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산업혁명유산 군함도’ 단상
‘유네스코 산업혁명유산 군함도’ 단상
글. 사진 권기봉(작가, 여행가)/ warmwalk@gmail.com
불과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진출하려는 일본의 ‘전범기업’, 즉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일본 기업의 시도에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한국전력에서 독립해 나온 한국동서발전이 충남 당진 화력발전소 추가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 제작사로 일본의 미쯔비시중공업과 히타치를 선정했다가 시민단체에 의해 철퇴를 맞은 것이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광부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하시마도 아니고 군함도도 아닌 오로지 ‘지옥섬'이나 ‘감옥섬’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매일 12시간 이상씩 하루 2교대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섬의 지표면에서 7백여 미터를 내려간 해저의 비좁은 막장에서 똑바로 서지도 못한 채 옆으로 눕거나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석탄을 캐내야 했다. 섬의 별명대로 지옥과도 같은 노동환경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감옥과도 같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파도에 휩쓸려 죽은 이가 부지기수였고, 갱도가 무너지거나 가스가 폭발해 흙에 매몰되거나 바닷물에 수장된 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에 따른 임금은 말할 것도 없이 변변한 끼니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고,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예 밖으로 나올 수조차 없었다.
전체적인 투어에 왕복 2~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여행 성수기에 아니었음에도 군함도를 직접 보려는 관광객들로 100인승 고속선이 거의 꽉 찬 상태였다. 중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층, 그리고 가족 단위 여행객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1인당 400엔 내외면 나가사키에서 군함도까지의 왕복 고속선 티켓을 살 수 있고, 거기에 200엔만 더 보태면 아예 섬에 상륙을 할 수도 있다. 야마사해운의 420엔짜리 승선권에는 군함도 상륙권 300엔 외에 기괴한 이름의 요금도 포함되어 있다. ‘메이와쿠(迷惑)’ 요금이 그것으로, 고속선이 지나는 인근지역 어민들의 고기잡이에 폐를 끼친다는 뜻에서 내는 일종의 ‘민폐 요금’인 셈이다. 언뜻 타인에 대한 예의가 바른 사회처럼 보이지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심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74년 폐광 이후 사실상 버려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던 군함도…. 그런 상태로 풍화를 거듭해가던 군함도가 느닷없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일본전역에 분 이른바 ‘폐허 관광’ 열기가 기폭제였다. 오래되고 버려진 폐허를 찾아다니며 감상에 젖는 식의 관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군함도도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은 거기 상술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나가사키의 어느 대형마트에만 가도 ’군함도 소주’를 살 수 있는 식이다. 술병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군함도의 사진과 함께 ‘숲처럼 들어선 고층 아파트, 폐광 후 무인도에서 근대화 문화유산으로…, 섬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고 장황하게 적혀 있다. 역시 기억하기 싫은 역사, 즉 강제동원과 관련한 이야기는 있을 리 없고 그저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하는 위안거리로서 군함도에 얽힌 이야기는 소비되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군함도의 미래는 어떠할까. 유네스코 산업혁명유산 등재 뉴스와 함께 이제 나가사키를 찾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여행자들 중에도 군함도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시에 군함도의 역사와 관련한 반쪽짜리 설명에 항의하는 이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과연 군함도는 근현대사와 관련한, 특히 반인권적 과거사에 대한 몰이해를 딛고 성숙한 역사의식을 담보한 공간으로의 진일보를 이뤄낼 수 있을까.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 사회의 경직성이 못미더운 것이 사실이지만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평화 헌법 9조를 지켜내려 거리로 나온 수십만의 시민이 있는 사회가 또 일본이기에 일말의 희망이나마 완전히 버릴 수는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