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안보에 발목 잡혀 역주행하는 터키 민주주의
글 오종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아제르바이잔학과 교수 / jin93@hufs.ac.kr
‘터키식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만들며 이슬람 민주주의의 롤모델 역할을 해낼 것이라 기대 받던 터키. 그러나 최근에는 극심한 국론 분열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안보와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주의적 가치가 상충되고 있는 터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터키식 민주주의’의 탄생-이슬람 세계 첫 공화국
✽ 터키 경찰이 아타튀르크 대통령 사진이 걸린 건물 옥상에서 탁심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어 중앙아시아에 다양한 터키계 국가가 설립될 때, 그리고 2010년 아랍의 봄으로 많은 아랍 국가들에서 반정부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날 때 등장한 것이 ‘터키식 민주주의’ 담론이다.
터키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 1923년 오스만 제국의 폐허 위에 세운 이슬람 세계의 첫 공화국이다. 당시 아타튀르크는 공화인민당(CHP, Cumhuriyet Halk Partisi)을 설립하며 수백 년 동안 누적된 부패를 급진적으로 개혁하였다. 그러나 1950년까지 이어진 27년간의 공화인민당 권위주의 독재체제는 또 다른 정치·경제·사회적 부조리를 양산하였다. 결국 1950년에는 우리의 4·19혁명과 유사한 민중혁명이 일어났고, 이로써 터키는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유럽식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로 전환했다. 이후 터키는 지난 60년 동안 의회민주주의를 꾸준히 유지했다. 이 때문에 여느 이슬람 세계나 개발도상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민주적 정치경험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단계 발전된 민주주의 정치체계를 이루었음에도 이후 터키 정치사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여러 정당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연정(聯政)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연정 정부의 책임성 없는 정책은 터키의 경제와 산업을 뒷걸음질하게 하였다. 급기야 터키는 2002년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 2015년 6월 총선 당시 앙카라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와 스탬프를 준비하는 선관위 직원 ©연합뉴스
에르도안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
2002년에 정의개발당(AKP, Adalet ve Kalkınma Partisi)이 집권하면서 터키는 아타튀르크 이후 새로운 정치적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정의개발당은 지난 10여 년 동안 기존의 여러 집권세력(케말리스트,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과 군부의 지속적인 견제와 정치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했다.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정책과 법 개정 그리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대외적으로도 서구 국가들과 전향적 국제 관계를 맺었다. 정의개발당 정부는 선거를 통한 지지기반을 기초로 하여 이슬람 가치를 강조한 보수적인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통치 방식 또한 점점 권위주의적이며 독재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터키 정치사에서 ‘선거의 제왕’이라 평가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정치적 도전과 난제를 선거를 통해 해결하였다. 정의개발당이 지속적으로 선거에서 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집권 후 꾸준히 경제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 IMF를 졸업한 것은 이 정부의 성공적인 경제 업적으로 크게 홍보되고 있다.
1950년 민중혁명으로 이슬람 세계 최초로
의원내각제 도입하며 ‘터키식 민주주의’ 시대 열어
다시 변화의 물결
그러나 최근에는 에르도안 정부의 장기집권에 따른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3년 이스탄불 중심에 위치한 탁심 게지(Taksim Gezi) 공원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였다. 공원 개발과 관련해 여러 부조리와 부패가 감지되자 이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강경하게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물론 근처에 있던 많은 일반 시민들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는 시위대와 시민들의 모습은 소셜미디어와 해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정작 터키의 유력 방송사들은 이 상황에 무관심했다. 그때부터 시민들은 이 사태를 단순한 공권력 남용이 아닌 민주주의 붕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탁심 공원 재개발 반대 시위는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발전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 IS와 시리아 난민이 중요한 안보 문제로 부각되면서 터키는 안보와 경제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선거에서 항상 정의개발당이 승리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정의개발당은 다양한 대내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안정적인 정부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 대통령만이 혼란스런 정국과 대외 안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에르도안은 2014년 직접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의원내각제 대통령이 된 이후, 터키 정치 체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
2015년 터키는 한 해에 두 번(6월/11월)의 총선을 치르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정국 불안정을 총선으로 돌파하려던 에르도안 정부는 2015년 6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집권당의 독주는 막았지만 분열된 야권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결국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11월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됐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이 또 한 번 압도적인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자유의 확대’가 곧 경제발전
✽ 터키는 2015년 두 번의 총선을 치르는 내홍을 겪었다. 위_ 쿠르드계 인민민주당이 승리를 거둔 6월 총선. 아래_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압승을 한 11월 총선 ©연합뉴스
터키의 야권은 분열되었으며, 뚜렷한 정책과 강력한 지도자 모두 부재한 상태다. 선거는 카리스마와 대중적 인기를 업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에게 지속적인 정통성을 부여함으로써 독단성만 증폭시켰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포퓰리즘의 승리”라고도 말한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포퓰리즘을 통해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내부의 여러 부정적인 문제 등을 외면하고 일부 계층의 대중적 인기에 기대어 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인기영합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패러독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년 초에는 에르도안 정부의 부패와 스캔들을 지속적으로 보도한 한 야권 성향의 언론사가 압수수색과 사장 검거로 인해 거의 폐간 상태에 놓였다. 올해에도 반정부적인 민간 통신사가 조만간 정부조직으로 합병될 위기에 처했으며, 현 정부 통치기간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의 차단과 해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공공장소에서의 키스 금지 정책, 금주 연령의 상향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비하하는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 등이 터키가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자유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 141개국의 자료를 분석해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 경제성장률 차이는 없다”는 연구결과를 낸 바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석학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발전의 정의를 소득의 증대가 아니라 ‘자유의 확대’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두 석학의 말은 경제성장과 안보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 터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르도안 정부의 장기집권으로 사회적 갈등 확대…
포퓰리즘적 정치로 민주주의가 퇴보되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