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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올림픽> - 여전히 우리는 상계동에 살고 있다

<상계동 올림픽> - 여전히 우리는 상계동에 살고 있다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1987년. 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직선제를 쟁취했고 군부의 독재를 종식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했다. 한국은 이제 어엿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고 여겼다. 다음 해로 예정된 올림픽은 어엿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번영을 상징했다. 한강의 기적, 하늘에 떠있는 조각구름, 강물 위의 유람선을 보면서 이제 전쟁과 독재, 가난의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우리는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했다.

1987년. 상계동에 살던 1500 세대의 사람들이 포크레인과 트럭앞에 내동댕이 쳐졌다.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갈 곳이 없었다. 번영과 발전을 증명하듯 과열된 부동산 투기 시장은 빈민촌 상계동의 주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쫓겨난 이들은 민주쟁취를 외치는 대학생들이 몰려드는 명동성당에 천막을 쳤다. 온 나라가 민주주의의 승리에 취해있는 동안 이들은 구청 직원에게, 용역깡패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들에게 올림픽은 가난을 극복했다는 상징보다는 가난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확인해주는 계기에 불과했다.

# 1987년, 상계동 올림픽

<상계동 올림픽>은 1988년 나온 독립다큐영화다. 서울 올림픽을 위해 강제 철거되어야 했던 상계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들떴을 때 서울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은 집을 빼앗겼다. 카메라는 2년 6개월 동안 철거민들이 상계동에서 명동 성당으로, 다시 부천시 자투리 땅까지 내몰리는 과정을 좇으며 국가, 혹은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외면하는지 응시한다. 민주화와 번영이라는 허상의 저편에서 배제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안 감독이 철거민들을 호칭하는 대명사는 ‘그들’에서 ‘우리’로 변한다. 카메라는 현장의 바깥에서 그들을 응시하다 이윽고 현장의 가운데로 들어간다.

쫓겨난 상계동 주민들은 명동성당 앞에 지은 두 개의 대형 천막에서 300여 일을 지냈다. 아이들은 전철을 타고 상계동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언제까지나 명동에 살 수는 없었기에 주민들은 부천 고강동 고속도로변에 부지를 매입했고 건물을 짓기로 했다. 부천시에서도 이를 허가했다. 그러나 명동에서 부천으로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부천시 직원들과 용역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무허가 건물은 계고장 없이 철거 가능하다’며 건물 철거를 시도했다.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건물을 무너뜨렸다. 건물을 무너뜨리려는 용역깡패와 주민들 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날은 주민들 20여명만이 건물을 지키고 있던 날이었다. 올림픽 성화가 부천을 지나가는데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 철거의 이유였다. 가건물마저 빼앗긴 철거민들은 허허벌판에서 풍찬노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부천시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땅을 파고 비닐을 덮어 잠을 청하는 주민들을 다른 이들의 눈에서 가리겠다고 높은 담을 세웠다.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든 부정하겠다는 듯이.

# 2017년, 상계동 올림픽

상계동에서 20년이 지난 어느 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6명이 불에 타 죽었다. 금싸라기 땅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자본의 횡포가 그 자리에서 장사하며 살던 사람들을 쫓아냈다. 쫓겨나면 굶어죽는다고 싸우던 이들을 국가가 죽였다. 삶의 터전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을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며 감옥에 가뒀다. 불야성, 마천루, 휘황하고 찬란한 서울의 야경은 그들의 죽음을 딛고 있다.

상계동에서 25년이 지난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서 300 명이 목숨을 잃었다. 노후한 고물 배, 무리한 과적, 부실한 안전점검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사고가 난 후 온 국민이 바다 속으로 300개의 우주가 침몰하는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그동안 아무도 그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국가의 시스템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사고에 자국민의 생명을 하나도 구하지 못한 국가라는 사건이 더해졌다. 세계적 경제 강대국,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뤄냈다던 이 나라는 300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하는 허약한 시스템을 실토했다.

3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상계동에 살고 있다. 여전히 쫓겨나고 두들겨 맞고 존재를 부정당한다. 군부의 독재는 끝냈지만 자본이 독재를 시작했다. 철거민들은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철탑에, 망루에, 고층빌딩 전광판에 나이든 노동자들이 올라 밥을 굶는다. 군대는 사랑이 죄라고 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자국민인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한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높은 담벼락으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한 그 때처럼 이 사회는 여전히 철거민과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30년이 지나도록 상계동 올림픽은 끝나지 않았다. 상계동의 야만은 여전히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보지는 못한다.

1987년은 드라마틱했다. 6월 항쟁은 위대했고 민중들은 승리했다. 그러나 쟁취한 직선제는 군부의 적통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이후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그 의미와 성과에도 대중들에 외면당했고 새로운 자본독재의 시대를 열었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아도취는 이후의 모든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알리바이가 됐다. 상계동은 용산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2017년도 드라마틱했다. 1700만이 모인 광장은 뜨거웠고 민중들은 다시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그 때와 똑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더 좋은 세상을 외치던 목소리는 더 좋은 지도자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치환됐다. 광화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바로 옆 건물 전광판에 오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대통령을 바꿨으니 승리했다’라는 이 기시감은 또 어떤 한계의 알리바이가 될까. 3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상계동 올림픽의 성화는 꺼지지 않았다.

#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작

<상계동 올림픽>은 29분의 짧은 필름이지만 그 안에서 감독은 흥미로운 진화를 이뤄낸다. 영화의 초반부엔 원거리에서 대상, ‘피사체’를 관찰하던 카메라가 시간이 흐르면서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 간다. 초반부 ‘그들’로 호칭되던 주민들이 ‘우리’로 바뀌기도 한다. 후반부를 이루는 건 대부분 주민들의 클로즈업과 아이들의 목소리다. 이는 감독 김동원의 이후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김동원 감독은 이후 <송환>,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도 이같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대상을 관찰하기 보다 그와 유대함으로 그를 더욱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김동원 다큐의 본령은 <상계동 올림픽>에서 시작한 셈이다. 이는 비단 김동원의 영화뿐이 아니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커다란 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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