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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 희망버스> -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깔깔깔 희망버스> -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글 성지훈


얼마 전 캡처된 한 트윗을 보고 피식거리며 웃었다. “문통이 국정 정상화를 빨리 하려는데 당신이 지지하는 민노총을 비롯한 소위 노동자 집단은 무슨 짓을 하고 있죠? 9년을 찍소리 못하고 지내고 1년을 더 못참겠다고 국민들 눈을 어지럽히고 있네요.”라는 트윗. 근래 온라인의 전반적인 정서이기도 한 이 내용이 특별히 웃겼던 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곳에 달린 탓이다. 이 트윗이 겨냥한 ‘당신’의 이름은 김진숙이다. 지난 9년이 아니라 1986년 해고 이후 지난 30년간 가장 치열하게 싸워온 이름.

2011년의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크레인에서 309일만에 내려온 김진숙이 눈을 꼭 감고 두 팔을 치켜 뻗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울었고 또 웃었다.

# 85호 크레인 – 그림자들의 섬
김진숙은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었다. 1986년에는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됐으나 그 해 7월, 해고됐다. 1986년, 26살에 시작한 그녀의 복직투쟁은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의 85호 크레인은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이어온 투쟁의 상징이다. 2003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김주익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 국민들의 참여로 만들어냈다는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노동자들은 오히려 갈 곳을 잃었다.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이현중, 이해남, 이용석 등등등.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동안 민주, 진보, 개혁, 참여를 운운하던 정권은 비정규직법을 만들었고 기업들의 정리해고를 묵인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됐을 때 운동권의 3할이 떨어져 나가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선 그야말로 노동자들만 남았다고 했다. 영도의 바다 위, 섬처럼 우뚝 솟은 85호 크레인은 어쩌면 한진중공업 투쟁의 상징이 아니라 외롭게 남아 여전히 싸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상징이었다. 그들만이 남아 서로를 보듬고 있는 그림자들의 섬.

2011년 1월6일 새벽 5시50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그 섬같은 85호 크레인에 오른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1년 새 3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데 이어 생산직 직원 400여명을 추가로 감원키로 하자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157일. 그 섬에 하나 둘 씩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 희망버스 - This Machine Kills Fascists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소금꽃나무’ (소금꽃나무는 김진숙이 쓴 책의 제목이다. 소금꽃나무는 땀이 말라붙어 등에 하얗게 소금꽃이 핀 채 늘어서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김진숙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모였다. ‘김진숙 구하기’에 뛰어든 수만 명의 사람 중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새긴 투사는 없다. 만사 제쳐두고 그림자 섬 영도에 온 한 청년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노동자인 줄도 몰랐다. 경찰의 삼엄한 경계선을 뚫느라 가방까지 잃어버렸다는 주부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대신 화사한 등산복을 입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둘 모여 기꺼이 물대포를 맞고, 노숙을 감내한다. 밤새 난장을 벌이고 신나게 웃는다. 비장한 각오 대신에 일상어와 개드립이 들이친다. 물대포는 기타로 막고 경찰의 방송은 노랫소리로 뒤덮는다. 전장의 삼엄 대신에 가락과 춤과 깔깔깔 모자가 섬으로 밀려들었다. 희망버스 탑승자들의 투쟁은 축제였다. 그리고 그 축제가 놓은 다리는 섬에 갇힌 김진숙과 노동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꺼내왔다.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는 다양하게 결집된 희망버스의 풍경과 그 연대의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나는 왜 그 버스에 탔을까?” 참가비 3만원, 1박2일의 여정, 트위터를 통해 김진숙의 소식을 처음 접하고 무작정 따라간 이 희망의 버스 안에서 <깔깔깔 희망버스>의 감독 이수정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희망버스에 푹 빠져 있었다”는 내레이션처럼 그녀는 진행하던 다른 작업을 모두 접고 이후 8개월간 희망버스와 함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발견한 희망의 실체는 연대다.

# 이 노래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보내는 호출 주파수이다
1700만의 사람들이 광장에 나섰고 유례없던 조기대선을 만들어냈다. 국민적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새 정부는 우리사회에 일찍이 없던 민주와 진보, 인권과 정의의 시대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섬 위에 있다. 85호 크레인은 김진숙이 내려오자마자 해체돼 고철 덩어리가 됐는데도.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155원 인상안을 제시했다. “저임금 단신근로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의 정책적 목표는 이미 달성됐고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현재의 최저 임금도 매우 과도한 수준”이라는 논리다. 사용자 측이 최저임금 인상안을 내놓은 건 처음이라는 생색도 잊지 않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는 새 대통령의 ‘역대급 업적’으로 칭송받지만 실상은 자회사 설립을 통한 간접고용이다. 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다. 처우는 나아지지 않는다. 뉴스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고 보도했지만. 재벌개혁과 최저임금 인상, 노조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민주노총이 벌이는 사회적 총파업은 사회적 뭇매를 맞고 있다.

희망버스에서 5년. 노동자들은 다시 고립되고 있다. 이제 크레인마저 사라졌고 어쩌면 그 날 희망버스에 탔을지 모르는 이들마저 이제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김진숙에게 “9년동안 찍소리도 못했다”고 말하는 이들. ‘새 대통령’을 믿기 때문이라나. 희망버스가 구한 연대,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던 고립은 이제 끝나버린 걸까. 희망버스가 호출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이 바뀐 세상, 그보다는 대통령을 바꿔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세상.

#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영화는 단조롭다. 2003년 김주익, 곽재규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으며 오열하는 김진숙의 영상으로 시작해 2011년 크레인에서 내려와 웃는 김진숙까지 시간순으로 영상들을 묶어낸 단조로운 구성은 희망버스의 기적을 전달하기엔 역부족이다. 과도한 내레이션 역시 희망버스의 기적을 사적 후일담에 머물게 만든다. 4개월이 넘는 연대의 순간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점은 돋보이지만 김진숙으로 표상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박성미 감독과 김여진, 이소선으로 대변되는 연대세력의 접합점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건 <깔깔깔 희망버스>를 연출한 이수정 감독이 카메라 밖보다는 카메라가 비추는 세상 안에 너무 깊이 몰입했던 탓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5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립된 노동자들의 섬은 영도의 85호 크레인에서 쌍용차 공장이 있던 평택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이 숨어있던 조계사로, 조롱받는 파업이 이뤄지는 서울 한복판의 광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김진숙의 싸움은,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들에게 다리를 놓은 희망버스는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의 연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끝났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연대를 구하는 그 싸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로 만들어갈 그 싸움들. 그 싸움의 끝에서야 비로소 김진숙과 ‘불온한 외부세력’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버스가 올 때마다 김진숙은 크레인 위에서 매번 이렇게 외쳤다.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끝이 어디일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우리의 희망버스는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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