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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김하영

김하영

김하영

1975년 10월 4일 대구 출생
1994년 대구원화여고 졸업,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입학. 문화인류학과 학회지 [사람] 편집위원, 문화인류학과 학생회 기획부에서 활동
1995년 문화인류학과 학회지 [사람]편집장, 영남대 조국통일위원회 산하 한총련 출범식 새내기 문예단 생활주체, 영남대 오월투쟁본부 산하 오월학살자 처벌 투쟁 선봉대원
1996년 총학생회 정책 2부장, 조국통일 주체
1996년 8월 7차 범민족대회 참가도중 뇌사
1996년 9월 9일 운명
동지는 1975년 10월 4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 원화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민족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 문화인류학과 학회지 사람 편집위원, 문화인류학과 학생회 기획부에서 일하는 등 활발하고 열정적인 대학시절을 출발하였다. 다소 고집이 세고 악착스러워 가끔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충고를 받기도 했던 동지였지만 일에 대한 욕심과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했기에, 그 열정적인 품성으로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적부터 앓아온 기관지 천식으로 조금만 뛰거나 피곤해도 그날 저녁 꼭 병원으로 실려가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그런 몸도 동지의 통일에로의 의지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는 못했다. 95년에는 학회지 사람 편집장을 지냈으며 학생회 기획부장을 맡았습니다. 또한 민족영남대 오월 투쟁본부산하 오월학살자 처벌투쟁 선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투쟁의 신심을 다져갔다. 96년에는 민족영대 29대 힘찬 총학생회 정책2부장, 조국통일투쟁주체를 역임하였다. 96년 8월 13일 저녁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 선후배 50여명과 상경길에 올랐다. 서울로 올라가던 당일도 몸이 좋지 않아 총학생회 구석에서 누워있기도 했던 동지는 주위의 만류에도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무엇보다 서울로 올라가던 당일까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갈 것을 이야기하며 열정적으로, 동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만들어 갔던 대회였기에 몸이 불편한 것이 서울로 가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경한 동지와 대회 참가단은 대회장인 연세대가 원천봉쇄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국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참가단과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신문지를 덮고 하루 밤을 보낸 동지의 몸은 더욱 악화 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다음날 대회장 진입을 위해 모두 연세대로 떠났지만 동지는 시위도중 다친 몇몇 동지들과 동국대에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오후 5시경 약간의 간식을 먹는 도중에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심한 발작을 일으켰고 급히 구급차를 불러 근처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판정을 받고 그후 20여일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1996년 9월 9일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로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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