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쳐 가면 나를 부르시면서 “애가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왜 그냥 간대?” 하시며 호진이를 반겨주신다.
그런데 오늘, 오다가다 마주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인지 집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두 손에 든 무엇을 불쑥 내미신다. 다시 보니 계란 두 팩이다.
“시골에서 보내왔는데 많아서 나눠먹으려고 가져왔어.”
“아니, 그냥 드시지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많아서. 애기랑 먹으라고. 몇 층인지 헷갈려서 3층에 갔다가 오는 길이야.”
“어휴, 이 귀한 걸.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갑작스럽게 찾아오셔서 나도 정신이 없었나보다. 아님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걸까. 그렇게 감사하다고만 하고, 서둘러 계단으로 내려가시는 아주머니 손에 아무것도 들려드리지 못했다. 아주머니께 문자메시지로 다음에 보답하겠다고, 조만간 뵙자고 보내고 나서야 죄송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궁금함보다 걱정과 경계를 먼저 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알고 지내는 분들에겐 그러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이제 텃밭엔 별 게 없는데 어떻게 보답하나. 홀로 잘 크고 있는 부추를 뜯어드려야 될까나. 이번엔 아주머니 성함이라도 여쭤봐야겠다. 핸드폰에 ‘문구점’이라고만 저장한 게 이제 마음에 걸린다.
#2. <남편의 반성문>
여성가족부에서 보냈다는 성범죄자 신상정보 우편물을 저도 봤습니다. 성범죄자라고 생각하며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괜히 더 험악하게 보이더군요. 사진을 보는 것도 참 불쾌했지만, 그래도 집 주위에서 본 얼굴은 아닌가 한 번 더 보게 되고 주소는 어디쯤인가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그러다가 강간죄를 저지르고도 징역 3년‘밖에’ 안 살고 나왔다는 내용을 보고는 기분이 확 나빠져서 우편물을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가 인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따지고 든다면 참 뭐라 말하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다만 딸이 태어나고 나서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죠. ‘남의 인생 망쳐놓고 3년 가지고 되겠어? 30년은 감방에서 살게 해야지!’ ‘이런 놈들은 다시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떼게 해버려야 해!’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보다는 아빠 된 사람으로서의 감정이 먼저 불쑥 일어납니다.
이곳 부천 사람들에게 성범죄는 조금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달 공개된 ‘최근 5년간 성폭력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5년간 성폭력 범죄가 45%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성폭력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도시가 경기도 수원과 부천, 성남 등입니다. 2013년 ‘최근 3년간 전국 경찰서별·지역별 성범죄 현황'을 보면 성범죄 신고 전국 1위는 서울 강남경찰서, 전국 5위가 부천 원미경찰서입니다.
아내한테 아무한테나 문 열어주지 말라고, 택배는 집 앞에 두고 가게 하고 인터폰으로 확인하라고 자꾸 잔소리처럼 말하게 됩니다. 이웃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면 의심 없이 그저 반가워만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집 근처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은 일단 경계부터 하고 바라보게 됩니다. 호진이보다 조금 더 큰 여자아이들은 아는 이웃 어른을 만나도 인사를 하고 가까이 지내기가 참 꺼려지는 게 사실이죠.
그런데 아내가 인터넷에서 웬 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이 2012년 12월 'EBS 부모'
“참 어려운 문제죠. 가능하다면 안전 우선, 그리고 예절이 혼합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이가 스스로 이웃 사람들한테 인사를 잘 했어요. 그래서 그냥 놔뒀어요. 긍정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다 인사를 하면 여러 사람들이 이 아이를 알게 돼요. 그러면 어느 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 접근해서 나쁜 짓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여러 분들이 감시자가 돼주시기 때문에.”
아차 싶었습니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건데, 불안이 앞서다 보니 내 이웃들을 ‘감시자’로 생각할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이웃들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아이와 가족을 지켜주는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예전 우리가 자라던 마을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들리기도 하는 말인데, 표창원 소장의 말이라 더 믿음이 가기도 합니다. 표창원 소장은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다른 글에 쓰기도 했습니다. 2012년 4월 18일 <국민일보>에 쓴 글입니다.
이웃 간에 서로 지키고 살펴주는 '마을 공동체'가 구축되어야 한다. 유럽과 미주, 호주 등 서구에서는 자원봉사자가 이웃의 안전을 살피고 경찰과 긴밀히 협력하는 '이웃 지키기(neighborhood watch)'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다. 길 가던 여성이 습격당해 오원춘의 집으로 끌려들어간 수원 지동 마을에서도 피해자가 지른 비명소리를 들은 이웃이 있었지만 부부싸움이라 치부하고 신고하지 않았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불안이 싹을 틔웠습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불안을 걷고 이웃을 만들면 서로의 가족을 지켜줄 든든한 감시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심 많고 까칠한(?) 저한테는 큰 숙제가 생긴 셈입니다. 주말 오후마다 목청껏 찬송가를 불러대는 옆집 아저씨와, 자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앞집 아저씨까지 ‘이웃의 든든한 감시자’로 만들 수 있을까요? 이웃 만들기가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반은 성공한 셈 치겠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