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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치 회복을 위한 선거법 개혁


✽ 2015년 11월 2015정치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당이
공동으로 개최한 ‘비례대표 축소 반대 및 선거제도 개혁 촉구’ 기자회견

민주정치 회복을 위한 선거법 개혁

글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

다가오는 2017년은 6월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해로, 이제 한국은 민주화 이후 30년을 경과하게 된다. 30대는 성년의 초반기를 지나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기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그러한 단계에 와 있는지 우려스러운 지점이 많다.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는 시기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많은 위기 요인을 가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배경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개선되기는 했지만 점차 떨어지고 있는 투표율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 단면이다. 민주화 직후 치러진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89.2%를 기록했던 투표율은 17대 대선에는 63%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 18대 대선에서야 75.8%까지 다시 상승했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1992년 14대 71.9%에서 18대에는 46%까지 떨어졌다가 2012년 19대 총선부터 다시 회복되고 있다.

투표율 하락의 이면에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동이 있다. SSK좋은정부연구단(2015)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① ‘민주주의 체제는 다른 어떤 정부(제도)보다 더 낫다’ ② ‘때로는 독재체제가 더 낫다’ ③ ‘독재나 민주주의나 상관없다’라는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①을 선택한 응답자들의 비율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계속해서 하락했다. 투표율 하락의 시점과 대략 일치한다. 1996년 70.2%였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2001년 44%까지 하락했다.

1996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는 IMF 외환위기를 통해 민주정부가 경제위기를 다루는 데 무능할 수 있고,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경제적 지위가 실업 등으로 인해 약화될 수 있으며, 재벌 대기업-수출산업 주도의 경제 질서를 개혁하는 것에는 무력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시기였다. 또한 정치적으로 2번의 정권교체(김영삼 → 김대중 정부, 노무현 → 이명박 정부)가 이루어졌던 이 시기는 정부의 교체를 통해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유권자들이 그 한계를 인식하게 된 때이기도 하다.


✽ ‘비례대표 축소 반대 및 선거제도 개혁 촉구’ 기자회견의 퍼포먼스

결국 한국 민주주의 위기 요인으로 최근 10년간 보수정부에 의한 시민권의 저하, 행정부의 권한 남용, 정당 해산과 미디어 장악 등을 들 수 있으나, 그 위기의 배경에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저하가 놓여 있다.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나가고 있는 지점은 아담 쉐보르스키가 지적한 대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일 수 있다. 그러나 계곡을 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여전히 정치의 영역이며, 변화 또한 정치에서 시작된다.

시민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체제의 변화
여야간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상황에서 정치의 변화는 단지 대통령의 소속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한정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정당체제의 변화이다. 정당간 이념의 차이가 크지 않고, 공공정책에 대한 입장차가 크지 않은 한국의 양당독점체제에서, 그 변화가 양대정당과 이념, 노선, 기반이 유사한 제3정당의 등장으로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 변화는 이념, 노선, 기반이 다른 ‘조직된 정치적 이견’이 한국의 정치무대에 등장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며, 이는 현행 단순다수 대표제 선거방식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필자와 필자가 속해 있는 정의당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300여 명의 유권자들이 거리로 나섰던 ‘불공정한 선거제도 확 바꾸자! 유권자 행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에서 유효득표의 42.0%를 획득했음에도 53.1%의 의석률을 보였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4.3%를 획득한 민주노동당의 의석률은 0.8%에 불과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전체 지역구에서 42.8%를 획득했음에도 50.6%의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통합진보당은 10.3%의 득표를 했지만 4.3%의 의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정의당이 요구하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1:1로 하고 의석 전체를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되, 배분된 정당별 의석수를 먼저 지역구 당선자로 채우고 나머지를 비례대표 후보로 채우는 것이다. 이는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을 정확히 일치시키고,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여부를 함께 존중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이러한 선거제도 아래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획득하는 정당은 존재하기 어렵다. 협치는 과반의석을 빼앗긴 대통령 소속 정당의 레토릭이 아니라 모든 정당들이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 ‘불공정한 선거제도 확 바꾸자! 유권자 행진’의 무대 행사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은 국회의원 선거만이 아니라 대선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민주화 이래 유효득표에서 가장 높은 득표를 했던 박근혜 대통령조차 선거인 수 대비 투표비율로 보면 38.93%의 지지를 통해 당선됐을 뿐이다. 이는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고 있는 대통령제국가인 우리 현실에서, 언제나 대표성의 문제와, 약한 지지기반으로 인한 국정운영의 난맥을 노출시킨다. 이것이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할 이유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1차, 2차 투표에서 유권자에게 두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자, 유권자의 과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선출해 대표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다. 이는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이다.

20대 국회에도 어김없이 개원과 함께 개헌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지난 두 번의 보수정부에서 이뤄진 퇴행들 즉 , 대통령 권한의 남용, 의회에 대한 무시, 사회통합의 실패 등을 볼 때 정당한 배경을 가진 주장이다. 하지만 의회정치의 복원, 합의정치의 실현, 대통령 권한의 견제 등은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고도 선거제도 개혁으로 충분히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정치개혁 논의가 소속정당의 집권가능성을 높이거나 집권기한을 연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본령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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