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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난민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

독일이 난민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

글  정혁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 박사과정) / hyuk21@gmail.com

시리아 내전으로 촉발된 대량 난민의 유입으로 유럽이 몸살을 앓고 있다.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들을 열차와 버스에 실어 서유럽 국가로 떠넘기는가 하면, 영국과 덴마크 등 비교적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었던 국가들마저도 국경 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요새화 현상’(fotrtress Europe)이라 불리는 유럽 각국의 폐쇄적 대응과는 대조적으로, 독일 정부는 사실상 난민을 무제한으로 받겠다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난민 위기에 대응하는 독일의 자신감과 관대함의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 독일 뮌헨 도시 전경

 현재 뮌헨을 비롯한 독일 주요 도시의 기차역에는 매주 수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올해 최대 80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 땅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입 규모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100만 명 이상을 내다보는 이도 있다. 2007년까지 2만 명 수준이던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는 2013년에 10만 명으로, 작년엔 그 두 배인 20만 명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1년 사이에 다시 그 5배에 달하는 새로운 난민들이 독일로 밀려들고 있다. 

이런 압도적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다. 대규모 난민 유입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인도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음식과 생필품, 장난감을 들고 난민 숙소를 찾는가 하면, 난민에게 기꺼이 방을 내주겠다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독일어를 가르쳐주겠다, 자기 차로 난민 이송을 돕겠다,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줄을 잇고 있다. 


✽ 베를린 난민센터를 찾은 메르켈 총리 ©연합뉴스

지난 9월 8일에는 야당인 사민당 소속 가브리엘 부총리가 ‘향후 몇 년간 매년 50만 명의 난민은 감당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몇 달 전 그리스 사태에서 보여준 차갑고 냉정한 태도는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가운데, 독일 연방의회는 60억 유로(8조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한 사람의 난민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개인 용돈을 포함해 1년에 13,000유로(1800만원)에 달하는데, 이러한 셈법으로는 올해 자그마치 100억 유로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전망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광폭행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독일이 지나치게 ‘오버’하는 게 아니냐, 감당 못할 약속을 해서 난민 유입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등 걱정과 우려 섞인 평가들도 내놓고 있지만, 대놓고 독일 정부를 비판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독일 사회가 보여주는 난민에 대한 ‘환대의 문화’(willkommenskultur)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로는 과거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들 수 있다. 독일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치 치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지겨울 만큼 반복 학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교육은 항상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때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될 수도 있고, 환경 보존에 참여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독일은 이제 부끄러움을 넘어서 연대의식을 몸소 실천할 줄 아는 사회로 진화하는 중이다.

둘째로는 안정된 정치 리더십이다. 2005년 첫 임기를 시작해서 벌써 세 번째 연임 중인 메르켈 총리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강력한 당내(기독민주당) 통솔력을 바탕으로 야당의 협력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상대의 정책을 수용하며 일이 되도록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이다.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에는 관심도 없는 동독 출신 여성 총리에게 국민들은 ‘무티’(엄마)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현 사태에 대한 보수적인 당내 의견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설득해나가는 메르켈의 실용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셋째로는 언론의 보도 태도를 꼽을 수 있다. 난민 위기를 대하는 독일 언론의 태도는 놀랍게도 침착하다. 백만이라는 숫자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낼 법도 하지만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 관련 기사의 분량 자체도 그리 많지 않다. 기억하기로는 지난 2010년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해당 기사로 신문 지면을 뒤덮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월드컵 중계 방송사는 자국 경기의 전반전이 끝난 후에도 어김없이 건조한 톤으로 국제 뉴스를 보도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경제·인구학적 요인이다. 독일은 이미 2003년 8240만 명으로 인구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자녀수당, 부모수당, 모성수당, 교육수당 등 온갖 출산장려 정책에도 젊은 세대들의 출산율은 쉽게 올라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보면 지금의 난민 유입은 늙어가는 독일 입장에서는 아주 쉽게 저임금 노동력을 보충하는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셈’을 가볍게 입 밖에 내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국민들을 향해 과거 역사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상기시킨 다음, 설득의 논리로 이것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큰 도전이자 기회다’라고 호소할 뿐이다. 우리 정부의 ‘자원외교’나 ‘통일대박’과 같이 국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언사들 속에는 계산만 있을 뿐 저와 같은 품격은 없었다.

독일이 맞이한 난민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향후 이들이 독일 사회에 순조롭게 통합되는 문제와 함께 독일 저임금 노동계층과의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할지가 앞으로 독일이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독일 역사상 가장 안정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젊은 세대들의 높은 연대의식 때문일 것이다. 강한 국가, 튼튼한 시민사회, 그리고 성장 동력을 잃지 않은 시장이 지금의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고자 한다. 


✽ 철조망을 뚫고 국경을 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 ©연합뉴스

끝으로 이 사태가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두 가지 질문을 꺼내본다. 첫째, 지금 이렇게 난민을 환영하는 독일 시민들이 불과 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나치의 폭력에 동조했던 바로 그들이란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사회가 그토록 극단적으로 광기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점과 동시에 바로 그 사회가 철저한 변화(transformation)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독일을 바꾼 것은 무엇이었나? 

둘째, 지금 유럽의 난민 위기는 언제든 우리에게 닥쳐올 현실이 될 수 있다. 한반도 유사시엔 시리아 난민의 몇 배에 달하는 대량 난민이 발생하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3만 명 수준의 탈북자들도 제대로 품어내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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