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당시 28세)
1960년 12월4일 전남 광주 출생
1979년 3월 연세대 전기공학과 입학
1981년 육군입대
1986년 1월 연대 전기공학과 졸업후 IBM입사(호주 파견근무)
1987년 3월 퇴사 후 연대 정외과 편입학
1987년 10월~12월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한 청년, 학생 단체인 민족통일애국청년단 중앙본부 기획위원회에서
50여일간 숙식하며 활동
1988년 1월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각 언론기관에 부정선거에 관한 투서 및 미대사관에 투석 계획
19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 연행 후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1988년 5월 1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투신자살로 발표됨
1979년 3월 연세대 전기공학과 입학
1981년 육군입대
1986년 1월 연대 전기공학과 졸업후 IBM입사(호주 파견근무)
1987년 3월 퇴사 후 연대 정외과 편입학
1987년 10월~12월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한 청년, 학생 단체인 민족통일애국청년단 중앙본부 기획위원회에서
50여일간 숙식하며 활동
1988년 1월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각 언론기관에 부정선거에 관한 투서 및 미대사관에 투석 계획
1988년 3월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 연행 후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1988년 5월 1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투신자살로 발표됨
1988년 1월 이후 청와대, 미대사관, 백악관, 독일대사관 등에 ‘노태우 부정집권’을 고발하는 투서를 한 고정희 동지는 8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어 서초 경찰서 대공과에서 조사를 받다가 강남 성모병원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된 뒤, 5월 13일 오후 5시 40분경에 병원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병원측의 주장에 따르면 고씨는 사건당일 10층 정신병동 정문을 통해 나와 비상계단을 이용해 9층으로 내려간 뒤 공사중인 신축공사장 베니어판(구멍)을 뚫고 나가 투신, 2층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과 증언들에 의하면 병실안에서 인권위원회, 대사관 등에 탄원서를 쓰는 등 처참하게 몸부림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남긴 글
이 땅 안에서 멀쩡한 사람을 용공, 좌경으로 몰아치는 치사하고 한심한 작태는 있어서는 안된다.
당시의 유인물 -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정희 동지의 사인을 밝히지 않는 성모병원과 검찰을 규탄한다.
고정희 동지는 88년 3월3일 12·16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투서를 청와대는 물론 미, 영, 독 대사관 등에 보내다가 서초경찰서 대공과에 연행되어 수사 2시간만에 응암동 시립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은 3월4일 면회후 도저히 이런 곳에 자식을 둘 수 없어 경찰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항의 3월26일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긴 후 고정희 동지는 5월13일 병원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10층에서 9층으로 뛰어내려와 구름다리 위로 뛰어내린 뒤 숨졌다고 합니다.
가족은 고정희 동지의 그당시 상황을 보았을 때 자살을 할 만한 뚜렷한 동기나 근거가 전혀없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은 타당성없는 헛된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애국 시민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의 자식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했을 때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만사를 제치고 자식의 죽음해명을 위해 뛰어다닐 것입니다. 고정희 동지의 가족들은 이렇듯 자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병원과 경찰은 물론이며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병원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경찰에게 가라하고 경찰은 검찰로 가서 물어보라하고 검찰로 가면 병원에 가서 물어보라며 모두 책임을 떠 넘기려 했습니다.
우리의 아까운 동지를 죽여놓고도 저리 뻔뻔스럽게 나오는 병원과 검찰측은 고정희 동지를 또다시 죽이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재정권의 희생물로서 동지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애국 시민 여러분!
우리 유가족들은 가만히 앉아 그들의 죽음을 맞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고정희 동지는 그 어느 한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고정희 동지의 사인규명을 위해 끝까지 단결하여 밝혀냅시다.
-성모병원은 고정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규명하라.
-성모병원은 고정희 책임져라.
-책임을 회피하는 검찰은 사인을 밝혀라
병원측의 주장에 따르면 고씨는 사건당일 10층 정신병동 정문을 통해 나와 비상계단을 이용해 9층으로 내려간 뒤 공사중인 신축공사장 베니어판(구멍)을 뚫고 나가 투신, 2층 구름다리 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과 증언들에 의하면 병실안에서 인권위원회, 대사관 등에 탄원서를 쓰는 등 처참하게 몸부림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남긴 글
이 땅 안에서 멀쩡한 사람을 용공, 좌경으로 몰아치는 치사하고 한심한 작태는 있어서는 안된다.
당시의 유인물 -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정희 동지의 사인을 밝히지 않는 성모병원과 검찰을 규탄한다.
고정희 동지는 88년 3월3일 12·16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투서를 청와대는 물론 미, 영, 독 대사관 등에 보내다가 서초경찰서 대공과에 연행되어 수사 2시간만에 응암동 시립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은 3월4일 면회후 도저히 이런 곳에 자식을 둘 수 없어 경찰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항의 3월26일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긴 후 고정희 동지는 5월13일 병원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10층에서 9층으로 뛰어내려와 구름다리 위로 뛰어내린 뒤 숨졌다고 합니다.
가족은 고정희 동지의 그당시 상황을 보았을 때 자살을 할 만한 뚜렷한 동기나 근거가 전혀없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은 타당성없는 헛된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애국 시민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의 자식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했을 때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만사를 제치고 자식의 죽음해명을 위해 뛰어다닐 것입니다. 고정희 동지의 가족들은 이렇듯 자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병원과 경찰은 물론이며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병원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경찰에게 가라하고 경찰은 검찰로 가서 물어보라하고 검찰로 가면 병원에 가서 물어보라며 모두 책임을 떠 넘기려 했습니다.
우리의 아까운 동지를 죽여놓고도 저리 뻔뻔스럽게 나오는 병원과 검찰측은 고정희 동지를 또다시 죽이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독재정권의 희생물로서 동지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애국 시민 여러분!
우리 유가족들은 가만히 앉아 그들의 죽음을 맞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고정희 동지는 그 어느 한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고정희 동지의 사인규명을 위해 끝까지 단결하여 밝혀냅시다.
-성모병원은 고정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히 규명하라.
-성모병원은 고정희 책임져라.
-책임을 회피하는 검찰은 사인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