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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곳에서 평화의 통로가 될 임진각

막다른 곳에서 평화의 통로가 될 임진각

박한나 작가 / hanna_p@naver.com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 박한나


청명했던 추석 다음 날, 통일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길 끝에 다다르자 차량이 줄지어 섰다. 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임진각을 찾은 것이다. 민간인이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있는 북쪽 한계 지점, 휴전선(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7km 떨어진 곳, 서울보다 개성이 가까운 경기 파주시 임진각(臨津閣). 시민들은 어떤 일로 이곳에 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단의 상처, 끊어진 길

임진각은 1972년 북한 실향민을 위해 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을 가리킨다. 임진각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맨눈으로도 북한 땅을 볼 수 있다. 보이는 것은 산등성이가 전부지만 실향민에게는 꿈에서도 그리는 고향이다. 6‧25 전쟁 때 개성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백발성성한 할아버지가 된 한상욱 씨는 1년에 한 번은 이곳을 찾는다. 멀리서나마 고향을 보고 싶어 임진각에 오지만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북한을 바라보면 착잡한 마음뿐이다.

임진각 앞쪽에 위치한 망배단은 한 씨 같은 실향민을 위해 만들어진 배례 장소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은 명절이나 가족이 그리울 때 조금이나마 고향과 가까운 이곳에서 조상에게 인사를 드린다. 실향민에게는 망배단이 임시 고향인 셈이다. 실향민들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망배단에서 합동 경모대회를 열었다. 경모대회의 차례상은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지만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애달프고 서럽다. “얼른 통일이 돼서 (실향민들이) 가족도 만나고 직접 산소 가서 차례도 지내면 좋을 텐데 안타까워요.” 실향민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임진각을 찾아 경모대회를 지켜본다는 박팔봉 씨는 소식도 알 수 없고 왕래도 할 수 없는 이산가족의 상황을 가슴 아파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1930년대 경의선의 실제 모습을 복원한 열차 ⓒ 박한나

 

남북 분단과 대립의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끊어진 선로와 멈춰 선 열차 역시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강민 씨가 임진각을 찾았을 때 인상 깊었던 것도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였다. “전쟁과 역사의 산증인인 다 낡은 기차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강 씨의 말처럼 이 기관차를 살펴보면 바퀴는 휘어졌고 곳곳에 1,000개가 넘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폭격을 당한 것은 열차만이 아니다. 기차가 오가는 길, 철로 역시 피폭을 당해 끊어졌다. 사실 철마가 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크다. 길이 끊긴 상처는 독개다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독개다리는 임진강 철교로 경의선 상행 선로였지만 한국 전쟁 때 철로가 파괴되어 교각만 남았는데, 이 중 일부를 스카이워크로 단장해 작년 3월부터 개방되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에 있지만 관람 시간 동안에는 유일하게 별도의 허가 없이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만큼 분단의 아픔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스카이워크 끝에 서서 띄엄띄엄 교각만 남은 다리를 보고 있노라면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지난 70여 년간 이 길과 함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끊겨 있었던 것일까.

[임진각 독개다리] 6.25 전쟁 때 파괴된 교각 일부를 활용해 만든 관광형 인도교.
민간인 통제선을 지나 다리 끝 전망대에 오르면 끊어진 다리를 가깝게 볼 수 있다.  ⓒ 박한나

 

평화의 희망, 연결된 길

상처가 아물 날이 가까워진 걸까. 올해 들어 남북정상회담만 세 차례, 종전 선언과 북한의 비핵화가 추진되면서 임진각을 찾는 발길은 늘고 표정은 밝아졌다. 임진각 첫 방문이라는 박원식 부부는 “대통령도 북한에 다녀오고 그래서 와 봤어요. 예전에는 과연 통일이 이루어질까 싶었는데 최근에는 곧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아직도 통일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경의선 연결을 위한 협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남북의 자유로운 왕래는 헛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에 가까워진 것은 분명하다. 남과 북은 평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일까. 공연장과 대형 잔디언덕을 갖춘 평화누리 공원의 풍경은 다른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은 대부분의 시민들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거나 그늘에 텐트나 돗자리를 펼쳐 놓고 대화를 나누며 휴일을 즐겼다. 파주에 거주하는 우영식 씨는 나들이 삼아 임진각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곳에 산지 10년 정도 됐는데 특별히 불안한 적은 없었어요. 여기도 아이들 데리고 그냥 놀러 오는 거예요.” 실제로 평화누리 공원에는 넓은 초원 위에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나 군사분계선 근처의 삼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처럼 어디서나 아무 두려움 없이 일상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가 아닐까.

“싸우고 갈라진 아픈 곳이잖아요. 상처가 났으니까 아물어야죠.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대화도 하고 북한을 통해 대륙도 가고 임진각은 다양한 꿈과 가능성이 있는 곳이잖아요. 이런 것들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서 상처가 잘 아물었으면 좋겠어요.” 강민 씨의 바람대로 이제 임진각에는 상처 치유의 희망이 싹 트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절되어 막다른 곳이었지만 앞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만나는 통로가 되길 모두가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길이 하나로 이어지기까지 끊어졌던 세월만큼이나 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끊어진 철로가 연결되고 철마가 다시 달릴 때 돋아날 평화라는 새살은 그 소중함이 우리 안에 아로새겨져 오래도록 굳건히 지켜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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