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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87년 체제의 위기와 새로운 국가

87년 체제의 위기와 새로운 국가

성숙한 민주공화정을 향하여

 

대 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사 회 이선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장
정 리 김남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
사 진 장철영 사진작가

 


✽ 발언을 하고 있는 윤평중 교수(우)와 사회자 이선태 기획관리실장(좌)

2017년은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해다. 아니 나 다를까, 30주년은 조용히 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1차 촛불집회가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되었고 마침내 12월 9일 대통령의 탄핵이 국회에 서의결되었다.지난몇달은누구도예상치못한대 격동의 연속이었고, 그 격동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 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은 있다. 지금 의 격동이 87년 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대안적 국가질 서 및 사회경제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교수와의 대담은 2016년 12월 1일에 진행되 었다. 국회에서 탄핵일정 논의가 한참 긴박하게 돌아 가고 있을 때였다. 윤 교수는 평소 정치발전과 사회 경제시스템에 대해 기탄없는 비판과 함께 진지한 대안을 제시해왔다.

이선태
87년 체제 30년을 맞이하는 지금의 ‘촛불’ 정국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윤평중
87년 체제를 가능케 한 것은 87년 시민항쟁이다. 87년 항쟁과 2016년 촛불항쟁은 불의한 정치권력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87년에 비해 현재의 촛불항쟁이 달라진 점은 첫째, 한국 사회의 숙제였던 세대갈등, 진영대립과 지역갈등을 넘어섰다는 것, 둘째,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평화적 축제의 형태로 치러졌다는 것, 셋째 시민의 자기형성으로서 시민교육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축제적 요소는 굉장히 중요한데, 이 속에서 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이 강조하는 ‘다성성(多聲性) 속의 질서’, 즉 다양한 목소리 속의 통일성이 나타난다.

이선태
이어지는 질문은 87년 체제 3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그동안 정치학계에서 나온 일반적인 결론은 민주주의의 이행과 공고화 이론이었다. 개헌을 통해 분권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를 촉구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금의 ‘최순실 사태’를 보면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 정치가 근본적으로 부정당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윤평중
최장집 교수가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상당히 예리한 표현이라고 본다. 저는 ‘박정희 모델’이란 표현을 쓰겠다. 박정희 모델은 87년 이전까지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개념이다.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과대정부로 인한 발전국가적 산업화와 그 결과로 도출되는 정경유착과 정언유착, 이뿐 아니라 예술, 문화, 정치 등 사회 전반의 비자율성이 특징이다. 군사주의 문화, 상명하복의 문화같은 것이 박정희 모델의 중요한 내용물이다. 이러한 박정희 모델의 유산이 너무 깊숙이 뿌리 내려 생활화 관습화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이선태
박정희 모델은 이른바 발전국가론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이 있다. 1997년 IMF 체제를 통해서 외자의 국내 유치, 외국계 자본의 국내 직접 투자, 외환거래 자유화 등이 이루어졌기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비중이 커지면서 발전국가적 성격이 탈각되었다는 것이다. YS 정부 때 추진된 OECD 가입을 위한 개혁정책, 외환위기 상황에서 DJ 때 추진한 과감한 개혁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의 모금과정을 보면 발전국가 모델이 지금까지 지속된 것 아니냐 하는 새로운 의문이 든다. 기존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도입과 발전국가의 지속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하나?


✽ 김대중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외환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양극화가 심화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급 아파트 단지(위쪽)와 개포동 구룡마을의 모습 ©연합뉴스

윤평중
말씀하신 것처럼 신자유주의 이념은 이데올로기로서는 발전국가 과대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크게는 발전국가적인 틀을 유지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요구대로 시장을 열고 정부 규제를 줄였다. 박정희 모델-한국적 발전국가 모델과 기묘하게 모순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혼용시킨 것이다. 이로써 외형적으로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던 사회경제적 비용이 너무 컸다. 흥미롭게도 경제사회적인 양극화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 한국 진보정부의 효시였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한국의 대기업 집단은 겉으로는 확실히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그런데 자기들이 위기 상황에 놓이면 정부에 지원을 호소한다. 한국적 발전국가 모델과 한국적 신자유주의 모델의 모순적 동행이다.
이로 인해 87년 체제의 한계도 드러난다. 주권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해 대표자들을 뽑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집단의 권력과 재벌의 힘이 너무나 막강해진 것이다.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 집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힘의 관계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주체로 등장한 것이 재벌이다. 이 재벌들이 대한민국 헌법, 국법질서를 우롱하고 넘어서려는 방자한 행태를 보인다. 재벌기업의 이상 비대화는 2017년 체제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헌법 밑으로 대기업 집단을 집어넣는 실질적,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선태
경제민주주의 가치와 정책을 통해 재벌의 비정상적인 비대한 성장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의지를 갖고 국민적 동의를 바탕으로 법적 제도적 관행들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검찰 권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촛불정국에서도 국면이 전환되기 전까지 검찰은 국민을 실망시키며 여전히 ‘권력의 시녀’로 군림했다. 어떤 식으로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해체·약화시킬 수 있을까?

윤평중
단일한 대오를 갖춘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재벌 권력과 검찰 권력은 가장 강대한 쌍두마차다. 검찰도 재벌과 마찬가지로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최고 정점에 있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초법적 위상을 누리고 있다. 때로 검찰이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이기는커녕 법치국가를 위협하는 잘못된 현실을 고쳐야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나누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부패 방지 기관을 만들고, 경찰에게도 수사권을 나눠줘야 하며 검찰총장 국민직선제도 도입해야 한다.

이선태
정치체제와 관련된 영역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개헌 등 권력 분권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윤평중
우선 대통령 권력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을 운운하는데, 이는 사실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충분히 있는데 이를 박근혜 집단이 무력화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다음으로 국회는 환골탈태에 가까운 개편을 해야 한다. 이건 박명림 교수가 여러 자리에서 굉장히 강조하는 것이기도 한데,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고, 그 중에서도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한다. 또한 공천 등 정당 내부의 운영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실효적인 지방분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선태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국민들은 주중 닷새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촛불집회에 참여한다. 이에 반해 정치권은 국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국민들의 움직임이나 분노와 비교했을 때 정치는 실종된 것 아니냐, 정치가 촛불시위의 민의를 감당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정당정치 제도화는 어떤 수준일까?


✽ ‘촛불 든 청년산타들’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2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청년산타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평중
중요한 지적이다. 한국 정치문화에서 특별하게 나타나는 퇴행적 현상이 있는데, 이른바 당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은 당론이 결정되면, 즉 대통령과 몇몇 소수 당권자가 결정해 다른 의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면 그것을 거역하기 힘들다. 국회의원들의 생사여탈이 달린 공천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면 당론에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국민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책임정치다. 밑으로부터의 민심을 정치권이 담아내 여과시키고, 그래서 정책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광장정치나 시민정치는 제도정치권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넣어줄 수 있다. 지금처럼 왜곡된 제도정치를 야단치고 견인해갈 수 있는 힘도 있다. 그런데 광장에 나온 시민 모두가 현실 제도정치를 하는 프로 정치인이 될 수는 없다. 시민들에게는 각자 생업과 삶이 있다. 따라서 이렇게 광장으로 분출된 시민정치의 에너지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진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와 인센티브는 시민에서 얻되, 이를 제도화해서 인프라나 시스템이나 정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프로 정치인들, 특히 정당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선태
언론에 대해서도 짚어봐야겠다. 인터넷 매체, 종편 등으로 인해 언론환경이 다양해졌다. 특히 종편은 권력의 안정화와 공고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최근에는 종편들이 권력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언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시민적인 규제나 통제가 가능할까. 또한 언론에게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을 넘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도 기대할 수 있을까?

윤평중
정권, 검찰, 언론, 재벌, 관료 등 기득권 동맹이 일사불란하게 어떤 권력을 만들고 후계자를 생산하고 한국사회를 견인한다는 그림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탄핵 정국에서는 보수 정권이 인가해준 종편이 보수권력을 내부적으로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객관적 사실보도라고 하는 언론의 출발점이자 존재이유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언론이 훨씬 이전부터 정보를 접했을 텐데 더 빨리 의제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거대언론사는 재벌과 규모에서 비교는 안 되지만, 자신들 스스로가 거대자본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를 실제로 좌지우지하는 재벌 권력과의 유착은 광고 수주에서 나타난다. 재벌의 입김으로부터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게 언론 구조가 짜여져 있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재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격려와 감시가 극대화되어야 한다.

이선태
매일같이 상황이 급변하고 이런저런 변수가 있어서 이후 로드맵이 간단치 않은 문제기는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나. 지금 정치 정당 수준과 상황으로 봤을 때 어떤 해법과 로드맵이 정치 발전이나 사회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을까.


✽ 지난 12월 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윤평중
시민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몇 주 몇 달을 보지 마시고, 우리의 시야를 더 확장하자는 것이다. 눈앞에 닥친 일이 당장 특정 정치인에게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는지 이런 것에 연연하지 말자. 2017년 체제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이것이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에너지는 광장이다. 촛불항쟁에는 시민형성, 시민의 자기교육과 자기 만들기, 주권자로서의 자기증명이라는 큰 성과가 있다. 이는 한국역사를 더 이상 과거로 돌릴 수 없게 하는 결정적 변별점의 현장이다. 한국정치가 생물이고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고 있으니 정치공학적으로 어떤 후보가 유리하다 하는 전망은 하기 힘들다. 다만 거시적으로 말하면 87년 체제 자체는 박정희 모델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지만, 2017년 모델은 박정희 모델과는 대단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역사의 단절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역사는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017년 모델에 박정희를 대신하는 특정 정치인 이름이 들어가는 것에는 반대한다. 2017년 대선 판이 본격화되면 “박정희 모델을 완전히 타파하겠다”,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인물,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할 수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처럼 전 세계적으로 다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구체제를 일거에 척결하고 새 시대를 만들자는 국민적 열망이 막 생겨나고 있다. 포퓰리스트적 지도자가 반 박정희 모델을 설파함으로써 정칙적 영웅이 되는사태를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보통 사람이야말로 정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선태
촛불집회는 작게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와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이지만, 크게는 통치 권력 또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변화에 대한 갈망이자 염원이다. 바람직한 사회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떻게 구상하시나.

윤평중
현실정치에는 메시아가 없다. 한국사회는 이미 특정 정치인이 정치적 구세주로 등장해서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수준의 단순사회가 아니다. 2017년 모델의 빈자리에 들어갈 것은 성숙한 공화정이다. 헌법 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포되어 있지만, 민주주의에 비해 공화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공화적 특성이 발현되는 양상은 상당히 빈곤하다. 2016년 촛불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공화정과 관련이 있다.
공화주의는 첫째로 법치주의적 특성을 갖는다. 한국사 흐름에서 전통적인 법의 개념은 통치자의 통치 필요성에 의한 수단의 의미였다. 그러나 사실 문명사회에서의 법이란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성숙한 공화정 사회에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공화주의의 두 번째 특성은 평등한 자유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유기적 융합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공화주의가 그 접착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격차사회의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적인 여러 가지 조치들이 중요하다. 평등성이 증가되어야 자유시민으로서의 실질적인 위상이 비로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국심의 문제도 중요하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단체적인 집합 감정인데, 민주주의에서는 잘 잡아내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백의민족과 같이 인종 혈통적인, 민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애국심이 표출되면 퇴행적이다. 2017년 모델을 담보하는 성숙한 공화정에서 나타나는 애국심은 헌법에 대한 애국심, 즉 헌정애국주의가 되어야 한다.

이선태
성숙한 공화정과 연관해서 생각했을 때, 87년 체제의 산물로 만들어진 현재 헌법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시나?

윤평중
개헌이 능사는 아니다. 헌법 전문의 일부분을 바꿀 필요도 있고,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바꾼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헌법은 꽤나 선진적이다. 현실과의 갭이 천양지차로 벌어진 것이 중요한 것이다. 헌법은 규범문서고 현실은 누추하다. 그래서 헌법 조문의 구체화와 현실화가 중요하다.

이선태
성숙한 공화정을 한국 정체의 비전으로 말했는데, 세계적으로는 영국 브렉시트, 미국 트럼프 현상 등 기존 보수·진보 틀로 접근하기 애매한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 사회는 특수성에 기초해 극렬한 갈등과 대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화정이 가능하려면 공동체 커뮤니티 마인드가 필요하다. 진영논리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윤평중
2017년 체제는 진보와 보수가 다시 미래지향적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진보는 사회민주주의,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공화적 요소를 공유하면서 자기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진보는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에 대해 명료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적어도 반동적인 김씨 세습체제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북한 체제 붕괴에 동참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언술의 차원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해서 진보 본연의 사회민주주의적 색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 실체 주류 세력은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다. 한국 보수도 레드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가안보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매카시즘 냉전반공주의적 유산을 미래지향적으로 벗어던져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시장주의자라면 재벌과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장질서를 비판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앞서서 주장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보와 제대로 된 보수가 되면 두 집단 사이의 접점은 상당히 가까워진다. 지금처럼 사생결단하는 정치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 양당체제든 다당 체제든 훨씬 선순환하는 정치시스템이 짜여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화사회의 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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