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 소똥의 힘을 믿나요
<소똥>, 소똥의 힘을 믿나요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Bull Shit. 헛소리. 허튼소리라는 의미의 영어식 비속어다. 직역하면 ‘소똥’이다. 인도의 한 신자유주의 로비스트 바룬 미트라가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에게 준 상의 이름이기도 하다. 바룬 미트라는 반다나 시바의 환경운동이 인도의 가난을 지속하는데 기여한다며 Bull Shit Award를 수여한다. 조롱의 의미다.
반다나 시바는 인도의 핵물리학자이자 환경운동가다. 1993년엔 삶의 권리상(The Right Livelihood)을 받기도 했다. 인도를 비롯한 제 3세계를 주무대로 유전공학, 생명윤리, 민간농업을 둘러싼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의 상대는 몬산토와 카길을 비롯한 초국적 곡물기업이다. 스웨덴의 영화 감독인 페아 홀름퀴스트와 수잔 카달리안은 2년간 시바를 쫓으며 그녀의 활동과 이야기를 기록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 반다나 시바
영화의 도입, 한 소녀가 어느 남자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소녀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의 영정을 들고 있다. 자살한 인도의 농민들이다. 영화가 만들어지던 10여년 전, 인도에선 한 달에 600여 명의 농민들이 자살했다. 초국적 곡물기업이 농업을 장악하면서 인도의 농업경제는 무너져갔다. 농가 부채는 빠르게 상승했고 농민들은 죽어갔다. 반다나 시바는 ‘세계화’ 혹은 ‘지구화’라는 이름을 띈 곡물기업의 시장침투에 맞서 싸운다. 인도와 미국, 뮌헨, 칸쿤, 암스테르담까지. 시바는 기업의 ‘전지구화’에 맞서 그야말로 전 지구를 누빈다.
그녀의 ‘주적’은 몬산토(monsanto)라는 초국적기업이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즉 유전자 조작식품을 만드는 이 기업으로 인해 인도의 농업은 페허가 되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반다나 시바가 몬산토에 반대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몬산토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현대로 ‘본래 그곳에 있었던’ 자연에 특허를 신청하며 생명의 가치를 독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국적 종자 기업인 몬산토는 전세계 GMO 특허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 작물 종자 사용권의 67%나 소유한 몬산토는 사실상 지구 전체의 식량 생산을 조종하고 있다. 이를테면 농약과 곡물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시장을 점령하는 방식다. 몬산토는 자기들이 만든 ‘라운드업(Round-up)’이라는 제초제를 독점적으로 팔기 위해 라운드업 저항성 옥수수와 콩을 만들어 퍼뜨렸다. 그 결과 생물종 다양성은 심각하게 파괴된다.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라는 이 유전자조작 콩과 옥수수는 제초제를 뿌리면 주변 풀들이 모두 누렇게 말라 죽는데도 혼자만 싱싱하게 자란다.
종자와 농약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몬산토는 인도의 전통적인 밀 품종을 ‘특허권’이란 이름으로 독점하려 하고, 그녀는 특허권과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평범한 민중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역설한다.
유기농 재배 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대안적인 민간 농업을 실험하는 그녀는 사람들이 스스로 먹거리와 삶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는 몬산토 연구소의 내부에 침투하고, 몬산토가 오히려 민중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준다고 믿는 신자유주의 로비스트 바룬 미트라의 목소리도 담는다. 뮌헨의 특허권 사무소부터 코카콜라 공장 폐쇄 운동이 일어난 케랄라까지, 반다나 시바는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자본의 논리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전세계를 누빈 시바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단순하다. 세계화, 전 지구화는 정말 농민을 구할 것인가. 정말 다국적 기업은 농민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는가, 자유무역은 정말 공정한 게임인가.
영화는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과 개발도상국으로 뚜렷하게 분할된 지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극명하게 대비된 두 세계의 접점, 혹은 전선에서 시바는 싸우고 있다. 시바는 “세계의 먹을거리는 초국적 기업의 시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생명과 곡식과 농부의 삶이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쥐어져선 안된다고 말한다. 시바는 1세계의 거대 자본이 시바가 가난을 대물림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 칸쿤, 이경해, 그 후 15년
반다나 시바의 행보를 좇던 카메라는 WTO 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 도착한다. 그 때 칸쿤에서 한국의 농민 이경해가 죽었다. “WTO kills, Farmers”를 외친 이경해는 제 손으로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영화는 “한국인 농부 이경해의 자살은, 인도 농민들의 자살이 인도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님을 증명 한다”고 말한다.
과거 국내 1위의 종자회사였던 흥농종묘와 4위였던 중앙종묘는 IMF를 겪으며 외국계 기업에 흡수-합병됐다. 이 기업을 사들인 것이 몬산토 코리아다. 이후 몬산토는 국내 최대의 종자회사로 군림했다. 지난 2012년 국내 회사가 이들로부터 일부 종자의 국내 판매권을 사들였지만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시금치 등 수익이 높은 70여 품목은 여전히 몬산토 소유다. 종자도 문제지만 수입 농산물은 더 큰 위협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90%, 콩의 97% 이상이 GMO이고, 우리가 먹는 수입 농산물은 대부분 이곳에서 들여온다. 한국인이 먹는 거의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이 바로 이 옥수수로 만들어진다. 마트에서 파는 된장, 간장, 고추장, 두부는 이 콩을 원료로 한다. 현재 한국의 먹을거리는 몬산토가 지배하고 있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몬산토와 나란히 ‘카길(cargill)’도 국내 식자재 시장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곡물 메이저들은 연 5조원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5위 수입국인 한국에 곡물 메이저들은 일찌감치 진출했다. 카길은 한국전쟁 후 식량 원조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던 기업이다. 63개국에 지사를 두고 쌀·밀·옥수수·콩 등 모든 농산물을 유통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한다. 한국에는 2001년에 법인을 만들어 진출했다. 2007년 국내 사료업체를 인수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사료 공장을 충남 당진에 마련하면서 현재 사료시장 1위 자리를 꿰찼다. 우리는 지금 몬산토가 파는 GMO 종자를 사서 카길이 파는 비료로 키워낸 농산물을 먹고 있다. 종 다양성과 식량자급은 이미 사라졌다. 초국적 곡물 메이저가 공급하는 품목을 그들이 책정하는 가격으로 구입해야한다. 수백 년 동안 재배해온 청양고추를 심을 때마다 우리 농가는 몬산토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재배되는 작물의 4분 1만 재래종이다.
칸쿤에서 이경해가 죽은지 15년이 지났지만 몬산토와 카길같은 거대 곡물 메이저의 한국 진출은 ‘주춤’도 하지 않았다. WTO는 FTA로 옷을 갈아입었다.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던 쌀을 주식인 밥짓는 쌀까지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는 “쌀이 남아돌아 더 이상 수매를 할 수 없다”며 농민들에게 미리 지급한 수매가를 도로 내놓으라고 했다. 우리는 이경해에게도 ‘소똥상’을 안겨준 셈일까.
# 당신의 소똥은 무엇인가
반다나 시바에게 ‘소똥상’을 준 바룬 미트라에게 소똥은 헛소리, 허튼소리다. 생명윤리니, 유기농이니, 자급적 농업이니 하는 말은 바룬 미트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와 거대 곡물 메이저에겐 그저 ‘가난을 지속시키는 말’일 뿐이다. 반면에 반다나 시바에게 소똥은 자연에서 얻은 중요한 에너지다. 인도의 농부들은 소똥을 말려서 불을 지피는 연료로 사용하고 집을 짓는 재료로도 쓴다. 그들에게 소똥은 순환이고 자연에 대한 의탁이다.
간극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똥을 연료로 쓰지 않는다. 어쩌면 시바와 미트라로 상징되는 양쪽의 승부는 이미 진즉에 결정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고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시바는 여전히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소똥의 힘을 믿느냐고. 당신의 소똥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