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희(당시 24세)
1971년 음력 5월 18일 출생
1984년 송정 초등학교 졸업
1987년 해운대여중 졸업
1990년 이사벨여고 졸업
1990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유아교육과 입학
1991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총학생회장 역임
부산지역전문대학 총학생회 협의회 부의장 역임
1991년 민주화 투쟁과 학원자주화 투쟁으로 제적
이후 학우들이 징계철회 투쟁에 봇물처럼 일어남
1992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1993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장 역임
1994년 부산경남지역 총학생회연합 전문대정책 역임
1995년 9월 30일 02시 위암으로 25세에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
1984년 송정 초등학교 졸업
1987년 해운대여중 졸업
1990년 이사벨여고 졸업
1990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유아교육과 입학
1991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총학생회장 역임
부산지역전문대학 총학생회 협의회 부의장 역임
1991년 민주화 투쟁과 학원자주화 투쟁으로 제적
이후 학우들이 징계철회 투쟁에 봇물처럼 일어남
1992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1993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장 역임
1994년 부산경남지역 총학생회연합 전문대정책 역임
1995년 9월 30일 02시 위암으로 25세에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
동지는 ’91년 동래여전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후 자신이 학우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학우들의 대표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고 학교당국의 비민주적이고 부정비리로 가득 찬 허위를 알게 되고, 시대의 중심에서 청년학생의 역할과 도리를 찾게 되었다.
또한 다른 동지들이 전문대 운동이 어렵다고 힘들어 할 때 전문대운동의 가능성과 전문대 학우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가열찬 활동을 전개해 왔다. ’91년 5월 9일 김영삼이 3당 야합으로 민자당을 창당한 것에 대한 전민중적 분노를 모아 전대협이 제기한 동맹휴업에 대하여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과감하게 제기하고 동지들을 규합해 동래여전(현 동부산대학)에서 처음으로 성사시킨 일은 동지의 학우들에 대한 믿음의 크기를 알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지는 민주화투쟁과 학원자주화투쟁 과정에서 제적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부산지역 전문대학총학생회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95년 9월 30일 위암으로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