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 1967년 전남 완도군 출생
- 1985년 조선대 산업공학과 입학
- 1985년∼87년 민주화투쟁 참여 중 군입대
- 1988년 전역후 전국건축일용 노조건설을 위해 현장 활동
- 1989년 2학기 복학후 총학생회 예비역 협의회 활동
- 1990년 5월 과로로 입원
- 1990년 5월 18일 5.18 10주기 집회에서 과도한 최루탄흡입으로 쓰러져 입원
- 1990년 6월 6일 운명
- 제 33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 1985년 조선대 산업공학과 입학
- 1985년∼87년 민주화투쟁 참여 중 군입대
- 1988년 전역후 전국건축일용 노조건설을 위해 현장 활동
- 1989년 2학기 복학후 총학생회 예비역 협의회 활동
- 1990년 5월 과로로 입원
- 1990년 5월 18일 5.18 10주기 집회에서 과도한 최루탄흡입으로 쓰러져 입원
- 1990년 6월 6일 운명
- 제 33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85년 조선대학교 공업경영학과 입학,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대학교는 박철웅 전 총장의 독단적이고 파행적인 학교운영으로 총학생회의 치열한 학원민주화 투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국내 정치상황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살벌한 공안정국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싸움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동지는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 사회변혁운동, 5.18 광주학살자 처단과 책임자 처벌 등 반정부시위 및 총장 퇴진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각종시위를 주도하였다.
’86년 9월에 출범한 조선대 민주총학생회 건설준비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89년 9월 복학하여 예비역협의회 총무부장으로 활동을 하며 부당한 예비군훈련 개선을 위한 싸움과 민주화 시위에 적극 참여하다가 동지는 ’90년 5월 과로로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투병중에 참석한 5.18 10주기 기념식 시위에서 과도한 최류가스 흡입으로 쓰러졌다. 급격한 과로와 체력소모로 급성 간염으로 전이 되어 약 19일간의 입원치료 도중 합병증으로 ’90년 6월 6일 운명하였다.
당시 조선대학교는 박철웅 전 총장의 독단적이고 파행적인 학교운영으로 총학생회의 치열한 학원민주화 투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국내 정치상황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살벌한 공안정국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싸움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동지는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 사회변혁운동, 5.18 광주학살자 처단과 책임자 처벌 등 반정부시위 및 총장 퇴진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각종시위를 주도하였다.
’86년 9월에 출범한 조선대 민주총학생회 건설준비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89년 9월 복학하여 예비역협의회 총무부장으로 활동을 하며 부당한 예비군훈련 개선을 위한 싸움과 민주화 시위에 적극 참여하다가 동지는 ’90년 5월 과로로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투병중에 참석한 5.18 10주기 기념식 시위에서 과도한 최류가스 흡입으로 쓰러졌다. 급격한 과로와 체력소모로 급성 간염으로 전이 되어 약 19일간의 입원치료 도중 합병증으로 ’90년 6월 6일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