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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 우리의 이야기

나와 당신, 우리의 이야기

박한나 자유기고가 hanna_p@naver.com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커다란 산 하나를 넘었다. 대통령에서 헌정 사상 처음 탄핵된 대통령으로, 동시에 피고인으로 신분이 바뀐 박 전 대통령은 결국 구속 기소되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가치가 확인됐다고 안심하기에는 최종 판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지난 반년 동안, 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전 방위적으로 지속되어 온 권한 남용과 최순실 국정 개입 실태를 확인하면서 분노와 수치심, 자괴감에 괴로웠던 만큼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수호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사회 전체로 확대된 덕분이다.

다시 시작이다.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겨우내 든 촛불로 어렵게 얻어 낸 기회다. 누구에게 물어야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가장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광장을 평화롭게 이끈 이가 누구일까 따져 봤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인공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시민 모두였다. 법과 질서를 지키며 민주주의를 수호한 평범한 국민들.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확인한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명제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아니던가!

그래서 주인들을 모셨다. 대리자나 대표자, 연구자가 아니어서 언제나 대중으로만 존재하는 주인들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은 주인이면서도 늘 홀대받는 존재, 결국 나와 당신, 우리였다. 도전보다 포기가 편한 비정규직 청년, 일하랴 애 키우랴 눈코 뜰 새 없는 워킹맘,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가 괴로운 임차인, 소통이 부재한 사회가 답답한 예술가. 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한 한국 사회의 민주성을 가감 없이 평가하고, 그 순간마다 자신이 떠올린 생각과 고민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야기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이어졌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쌓여 있었다는 증거이겠다. 왜 주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을까? 지면에 다 담아 내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들의 말이 쌓이지 않고 계속 목소리가 들려야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

 

청소년기,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낸다. 입시 전쟁이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점, 토익, 자격증으로 모자라
사회봉사에 인턴 경력까지 쌓아야 한다.
취업 전쟁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 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이윤 씨는 스스로 생존기라 말할 만큼 치열한 20대를 살았다. (사진은 인터뷰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용임)

치열한 20대 생존기

“20대 중반까지는 live가 아니라 survive였어요.” 3년 차 직장인 이윤 씨 역시 10대 후반부터 늘 치열한 삶을 살았다.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다. 졸업 후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직장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아예 직종 자체가 달라진 적도 있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여행사였다. 6개월 인턴직이었는데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모든 선배의 컴퓨터를 켜는 것이었다. 할 일이 없어도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이 씨 역시 퇴근을 하지 못했다. 야근 수당은 없었다. 문제를 지적하면 돌아오는 것은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뿐이었다.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이 씨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취업 준비를 잘 하지 못해서, 스펙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는 건가 싶었죠.” 계약 기간이 끝나자 이 씨는 회사를 나왔다.

다음 취직한 곳은 대학이었다. 행정직으로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잘 지켜지고 업무도 적성에 맞았지만 최대 2년 계약직이었다. 2년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옮겨야 하다 보니 1년 차부터 불안했다. “일을 하면서도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필요해서 야근을 할 때도 (고용을 보장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나 싶은 회의가 들었죠.”

그래서 이직한 곳이 지금의 학교이다. 입·휴학부터 교과 과정 관리까지 학과 내 모든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 비정규직 교직원인 것은 변함없지만 이곳에서는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무기 계약을 약속했다.

일상이 보호받는 사회

사실 이 씨는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업에 나섰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생존기가 도전기이기도 했거든요. 생존의 비중이 너무 커서 도전에의 갈망만큼 시도해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점점 ‘도전’이 꺼려진다. 어렵게 일군 일상에서 다시 불확실한 세계로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도전은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고 성공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 씨에게 민주주의란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다. “좀 무서운 게 소망이 계속 좌절되고 실패가 반복되면 포기하게 되잖아요. 대단한 성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 그 일상을 지켜내는 방법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광장에 나갈 필요가 없는 일상, 주당 40시간 노동하면 위태롭지 않은 삶,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안 해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이 모든 게 민주주의란 뜻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해결되는 문제란없어요. 불편하게 여기고 불편함을 표현해야 하죠.” 사회와 주변에 관심을 갖고 불편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는 이 씨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누구나 일상의 여백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삶에 여백이 있어야 생각도 하고 스스로를 탐색할 여유가 생기거든요. 인간다움은 그런 데서 나오잖아요. 예술이나 여행 등 삶을 풍성히 하는 일을 배부른 행동으로 여기지 않고, 어떤 모양이라도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뒤,
7시 35분부터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채비를 하다 보면 8시 반쯤
아이들을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오신다.
둘째를 맡기고 나와
첫째는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시차 근무를 신청해 9시 반에
출근을 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다.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6시 반이 되면
곧장 집으로 간다. 아주머니를 배웅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저녁 9시 반,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인다.


✽ 근무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육아에 쓰고 있는 김희선 씨와 남편. 부부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해도 대한민국의 워킹맘은 숨 돌릴 틈이 없다. ©right; 여성신문

워킹맘, 워킹부모의 일상

다섯 살 아들과 세 살 딸을 키우는 결혼 7년차 워킹맘 김희선 씨의 생활은 이런 일과의 반복이다. 그나마도 정시에 퇴근할 때 상황이고, 실상은 야근이 잦다. 그땐 10시 넘어 집에 들어간다.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기 때문에 조용히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쉴 틈이 없는 일상이지만 자신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김 씨는 말한다. 저녁에는 퇴근이 비교적 이른 남편이 육아를 주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독박 육아는 아니라는 거다.

아침에는 김 씨가, 저녁에는 남편이 주로 육아를 담당하는 편인데 부부 모두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은 없다. 그래서 김 씨 부부는 주말 아침에 번갈아 ‘육아 올인’을 한다. 한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한 사람은 조조영화를 보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이 늦게 일어나는 주말 아침을 활용해 서로에게 여유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김 씨 부부가 생각해 낸 방법이다. “잠깐이나마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게 진짜 좋아요. 조조영화 한 편이라도 보고 오면 즐거운 기분으로 애들하고도 더 열심히 놀아 주게 돼요.”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이처럼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며 아이를 길러 내고 있지만, 김 씨에게 세상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확 달라졌다. “무엇을 하든 상상 그 이상이에요. 이전까지 내가 살던 대한민국이 아니죠.”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이 따로 있고, 예전에 다니던 식당을 가도 똑같지가 않다.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까지 나무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번은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윗집에서 내려오신 적이 있어요. 명절 기차 안에서 누군 애 안 키워 봤냐며 조용히 시키라고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를 만난 적도 있죠.”

저출생이 문제라면서도 정작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육아휴직제도가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휴직 신청은 쉽지 않다. 김 씨는 육아휴직 문제로 계약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잘린 적도 있다. 둘째를 임신하자 재계약 시점에 계약 만료라는 이름으로 계약을 해지당한 것이다. “회사가 고용보험에서 육아휴직 급여를 지원받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계약이 해지되니 회사와 저는 아무 관계가 아니라서 (항의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워킹맘으로서 김 씨가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 긴 노동 시간이다. “시간이 너무 없어요. 워킹맘이 아닌 직장인도 마찬가지예요.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일과 가정의 양립도 어렵고 무엇보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김 씨의 바람은 노동 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도 늘리고 모두가 스스로를 위해 쓸 시간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한 가지만 열심히 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거든요. 일만 많이 할 때도, 애만 키우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의지대로 조정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두루두루 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조물주 위에 갓물주(god와 건물주를 합친 신조어)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건물주의 위력은
그야말로 신과 같다. 임대 계약은 건물주와
임차인이 함께 하지만 보증금과 임대료
결정권은 침범할 수 없는 건물주의 영역이다.
임차인의 역할은 건물주 결정에 따를 것인지,
떠날 것인지 선택하는 것뿐이다.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과 상인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건물주의
권력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다.


✽ 성수동 공장에서 참여한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면 건물 외벽에 나타나는 미디어 페인팅 프로젝트. 이런 흥미로운 일들이 생겨나자 성수동의 임대료는 상승하고 곳곳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우측 사진 출처: 성수애서 www.facebook.com/atseongsu)

갈수록 빠르게 퍼지는 젠트리피케이션

10년 넘게 마포구 상수동에 살고 있는 신윤선 씨는 재작년부터 성동구 성수동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홍대 앞과 서교동, 상수동 일대와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성수동의 변화를 수없이 보고 겪었다. 인터뷰 전날에도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단톡방에서 큰길도 아닌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 임대료가 250% 올랐다는 망원동 조합원의 한탄을 들었다. 신 씨가 익숙한 마포를 두고 임대료가 싸서 선택한 성수동도 2~3년 사이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서교동에서 12년 동안 일어났던 일이 상수동에서는 6년 만에 일어나고 성수동에서는 2~3년 만에 압축적으로 일어났어요. (자본가들이)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릴까 고민하고 지켜보며 투자를 하다가 점점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거죠.”

다행히 성동구는 관련 조례를 만들고 건물주와 협약을 맺는 등 적극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 씨는 이러한 성동구의 노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애초에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주요 자본은 투자를 목적으로 지역 외부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이 문제에 공감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민주주의 저해

신 씨의 날카로운 분석을 듣다 보면 부동산이나 경제 전문가 아닐까 싶지만 신 씨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쾌한 아이디어 성수동공장(이하 성수동공장)’의 대표다. 10년 동안 큐레이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상, 뉴미디어, SNS 미디어, 미디어아트, 미디어교육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사업체를 차리기 전까지 신 씨에게 건물주는 막연히 싫은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성수동공장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잘 보여야 하는 대상으로 변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건물주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동등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신 씨는 이것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갖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물주와 임차인의 갈등은 합의가 아닌 경제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리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와 부딪친다는 것이다. “건물주의 요구에 순응하는 게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부당한 건 이야기하고 서로 합의를 할 수 있어야죠. 이를 위해 일방적으로 건물주에게 유리한 법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의견을 반영해서 법이 수정되는 게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요?”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 문제라고 신 씨는 말한다. “다들 열심히 살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의 문제 앞에선 혼자 돌파구를 만들어서 흐름을 거스르는 것도, 순응해서 파도에 올라타는 것도 어려워요.” 근본적 변화가 쉽게 일어나진 않겠지만 최근 임차인이 건물주의 일방적인 퇴거 통보에 끝까지 맞서 합의를 이뤄 내거나 수백 명이 건물을 공동 소유하려는 움직임에서 신 씨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동안은 늘 포기하고 무언가 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거든요. 앞으로는 계획 세울 생각이 드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버스가 다니는 횟수를 손으로 셀 수 있는
시골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도시를 동경했다.
도시에 가고 싶었고, 결국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터전을 잡고 마주한 도시의 모습은
소년이 상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설렘과 욕망이 공존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곳,
도시에 대한 소년의 관심은 더 깊어졌다.
그 관심에서 도시의 불안과 그로테스크를
그려 내는 극단 ‘서울괴담’이 탄생했다.


✽ 북정마을 배경으로 한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좌)과 도시의 삶을 쓰레기 더미에 비유한 ‘정크타임즈’(우) 공연 모습. 이처럼 주로 거리에서 펼쳐지는 서울괴담의 공연은 도시의 괴기를 이야기한다.

마을의 공동체성이 회복될 때 민주주의도 발전

‘서울괴담’의 공연은 광장, 골목, 폐가 등 도시의 풍경 그대로를 무대 삼아 극장보다 거리에서 더 많이 열린다. 특히 주민들과 함께 여러 공연과 전시를 진행한 북정마을은 극단 대표 유영봉 씨에게 각별한 곳이다. 공연 전부터 유 씨와 단원들이 마을 주민들과 직접 만나 어울리며 일상을 함께하기도 했고, 북정마을이 다른 도시 마을과 달리 이웃과 오가면서 관계를 맺는 공동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이다. 유 씨는 이곳에서 근 미래의 모습을 본다고 표현했다. 마을에서 활발한 소통이 일어나고 관계망이 형성될 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소통이 단절되고 타인을 경계하며 매체로만 정보를 접하고 온라인으로만 의견을 나누게 되면서 개인의 결정권은 약화되고 기업이나 언론, 정부 등의 권력이 강해진다는 것이 유 씨의 생각이다. 국가 단위보다 개인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마을에서조차 소통이 없다 보니 정보와 자본 유무에 따라 권력이 생기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동하지 못한다는 거다.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을부터 경계를 허물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가 될 때 민주적인 결정이 가능하고 사회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유 씨는 말한다. “예를 들어 범죄가 일어났어요. 이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죠. 이건 마을에서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공간이나 사람 등 마을 안의 문제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도 있고요. 정부나 언론, 광장에서는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해결이죠.”

사회 병폐는 상상력의 부재 문제

유 씨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말한다. “예술가조차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따라가요. 자본이 많은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적용한다거나…. 여긴 브로드웨이가 아니잖아요? 왜 자기 삶은 돌아보지 않고 스탠더드(standard)한, 전문화된 것만 바라보는지 안타까워요.”

실제로 유 씨는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바라보고 스스로의 삶에 알맞은 방식을 찾는다. 북정마을 근처에 자리한 자신의 전셋집에 단원들을 들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는 곳을 터전으로 창작과 공연을 해야 한다는 작업 철학과 성북을 터전으로 삼기 어려운 단원들의 상황을 고려해 찾아낸 극단 운영 방식인 것이다.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유 씨는 말한다. “상상하려고 하는 힘이 필요해요. 세월호를 탄 승객의 상황과 심정을 상상할 수 있어야 그들의 아픔을 감지하고 공감할 수 있죠.” 여기서 상상력이란 무(無)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헤아리는 능력에 가깝다. 현실에 정확하게 발을 딛고 있는 감각을 유 씨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유 씨에게 민주주의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 기존의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딛고 있는 땅과 환경에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과정, 그걸 생각해 낼 수 있는 상상력 그 자체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죠. 민주주의는 평등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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