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존과 살핌의 사회 - 직접 민주주의 소통의 시대, 그래서 저널리즘이 더 중요하다
Special Theme 3 | 공존과 살핌의 사회
직접 민주주의 소통의 시대, 그래서 저널리즘이 더 중요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탐사하는 전통적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
글 김서중 성공회대학교신문방송학과교수/sjkim@skhu.ac.kr
전통적 매체의 위기
한국 언론의 역사는 참 불행하다. 통제의 역사로 점철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구 언론의 역사에 통제의 시기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완벽히 자유롭다는 뜻도 아니 다. 단지 서구 언론은 전통적 매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통제에 저항하고 위 기를 극복하였다. 사회가 언론의 존재 이유를 인정할 정도의 저널리즘 전통을 확립했고 일부 언론은 수용자의 절대적 신뢰를 확보하는 신화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그런 위상을 확보하기 전에 전통적 매체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점이 다르다.
지금은 전통적 매체의 위기다.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매체와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전 통적 매체들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졌다. 신문에서 방송으로,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인터넷 중에서도 모바일 인터넷으로 사회적 소통의 무게 중심이 이동 중이다. 서구의 언 론계에도 전통적 매체의 위기 현상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신문이나 TV가 일정한 영 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저널리즘 전통에 대한 수용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문의 구독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으며 본방사수를 의미하는 TV 시 청률도 낮아졌다. 문제는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의 전통적 매체들이 더 급격히 쇠락한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한 가지 원인은 한국의 수용자들이 기존 언론의 존재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의 수용자들은 서구에 비해 신뢰 할 수 있는 언론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정권이 언론을 억압했기 때문이기 도 하지만, 권위주의적 통제 속에서 양적으로만 성장한 언론들이 민 주화가 진행된 1987년 이후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축하기 보다는 스스로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되는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소통에 적 극 참여하고 일정 부분 그 힘으로 2016년 촛불혁명을 이뤄내는 과정 에서 시민들의 언론 불신은 극도에 달했다.
그럼 이제 언론은 고쳐 쓰기보다는 무시하고 직접 민주주의 방식 의 소통으로 대체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설사 플랫폼은 변화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 하려면 전통적인 언론이 정립한 바람직한 ‘저널리즘 원칙’은 필수 전제다. 민주주의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 에 근거해 올바른 판단을 추구할 때 완벽해져 가는 정치사회 체제이 기 때문이다.
✽ 진보언론 <민중의소리>의 만평
저널리즘의 파괴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면, 우선 우리 사회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파괴됐는지 반추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언론인들은 기자협회나 PD협회 같은 직능 조직 또는 노동조합 결성에 나섰다. 독재를 찬양하거나 반민주·반민중적으로 보도해왔던 관행을 반성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언론 자유를 지키는 방호막이 필요하다고 보았 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에서 그리고 심지어 수구보수언론에서도 협회나 노조는 언론 자유 를 회복하고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실현할 수 있는 교두보였다.
하지만 신문영역에서는 곧 경품제공, 무료구독, 분공장 설치 등을 통해 무한 경쟁이 시작되고 언론인들은 자사이기주의적 경영 목표를 최우선시하도록 강요받았다. 즉 자본의 이해가 저널리즘의 가치 실현에 우선 했던 것이다. 저널리즘을 지켜주던 협회나 노조는 무력화됐다. 결국 수구보수언론의 권력화와 정파적인 편향성은 날로 심해졌다. 특히 언론들 은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반 저널리즘적 행태를 보였다. 신뢰 상실의 주된 요인이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다. 정권은 수구보수언론에 비 해 상대적으로 언론 자유를 향유하면서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실천하던 공영방송을 장악 하고 동토의 시대를 만들었다. 신망 받던 사장을 내쫓고,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 특보들을 사장으로 내려 보냈다. 이렇게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장들은 공영방송 장악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해직하거나 대량으로 징계했다. 그리고 저항하던 언론인들을 취재, 제작 현장에 서 배제하고 지원 부서로 인사 조치시켰다. 권력이나 낙하산 사장에 충성하는 인사들이 간부가 되고, 이들 간부들은 사실과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며 기자들에게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보도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가 공영방송의 편파 왜곡보도로 나타났다. 권력을 비판 하기는 커녕 용비어천가를 부르기 바빴다. 권력의 감시견 이어야 할 언론이 권력의 애완견 노릇을 한 결과는 치욕의 국정농단 사태로 나타났고 탄핵까지 이어졌다.
✽ 공정방송 복원, 낙하산 사장 퇴진, 해고자 복직을 위한 공동파업을 선포하는 언론인들 ©연합뉴스
감시견으로서의 언론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기레기가 되기 싫어 저항하다 취재·제작현장 에서 배제되어 유배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참 언론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옥석은 구별할 필 요가 있다. 공영방송을 장악했던 권력의 부당한 억압이 사라지면 진정한 저널리즘을 구현 할 인재들이 공영방송 내에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이나 종편 그리고 수구보수언론의 심각한 편파왜곡보도가 만들 어낸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그나마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부 언론들의 노력조차 부정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서 영향력은 작았지만 그들의 노력 덕택에 결국은 국 정농단의 진실도 수용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들 대다수는 광고 수입에 절 대적으로 의존한다. 그중에서도 삼성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런 삼성을 상대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비자금 의혹을 집중보도하고, 그로 인해 삼성으로부터 2년 이상 광고를 전혀 받지 못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야했던 한겨레나 경향의 올바른 저널리즘 실천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한겨레나 경향은 권력과 자본이 장악한 언론과 달리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권력의 감시견 노릇도 수행했다. 또 4대강의 폐해를 오마이뉴스 처럼 지속적으로 사회에 알린 언론이 있을까? 열악한 경영상태 속에서도 진실을 알리기위해 애쓴 다양한 인터넷 언론들의 존재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민주정부 시기 권력의 역린을 건드렸던 MBC의 황우석 보도나 KBS의 FTA 보도를 상기해보면 언론의 감시 기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저널리즘을 파괴한 주요언론들의 행태를 비판하는것은 옳지만 기존 언론 전체를 싸잡아 기레기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은 정치권력과 자본이 만든 동토의 왕국에서 싹을 피웠던 소중한 자산조차 폐기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기레기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저널 리즘 자체의 가치를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 등 해직언론인들이 언론청문회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가짜뉴스의 폐해
최근에는 가짜뉴스가 화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가짜뉴스가 한몫 했다는 평가가있다. 반저널리즘 즉 가짜뉴스의 유포는 사회 전체의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언론의 비판을 가짜뉴스라는 말 한마디로 매도해서 벗어나려고 한 다. 언론 불신이 누구에게 좋은지 보여주는 사례다. 권력은 언론의 비판을 싫어한다. 신뢰 받는 언론의 존재는 더욱 싫어한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적인 것은 맞다. 그런데 지금 매체 환경은 가짜뉴스가 양산되고 확산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전처럼 구전으로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것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시대가 아니다. 미국에서 생산된 가짜뉴스가 한국에 도달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 정국에서 친박 집회에 범람했던 거짓 정보들, 최근 국민의당 사례처럼 선거기간에 만들어진 조작 사건들, 인사 청문을 앞두고 나오는 왜곡된 정보들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가짜뉴스의 폐해다.
현대 사회는 가짜뉴스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심한다. JTBC가 도입하고 많은 언론들이 행하는 사실 검증(팩트 체크) 보도도 한 방편이다. 한 언론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주요 언론들이 연합해서 사실 검증을 시도하기도 한다. 언론사들과 협력하여 사실 검증을 도모하고, 가짜 뉴스를 구별해내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하려는 시민단체도 있다. 한편 독일은 가짜 뉴스에 강력한 벌금을 매기는 법을 통과시켰다. 다양한 방법들이 그 나름 가짜뉴스의 범람을 막는데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매체범람의 시대, SNS 전성의 시대에 일일이 사실 검증으로 가짜뉴스에 대응할 수 있을까?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교육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가짜뉴스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일까? 가짜뉴스 관련 연 구 중에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 별하는 사람이 1.8%에 불과하더라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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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수용자들이 가짜뉴스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 법은 진실을 전달하는 신뢰받는 언론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좋은 언론이라고 해서 백 퍼센트 진짜 뉴스를 내보내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고의가 아니라도 거짓 정보에 속아서 가짜뉴스를 유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기자가 검증하고 또 검증하는 과정이 개인이 가짜뉴스를 판별하려는 노력보다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실시간 뉴스에서조차 3단계 에 걸쳐 검증하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즉 특종을 포기한다는 CNN의 방침이 던지는 시사점은 중요하다. 이는 CNN뿐만 아니라 서구의 신뢰받는 언론들이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일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이 중요한 이유다.
언론 신뢰 회복과 민주주의의 강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인들이 정치권력과 자본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저널리즘 원칙이 언론 현장에서 관철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수용자들이 신뢰하는 언론이 늘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길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공공의 자산인 공영방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이 내려 보낸 사장과 간부들이 물러나고, 권력의 언론장악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역언론인을 청산하고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 회나 언론학계에서 논의되는 일명 방송장악방지법은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더불어 방송규제기구가 집권 세력의 일방적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러나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반위에 언론인들의 내적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즉 취재·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언론인들이 양심에 따라 보도 하는것을 보장 해야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목포현장의 MBC기자들이 전원구조 보도에 대해 오보일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음에도 묵살한 편집 간 부들의 행태는 내적 자유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기술과 사회 인식의 발달로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소통이 원활해지고 더욱 확대되는 현상은 매우 소중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소통이 오염되지 않으려면 지식과 정보의 공급원인 언론에서 저널리즘 원칙이 구현 돼야만 한다. 언론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