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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다, 그냥 ‘노무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다, 그냥 ‘노무현’이다 


도종환 시 <얼굴>, 김경현 시 <초헌(初獻)>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나는 노무현을 한 번도 지지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에게 표를 던져본 적이 없고,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그가 속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에게 표를 준 적도 없다. 나는 8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대학에 적을 두고 살았다. 세 명의 대통령을 목격했고, 그때마다 나는 “○○○ 정권 물러가라”를 외쳤다.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를 열심히 ‘규탄’하는 동안 5년은 금세 흘러갔고, 어느덧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새 대통령을 더 열심히 ‘규탄’하는 동안, 그는 삶의 자리에서도 훌쩍 물러나버렸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고향 친구의 결혼식 날이라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중이었다. 버스 안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슬프지 않았다. 다만 놀랍고, 멍하고, 또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람들의 슬픔과 원통함도 시간을 붙들어둘 수는 없었다. 검은 옷과 노란 리본의 강물 속에, 사람들은 노무현과 이별했다. 그리고 그와 이별하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외로운 비주류 대통령’인 줄 알았던 그에게 그렇게 많은 친구가 있었다니. 그들의 기억 속에 노무현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얼굴

도종환

까까머리 학생이던 때 그의 얼굴에는
차돌처럼 반짝이는 단단한 은빛이 배어 있다
상고를 졸업하고 군복을 입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읍내와 면소재지의 경계쯤에 자리 잡은
투박한 냄새와 과수원 냄새 같은 게 스며 있다
지방 변호사가 되어 최루탄 묻은 아스팔트 냄새를
바지에 묻히고 다닐 때나
역사를 야만으로 바꾼 자들에게 명패를 집어 던질 때
그에게는 질주하는 야생의 냄새가 났다
실패는 많았지만 패배주의에 젖지 않던 시절
쉽게 타협하지 않아 하로동선(夏爐冬扇)처럼
버려져 있던 날
그런 날도 그에게선 참나무 냄새가 났다
화로처럼 타던 그의 가슴 안쪽이 겨울과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었고
그의 얼굴에는 참나무 숯이 타면서 내는
따뜻하고 붉은 온기가 오래 머물러 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비주류라서
나무 끝에 오래 앉은 새처럼 흔들리고 있던 시절
다시 법정에 선 변호사 어투가 흘러나오던 시절
억울해 하는 얼굴에 스며드는 그늘 같은 게 보였다
그의 생애 중에 가장 좋은 얼굴을 만난 것은
대통령 일을 그만두고 낙향한 뒤부터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오리와 함께 돌아올 때나
자전거 뒤에 풀빛을 태우고 마을을 돌 때
그의 얼굴에는 갓 캔 감자줄기에 따라온
풋풋하고 건강한 흙냄새가 살아났다
구멍가게의 나무의자 냄새가 났고
낮은 신발로 갈아 신고 만나는 오솔길 냄새와
잘 익은 사과의 얼굴 위에 내려앉은
가을햇살의 표정 같은 게 있었다
수많은 얼굴을 녹여 낸
가장 편안한 얼굴이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다
벼랑은 다시 예전의 벼랑으로 돌아가고
허공도 다시 허공이 된 뒤
밀물 같은 슬픔의 물살 출렁이다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어디서 다시 그의 편안한 얼굴 만날 수 있을까
풀밭에 앉아 푸른 세월을 건너다보던 얼굴
놓쳐버린 우리의 얼굴을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몰랐다. 그의 얼굴이 “놓쳐버린 우리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가 떠나고 한 해, 두 해, 일곱 해가 바뀌는 동안 나는 서서히 알게 됐다.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가치로서 노무현, 상징으로서 노무현 말이다. 그는 죽었지만 이 나라의 어떤 자들은 여전히 그와 싸우고 있다. 어쩌면 살아생전보다 더 치열하게 물어뜯고, 더 악랄하게 이용하고, 더 비열하게 조롱하며. 정말 역설적이게도 나는, ‘친노’라는 두 글자를 천형(天罰)처럼 낙인찍으려는 자들에 의해서 노무현을 바로 보게 됐다.

 

2013년에 나온 서거 4주기 추모시집 <꽃, 비틀거리는 날이면>(책이있는마을) 62~63쪽에서 찾은 이 긴 시를 인용한 것은 그런 이유다. 시를 읽으며 내가 아는 노무현의 얼굴이 하나씩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인은 노무현의 얼굴에서 “과수원 냄새”, “아스팔트 냄새”, “야생의 냄새”, “참나무 냄새”, “흙냄새”, “나무의자 냄새”, “오솔길 냄새”를 차례로 맡아냈다. 그러면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아닌, 노무현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재생시킨다.

물론 “잘 익은 사과의 얼굴 위에 내려앉은/ 가을햇살의 표정”과 같은 애틋함에는 미처 동의하기 힘들기도 하다. 나의 그리움은 노무현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시인이 후각과 시각을 넘나들며 그려낸 노무현의 얼굴은 지금도 SNS나 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그의 사진 몇 장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듯하다. “지방 변호사가 되어 최루탄 묻은 아스팔트 냄새를/ 바지에 묻히고 다닐 때나/ 역사를 야만으로 바꾼 자들에게 명패를 집어 던질 때”의 사진들 말이다. 노무현의 가치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진들. 

3당 통합을 결의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회 진행이 불법임을 주장하고 있는 노무현 의원(​1990.01.30 @오픈아카이브즈

 

시인이 되살린 얼굴의 주인공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다. 노무현. 그냥 노무현이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정치적 가치이자 상징이 돼버린 노무현. 5월 23일 이런 날 내가 그의 추모시집을 찾아 뒤적거린 것도, 어떤 한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게 아니다. 노무현의 꿈과 노무현의 희망과 노무현의 진심이, 시간이 갈수록 이 땅에서 더 말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빠’라는 조롱에서 ‘친노’라는 비난까지, 그가 남긴 가치마저 금기시하려는 이 사회의 야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헌(初獻)

김경현

오늘도 사람들은
내가 마냥 술에 취해서
술잔을 바닥에 엎는 줄로 알지만
이 땅은 용기 있는 자를 위한
무덤이라는 생각입니다

가끔씩 첫 술잔 쏟던 것
버릇이 되어 담배도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는 것
늘 일상이 되어 마음을 벼리고
술주정으로 보인다던 나의 몸부림도
그대를 향한 춤이었다는 걸
땀인지 눈물인지 술인지
아무도 모를 것으로 한없이
바닥이 젖었던 날이었습니다

나는 ‘대통령’ 노무현을 한 번도 지지해본 적이 없다. 만약에 그가 살아 돌아와 다시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유를 원하고 그가 자유를 위해 싸운다면, 나는 그와 친구가 될 것이다. 그가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고 내가 사람의 가치를 가슴에 품는다면, 나는 그의 용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와 친구가 될 것이다. 그가 꿈꾼 세상이 오직 ‘노무현의 꿈’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당하고, 그의 가치에 동의하는 것이 ‘친노’라는 정치적 딱지로 돌아오는 세상이라면,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친구, 친노가 되겠다.

같은 시집의 18쪽에서 찾은 이 시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 땅은 용기 있는 자를 위한/ 무덤”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시인이 땅에 바친 술 한 잔은 “그대” 노무현을 위한 것이다. 한 사람의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과 같은 꿈을 꾸다 먼저 사라져간 수많은 “용기 있는 자”를 위한 것.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무현과 싸우고 있고, 노무현은 여전히 대한민국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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