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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육아 시간 ‘3분’... 아빠만 반성하면 되는 건가요

하루 육아 시간 ‘3분’... 아빠만 반성하면 되는 건가요​​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 아내의 일기

  나도 그런 기운이 있었다. 호진이 동생을 어서 낳아야겠다는 그런 기운은 주변 사람에게서 왔다. 호진이 친구 엄마 두 명에게 둘째가 생기고, 그 기쁨을 함께하면서 나도 둘째를 가져볼까 생각했다. 특히 가까이 살면서 서로 챙기는 고등학교 동창이 둘째를 가져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둘째도 같이 키우자고 한다. 

  호진이를 키워보기 전엔 아이를 셋 낳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댁에 가면 형님 두 분에 남편까지 세 남매가 가정을 이뤄 명절 때마다 복작거리는 게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나는 호진이를 낳고 몇 달 지나 생각이 달라졌다. 셋은 꿈도 꾸지 말고 둘만 낳아보자고. 그리고 요즘 난 “하나만 낳아 잘 키우는 건 어떨까”로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하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꿈은 없었지만 출산 전 남편과 조산원에 교육 다니며 꿈꿨던 게 하나 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행복하게 키워내는 것이었다. 100일까지 남편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퇴근 후에는 아이도 봐줬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란 걸 제일 많이 느꼈던 때였다. 

  100일이 지난 후 내 기억으로는 5~6달 동안 남편은 많이 바빴고, 최근 이직 후엔 집에서 얼굴 보는 시간이 더 많이 줄었다. 그동안 나는 살림과 육아에 찌들어갔다. 그나마 아기 엄마로서의 삶에 행복을 느끼던 시간은 남편이 이직하기 전, 저녁 9시 언저리쯤 퇴근하던 때였다. 내가 잠깐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호진이랑 놀아주고 호진이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집 안에 가득했다. 남편도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낯으로 호진이를 쳐다볼 땐 행복의 극한을 느꼈다. 호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남편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보람되고 행복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새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그런 생활조차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 어쩌다 두 번 겨우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나마도 너무 지쳐 있어서 호진이랑 잠깐 놀아주고는 “이제 됐어. 저쪽에 가서 놀아라.”라고 말하기가 부지기수. 호진이도 서운했겠지만 나도 무척 서운해졌다.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더 놀아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없을 땐 더 슬프다. 호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베개를 가리키며 아빠를 부른다. 방에서 나와 신발장에서 아빠를 부른다. 밤엔 아빠 베개 위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이쯤에서 나는 둘째를 낳아 키우는 것이 무척이나 고민된다. 남편이, 그리고 아빠가 결핍된 삶. 이런 우리의 삶에 아이 하나를 더 낳아 키워야 하는 걸까.

  그래서 요즘은 둘째를 가져야 할까 고민한다. 두 살도 안 된 아이 하나뿐인데도 나는 살림과 육아가 버겁고, 남편은 육아를 함께 할 체력도 여유도 없어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 이 상황엔 변화가 없을 텐데 내가 아이 둘을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고민을 남편과 얘기할 만한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친정엄마는 ‘일이 닥치면 하게 된다. 호진이 키우면서 힘들 때 같이 키워야지 터울이 많이 지면 더 힘들다.’라고 어서 둘째 가지라고 하신다. 혼자 자라다보니 외로워서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했다는 친구의 말이나, 외동이어서 외로운 건 ‘어렸을 땐’ 없었다는 외동딸의 고백을 들으면 둘째는 꼭 낳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내가 몇 년 힘든 게 나중에 호진이가 몇 십 년 함께 지낼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일 테니까.

  이렇게 몇 달째 계속 고민하고 있다. 갑자기 속이 쓰리다. 위염인 걸까. 아님 좀 울렁거리는 것이 둘째가 생긴 걸까. 허허. 난 또 이렇게 둘째를 못 키우겠다고 고민하면서도 둘째를 바라고 있나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기는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미룰 만큼 미루고 싶은 숙제, 둘째. 어찌하면 좋을까.

# 남편의 반성문

  오늘은 일요일. 저녁을 먹고 저는 글을 쓰느라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 거실에서 호진이가 엄마랑 목욕 준비를 하나봅니다. 지금은 생후 20개월 된 호진이. 백일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목욕도 참 많이 시켜줬는데, 지금은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켜준 게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제가 이번 아내의 일기를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저녁 9시에 집에 들어오던 시절이 참 좋았다’는 대목입니다. ‘일찍 들어오기’에 대한 아내의 기준이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속이 상합니다.

  제 생활을 한번 돌아봅니다. 새벽 6시에 알람이 웁니다. 8시까지 회사에 가려면 6시 50분이 되기 전에 지하철역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하루에 2시간 30분 정도는 출퇴근하는 데 씁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짧게는 10시간에서 길게는 14시간 정도 됩니다.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저녁 8~9시, 나머지 절반 정도는 밤 10~11시에 집에 들어갑니다. 주중에 잠을 많이 못 자니 토요일에는 오전 내내 잠만 자죠. 토요일 오후에 식구들과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일요일 낮에 외식 한번 하는 것으로 점수를 만회하려 할 따름입니다.

  아내가 ‘9시에 집에 들어오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눈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을 회사나 지하철에서 보내고 돌아온 사람한테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혼자서 마음을 많이 썩였겠지요. 제 변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남편이 반성해서 해결될 일 같으면 남편 탓만 해도 됩니다. 그런데 남편만 반성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면 누구 탓을 해야 하는지 잘 따져봐야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0월 19일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짧았습니다. OECD 평균은 151분입니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6분(OECD 평균 47분),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거나 공부를 가르쳐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단 3분에 그쳤습니다. 아빠들이 특히 더 그렇지만, 아빠든 엄마든 한국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너무 적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 뻔한 소리지만, 너무 바쁘기 때문이지요. 한국인의 노동시간이 OECD 최상위권이라는 얘기는 여러 번 들어봤을 겁니다. 최근 통계에서도 그랬습니다. OECD가 11월 1일 공개한 '1인당 평균 실제 연간 노동시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인의 1인 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34개국 중 2위였습니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인 독일은 한국보다 753시간이나 적은 1371시간이었습니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도 한국인의 삶은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직장’을 위주로 돌아갑니다. 직장 일보다 가정 일을, 특히 육아를 앞세우는 것은 ‘간 큰’ 짓이죠. 지난 5월 발표된 한 취업정보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혼 남성 직장인의 78%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법적으로 남성도 1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로는 ‘회사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 53.1%로 절반을 넘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31.5%)'와 '승진과 평가 시 불이익이 두려워서(10.3%)'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아마 질문을 ‘왜 일찍 퇴근하지 않습니까?’라고 바꾼다 해도 답변은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독박육아’가 뻔히 보이는 예상되는 상황에서 ‘둘째’ 갖기가 걱정되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그런데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서 답답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직장에서 겪을 갈등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지금 하루에 보통 5~6시간인 수면시간을 줄이는 일밖에 없겠지요. 아니면 지금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벌어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어느 쪽도 저의 반성만으로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방법들이라, 오늘의 반성문은 더 맥이 빠집니다.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단체 맞선’ 같은 대책을 내놓는 정부에 하소연이라도 해볼까요? 아니면 가끔 지하철 광고에 보이는 ‘수요일은 칼퇴근 하는 날’ 캠페인을 저희 회사에서도 한번 해볼까요? ‘부자 아빠’도 아니고 그냥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놀아주고 책 읽어주는 ‘보통 아빠’가 되고 싶을 뿐인데,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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