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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붕괴시킨 건 지진이 아니었다

우리를 붕괴시킨 건 지진이 아니었다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추석 명절 연휴를 보내고 다시 회사에 출근한 첫 날, 친구 S한테서 연락이 왔다. 근 1년 만인가. 몇 년 전, 조선소에서 용접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저기 남쪽 바닷가 어디로 이사를 간 뒤로는 통 만나지도 못하고 연락도 자주 못한 친구였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부터 물었는데 뜻밖에, 서울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서울에 급히 취직을 해서 올라왔다고 했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혼자 고시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녀석은 당분간 여기저기 밥도 좀 얻어먹고 살아야 할 처지라며 농담처럼 웃었다.

S의 남편이 일하던 곳이 ‘조선소’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혹시, 조심스레 물어봤다. 역시, 그랬다. 올해 초부터 현실화된 조선산업 구조조정. 남편은 재벌기업 조선소의 하청업체 소속. 보나마나 구조조정 1순위였다. 올해 들어 월급을 한 번도 못 받았다. 결국 회사를 나가겠다고 하고 나서야 겨우 한 달 치 월급을 ‘위로금처럼’ 받았을 뿐이었다. S가 다시 일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사무실에 만난 동료들끼리 ‘명절 잘 쇠었냐’는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S에게는 차마 명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비 내리는 섣달그믐

삼백예순다섯 날 그 많던 날들
마지막 저물어가는 섣달그믐
바람도 오늘만은 고향 쪽으로 불고 있는
남녘 들 따라 길게 누운 길 따라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있었다.
고을 입구마다 치렁치렁 나붙은
<고향을 찾아주신 향우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내 고향 농산물을 애용하여 주십시오>
<국립 직업 훈련원생 모집>
<○○리 조○○ 씨 셋째 딸 ○○대 합격>
<○○리 김○○ 씨 장남 대령 진급>
그 겹겹의 현수막 자락 위에도 비는 내리고,
거기 어울리지 않게 끼어든
<신춘 부흥 사경회>
그 검붉은 글씨에까지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쥐여드릴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며
귀향버스 집어탄 미순이 가슴 속에도
차창에 비껴가는 겨울 논바닥 짚더미 위에도
갈퀴 같은 손으로 세 식솔 거느리며
서른다섯 아슬아슬 살다
십 년 만에 설 쇠러 가는
덕만이 기름기 빠진 이마빡 위에도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있었다.
젊어서 벗어난 고향
돌아가겠노라 벼르다 벼르다
하필 섣달 그믐날 저녁에 칠성판 짊어지고서야 돌아와
저승길 휘적휘적 더듬고 있는
정 영감 발끝에도 비는 내리고,
상여 맬 젊은이도 이젠 없는데, 이젠 없는데
혀 끌끌 차는 쉰 중반 늙은 이장
그의 오그라진 가슴팍 위에도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있었다.

박상률의 시집 <국가 공인 미남>(실천문학사/ 2016년) 110~111쪽에서 읽은 시.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 세대의 이야기 같지는 않다. ‘이농 1세대’인 우리 부모님 세대 이야기라고 더 생각되는 시다. S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만 이 시를 읽고 넘어갔겠지. 끝없이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있었”던 “그의 오그라진 가슴팍”을 절대 함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쥐여드릴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며/ 귀향버스 집어탄 미순이”를 지난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의 그 흔한 누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갈퀴 같은 손으로 세 식솔 거느리며/ 서른다섯 아슬아슬 살다/ 십 년 만에 설 쇠러 가는/ 덕만이” 역시 이삼십 년 전쯤 어느 민중시에나 나오는 그 흔한 누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도 준엄한 현실로 S의 삶 앞에 버티고 선, 그 막막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말이다. 추석 명절 며칠 전엔가,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사연도 생각났다. 석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서 이번에도 고향에 못 간다던, 연휴도 없이 일하러 나가야 한다던 사연. 올해 임금 체불액이 1조 원에 육박한다고 했나. 이대로 가면 연말 체불임금 규모가 1조 4000억 원이 될 거라는 기사도 읽었다. 사상 최대. 일하면 일할수록 오히려 가난해지는 청년이 사상 최대가 된다는 말이고, 일하면 일할수록 가족에게 미안해지는 가장이 사상 최대가 된다는 말이다. ‘열심히 일하면 돈 벌 수 있다’는 사회적 정의가 붕괴한다는 말이다.

새마을 회관에서

면 소재지에서도 이십 리가 더 떨진 마을 새마을 회관의 연단 위에 우리 사는 것 현지 조사인지 실태 파악인지 한다며 무슨 농촌문제연구손가 조사기관인가 하는 데서 내려온 반장인지 조장인지가 나섰다. 농촌 생활이라면 그 옛날 초등학교 여름방학 책 표지의 시원한 원두막에서 매미 울음소리 들으며 밀짚모자 덮고 낮잠 자는 것을 우선 떠올리는 서울 사람들. 그래도 직업 탓인지 그 양반 농촌을 주제로 소득이 어떻고 농민 의식이 어떻고 환경 오염이 어떻고 하며 입에 거품을 물지만 새마을 회관 30촉 백열등은 그저 깜박깜박 졸고 있다. 당신이 하는 소리는 이미 열 번도 더 들었소.
누가 소득 올리고 싶지 않을까?
누가 무지하게만 살고 싶을까?
누가 농약으로 오염되어 살고 싶을까?
경제 작물 특용 작물 지어보고 돼지다 소다 쳐봐도 이익은커녕 밑천도 건지기 전에 외국 것 날아들고 거창한 건 놔두고 세상 돌아가는 본새나 알고 싶어 텔레비전 라디오 돌려보면 온갖 전문 박사들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청산유수로 씨부렁거려도 서울 사람 아닌 우리에겐 볼만하고 들을만한 건 하나도 없지. 현지 조사에 실태 파악까지 백날 해 가지만 종이 쪼가리 몇 장에 통계 막대기 몇 개 그려 놓으면 임무 끝나고 월급 타는 서울 사는 농촌 문제 전문가들. 과학입국이니 선진국이니 하는 세상에 말만 뻔지르르하지 인체에 해 없는 농약 하나 못 만드는 서울 사는 박사님들. 농약 뒤집어쓰고 흙발바닥 털기도 전에 죽어가는 농민들 걱정보단 즈그덜 밥상에 농약 중독 쌀밥 오를까 걱정하며 배추는 차라리 벌레 먹은 게 안심되는 아, 그 똑똑한 서울 사람들은 모두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새마을 회관 30촉 백열등은 그저 깜박깜박 졸고 있다.

내 외가는 경북 경주다. <국가 공인 미남> 82~83쪽에 실린 이 시를 읽으며, 추석 때 경주에서 본 ‘무너져버린 일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진 때문에 외삼촌은 팔을 다치셨다. 백 년도 넘은 기와집에 사는 외할머니는 피난을 고민해야 했다. 불안보다 더 큰 것은 분노였다. 길이 갈라지고 담벼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집 밖으로 뛰쳐나올 때, 공무원 누구 하나 마을에 와보지 않았다 했다. 나중에 마을회관을 찾아온 것은 몇몇 방송사뿐이었고, 그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갈 때까지 정부도 지자체도 주민들을 찾지 않았다 했다.

경주에서 양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이 지진활동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이라는 연구 결과는 2012년에 이미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양산단층에 밀집된 원전 주변 주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환경단체가 원전가동에 반대할 것’이라는 이유로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이후의 연구 예산도 책정하지 않았다. 어떤가. 시 속에서 “농약 뒤집어쓰고 흙발바닥 털기도 전에 죽어가는 농민들 걱정보단 즈그덜 밥상에 농약 중독 쌀밥 오를까 걱정”하는 서울 박사님들의 모습과 너무도 똑같지 않나.

이번 추석 명절에는 무너져버린 땅을 많이 목격했다. 박상률의 시에서는 “면 소재지에서도 이십 리가 더 떨진” 농촌 마을로 그려진 땅. 현실에서는 지진으로 국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져 내린 경주 땅, 그리고 자본의 위기에 가장 먼저 삶이 붕괴된 수많은 내 친구 S들이 서 있는 땅. 혹시 우리는 이미 붕괴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 고개 숙여 내 발 밑을 들여다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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