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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 정의의 여신상을 깨우는 사람들

[미니 인터뷰] 정의의 여신상을 깨우는 사람들

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상은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저울과 칼, 눈을 감거나 가린 모습은 법이 정의롭게 지켜지기 위해 각각 적절한 균형, 엄격함, 편견 없는 공정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정의의 여신상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도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얼굴이나 옷차림을 한국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으며 눈을 뜨고 앉아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정의의 여신상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법전에 따라 눈을 똑바로 뜨고 사실을 살핀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뜬 채 쿨쿨 자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한적한 도로에서 신호등을 지켜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면 바보 소리를 듣고, 규정을 지켜 운전을 하면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된다. 너나없이 CCTV를 피해 속도를 위반하고 금지된 구역에 주정차를 한다. 어쩌다 단속에 걸리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재임 기간 수천억의 비자금을 챙긴 전 대통령은 세금으로 경호까지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탈세·로비·폭행 등 각종 불법 행위로 구속된 재벌들은 경제 발전과 건강 등의 이유로 너무나도 쉽게 면죄부를 받는다. 이들을 수사해 법을 집행하는 판사, 검사에 이들의 수장까지 구속되는 판국이니 법을 신뢰하고 지킨다는 게 이상할 만도 하다. 만약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있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까?

정의의 여신은 잠이 들고 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상황, 개헌 논의를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고심 끝에 만난 사람은 법으로 운동하고, 법을 지키자고 운동하고, 법을 바꾸자고 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물었다. 정말 법이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느냐고.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법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되물었다. 무엇이 정의의 여신을 잠들게 했느냐고. 정의의 여신을 이대로 계속 잠든 채 둘 거냐고.

국민이 헌법을 알아야 나라가 헌법대로 운영됩니다

올해 1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의 첫 모임이 열렸다. 온 국민이 헌법을 읽도록 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13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실제로 헌법을 읽어본 사람은 이주영 공동대표와 한 법학자, 고작 둘뿐이었다. 이 대표는 준비해 간 헌법책 30권을 꺼냈다. “헌법 읽기 운동에 동의해서 오신거죠? 그럼 우리부터 읽읍시다.” 이 대표의 제안에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헌법 39조까지 읽어 나갔다. “그 뒤로 모임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어요. 헌법에 좋은 말이 다 있다고, 정말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다 헌법을 읽어야 한다고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공동대표

★ 헌법을 읽어야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은 활동에 박차를 가해 두 달여 만인 3월 1일 선포식을 열고, <손바닥 헌법책>을 발간해 배포했다. 가로 8㎝, 세로 14.5㎝로 스마트폰과 비슷한 크기에, 두께는 더 얇은 이 책 안에는 헌법 일부가 아닌 전문이 들어있다. 모름지기 법전은 두껍고 무거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헌법은 근본적인 내용만을 담은 만큼 분량이 엄청나진 않다. 법제처 사이트에서 헌법 전문을 다운로드해서 살펴보면 글자 수가 18,000여 자 남짓, 10포인트 글자 크기로 A4용지 11쪽이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도 오래 걸리지 않을 이 헌법 전문을 읽어본 국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

“<손바닥 헌법책>을 보여 주면 사람들이 ‘이렇게 얇아요?’라고 되물어요. 헌법은 두껍고 무겁고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손바닥은 가볍고 작은 느낌이 나잖아요. 그래서 ‘이게 뭐지? 헌법이 어떻게 손바닥 안에 들어가지?’ 궁금해서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호기심 때문에 권당 500원인 책을 택배비까지 부담하면서 한 권만 사는 사람도 있다. 헌법은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고 안내를 해도 이 책을 실제로 보고 싶다며 꼭 한 권을 구입한단다. 이와 같은 <손바닥 헌법책>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헌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지를 방증한다.

“헌법은 ‘이런 나라를 만들자’는 약속이에요. 나라가 헌법대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는 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온 국민이 헌법을 읽어야 해요.” 책을 손바닥 크기로 제작한 것은 이러한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으려면 작고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책값이 제작비보다 적은 500원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포함한 국민 누구나 책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 서울NPO자원센터에서 열린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ʼ 출범식 / ✽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ʼ에서 주최한 헌법교육 논의 현장

★ 헌법대로 살아야 헌법이 살아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에서 헌법책을 만들고 함께 헌법을 읽는 데에는 헌법대로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 “헌법을 읽으면 사람들이 ‘이대로만 되면 참 좋겠네요’ 그래요. 헌법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던 거죠.”

이 대표는 교사 시절 실제로 헌법을 토대로 학급법을 만들어 교실을 운영했다. “헌법을 읽은 학생들이 사생활 보장에 관한 17조를 들어서 자기들 일기는 검사하면서 왜 선생님 일기는 안 보여 주냐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일기를 써서 매일 교실 뒤에 붙여 놨어요.”

이처럼 헌법을 잘 알고 헌법대로 살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은 헌법 제11조(평등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헌법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런 말은커녕 생각도 할 수 없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가정이나 교실 등의 작은 조직부터 헌법대로 운영하면 개개인이 헌법적 가치를 몸으로 느끼고 사회의 민주적 기반이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헌법은 죽은 법이에요. 헌법을 살립시다.”

나라가 생산한 정보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다음 중 우리나라 국민이 공공기관에 공개 요청을 할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1번 가로수에 뿌리는 농약의 안전성, 2번 우리 동네 CCTV 개수, 3번 지역별 치킨 가게 개수, 4번 공무원 해외 출장 현황, 5번 지역 문화행사 계획, 6번 국회의원 후보 전과 기록, 7번 우리 동네 병원의 항생제 사용률. 정답은, 1~7번 모두이다. 사적인 관심사부터 안전과 건강 관련 정보,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공직자 정보까지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 1996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 국가 정보 공개는 민주주의의 시작이에요
물론 청구한다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위의 보기는 실제로 국민이 청구하거나 청구 이전에 공공기관에서 공표하여 공개된 정보 사례들이지만 비공개되는 정보도 수두룩하다.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이 소유한 모든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청구된 정보가 8가지 비공개 항목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공개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 여부 판단은 해당 정보 담당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라 판단 결과에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심지어 정보를 삭제하거나 저장하지 않아서 청구한 정보를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이와 같은 불필요한 정보 비공개에 맞서 공공기관의 정보가 투명하게 관리·공개되어 시민의 알 권리가 실현되도록 힘쓰는 시민 단체이다.

그렇다면 알 권리란 무엇일까? 정진임 사무국장은 이렇게 정의한다.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죠.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이고요. 알아야 말할 수 있잖아요.” 알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고 이루어져야 국가의 주인으로서 시민이 의견을 개진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국가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정 사무국장은 강조한다.


✽ 정보공개센터의 에너지인 후원자들을 향한 감사 메시지 / ✽ 3개년 계획 ‘이우이우 프로젝트ʼ를 발표한 제8차 정기총회

★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가 공개돼야 해요
오세훈 전 서울 시장 재임 시절, 정보공개센터에서 서울시에 홍보비와 광고비 내역을 공개 청구했다. 서울시가 비공개를 결정하자 정보공개센터에서는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공개 명령이 내려지자 그제야 서울시는 정보를 공개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정보공개센터는 서울시의 행동이 고의적이라고 판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정보공개센터의 손을 들어줬고, 이는 뚜렷한 근거 없이 정보를 비공개하는 공공기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공공기관 정보 공개율은 지속적으로 95%를 넘었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 집필진이나 청와대 식자재비 등 사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정보 비공개 사례가 자주 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수치가 와 닿지 않는다. “질 높은 정보는 잘 공개되지않아요.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 사회적 요구가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원하지 않은 정보를 주는 건 중요하지 않죠.”

정 사무국장은 공개되는 정보의 질을 높여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 원칙을 어긴 공공기관 제재 조항의 신설은 물론 관계자의 사고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공공기관에서는 정보 비공개 근거로 국민들이 정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악용할 수 있다고 해요. 국민을 파트너로 보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저희는 이렇게 말해요.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그런데 왜 국가의 정보는 국민에게 없습니까?”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가 좋은 민주주의 사회죠

“2011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려고 준비할 때였어요. 주민 발의로 조례안을 제출하려고 알아봤더니 발의자격이 선거권이 있는 사람한테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만 19세 이상인 사람들만 서명을 하고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서명을 할 수가 없었죠. 참정권이 없으면 단순히 투표만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나 활동 모두가 제한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참정권 제한의 불합리함을 생각하게된 것 같아요.”


십대섹슈얼리티 인권모임 활동가

★ 참정권은 사회 주체로 살아갈 권리예요 
강민진 청소년 인권 활동가는 10대부터 청소년운동에 뛰어들어 어느새 5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활동가다. 현재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과 인권친화적+너머운동본부를 통해 청소년 상담을 하는 등 청소년 인권 신장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을 뿐 아니라 선거 운동도, 정당 가입도 할 수 없어요. 참정권 제한은 청소년이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반영할 권리를 제한하는 거예요.”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스스로 올바른 정치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무엇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나 생각해 보면 나쁜 것에 접근하지 못하게 보호한다는 거잖아요. 참정권 제한은 정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데, 정치를 불순한 것으로 보고 청소년에게서 주체로 살 권리를 빼앗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강 활동가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청소년에게 행해지는 일들이 청소년이 아니었어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회사에서 노동자를 체벌한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청소년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성인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청소년에게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정말 청소년이 걱정된다면 청소년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 고민해야죠. 어떤 것을 금지시켜서 청소년을 보호할지 생각하지 말고요.”


✽ 투표장 앞에서 벌인 청소년 참정권 보장 시위 모습

★ 청소년의 정치 참여 경험이 중요해요
강 활동가가 청소년 인권에 문제의식을 느낀 건 중학교 때였다. 체벌이 당연한 학교가 싫어 제 발로 학교를 나왔다. “심한 체벌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청소년을 체벌을 당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하는 학교에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제 법으로 체벌은 금지됐지만 아직도 강 활동가는 학교에서 체벌을 당했다는 상담 요청을 받는다. 법이 바뀌고 일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청소년 인권에 대한 사회 인식은 미약하다.

강 활동가는 인권 문제도 청소년이 참정권을 갖는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 내에서 청소년의 지위가 달라질 거예요. 때려도 되는 존재에서 투표권을 가진 존재가 되는 거죠.” 청소년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면 푸대접 받는 청소년 인권 상황도 달라진 거란 주장이다. 강 활동가의 말대로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생긴다면 자연스레 모든 정당에서 청소년 관련 정책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강 활동가는 선거권의 제한 연령을 낮추고 선거운동과 정당 가입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만큼이나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정치 참여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학교와 같은 공동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학칙이나 학교 상황을 바꾸는 경험을 한다면 청소년의 인식이 크게 달라질 거예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이 늘어나겠죠.”

법이 약자를 위하면 좋겠어요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반복되는 폭언은 참아왔지만 폭력까지 휘두르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노동자와 사용자를 불러 진술서를 작성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노동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용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사용자의 폭행이 법적으로 인정되기 전에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없단다. 기소 결정까지는 3~6개월이 걸린다.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회사 기숙사가 아니면 갈 곳도 없는 노동자는 결국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때린 사용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재한베트남공동체 대표

★ 강자 위해서 만들어진 법을 바꿔야 해요
사용자에게 폭행을 당한 노동자가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다는 고용센터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우리 법이 그렇다. 노동자는 이직의 자유가 없고, 사용자가 휴·폐업을 하거나 계약 해지를 원할 때 또는 사용자가 법적으로 인정한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것도 3년 동안 3번으로 제한된다. 이게 바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25조의 내용이다.

원옥금 대표는 관련 상담을 요청하는 베트남 이주 노동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늘 바쁘다. 인터뷰를 위해 재한베트남공동체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원 대표는 고용센터 직원과 통화 중이었다.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다는 전화가 매일 와요. 폭행을 당했더라도 사용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법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못 기다리고 합의해서 사업장을 옮기게 되면 사업장 변경 횟수로 계산이 돼요. 노동자 입장에서 항상 불리해요.”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건강 문제 등 노동자 측 사유로는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고용센터나 경찰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법으로 정해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사용자는 맘대로 하고, 잘못을 해도 처벌이 약해요. 법이 강자를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약자가 아니라.”


✽ 외국인고용법 개정 요구 발언을 하는 원옥금 대표 / ✽ 사무실 앞에 모인 재한베트남공동체 회원들

★ 법을 지키기 위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해요
베트남 국영회사에서 영어 통역 일을 하던 원 대표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베트남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남편을 만나면서다. 이후 결혼해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베트남가족모임’이라는 Daum 카페를 통해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인 아내의 편지를 번역해 주던 것이 법을 배운 계기가 됐다. “갈등이 심각하니까 번역만으로는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제대로 도우려면 법을 알아야겠다 싶었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한 원 대표는 본격적으로 결혼이주 여성과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베트남 사람들끼리 서로 돕기 위해 재한베트남공동체도 만들었다. 수술이나 조산 등으로 병원비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하거나 친목 모임을 열기도 하고 경기도 화성으로 봉사 활동도 다닌다. 법률적 문제 상담이나 통·번역은 원 대표 혼자 다 맡는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원 대표뿐이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관둘 수가 없단다. “전화가 오는데 어떡해요. 받으면 저도 억울하고 답답해서 안 도울 수가 없어요. 도움이 되면 공부하길 잘했구나 보람도 느끼고요.”

원 대표는 일부 조항을 제외하면 법에는 문제가 없다며 법을 잘 지키기만 해도 자신의 일이 줄어들 거라고 했다. “법을 잘 지키도록 교육해야 해요. 특히 사장님들! 외국인 노동자가 잘 모른다고 법을 어기고 맘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거든요. 법을 잘 지키고 환경을 개선하도록 교육시키고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면 사회가 더 좋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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