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동지는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한 후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시작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으로 이땅에서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동지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동료들과 함께 이땅의 민중들을 억압하는 제 모순들의 실체를 파헤치며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의 삶은 민중과 유리되어서는 존재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민중을 위한 활동을 하였으며, 4학년때는 자신이 속한 가톨릭 학생회와 고향 성남의 J.O.C와 YMCA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인 1982년 12월 1일 육군에 입대한 된 동지는 제5사단본부 부관 참모부에서 근무하다가 1983년 10월 14일 보름간의 1차 정기휴가를 받아 귀가하여 집안 일과 친구 만나는 일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던 중 외국어 대학교 시위주동자였던 학생 김무현군을 만났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주민등록증을 일제 갱신하던 때인지라 수배중인 운동권 학생들이 도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도와주기로 합의하여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친구 전봉일에게 신규 주민등록증을 발급해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자신이 쓰고, 김무현이 전달하기로 하고 헤어진 후, 귀대하였다. 김무현은 편지를 가지고 동사무소를 갔으나 전봉일을 만나지 못했고 재방문을 마음먹고 있던 중에 수사기관에 검거되었다. 그때 편지가 발각되어 동지는 동년 12월 6일 부대 근무중 보안사령부로 연행되었다.

동지는 이 사건으로 군부대 녹화사업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입대 전 학생시절의 민주화운동과 야학연합회 사건 관련 혐의로 전기고문을 당하면서 5일 동안 취조를 받고난 후 12월 10일에 석방되어 심신이 피곤한 상태로 부대에 복귀하였고 그 다음날인 12월 11일 새벽 4시 30분경 동지는 부대 내 문서 보관창구 앞 보초서는 자리에서 가슴에 3발의 총탄을 맞고 죽어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사망 통보를 받고 달려간 부친은 장교들에게 사망 경위 등를 설명받았는데 그들에 의하면 동지가 5사단 사령부 문서보관창고 앞에서 보초를 서던 중 자살하였다고 하면서 함께 보초섰던 사병이 발견했다는 유서를 건네주었다. 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작별인사와 민주화 촉구, 경제정의의 실현 촉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내용의 글이었고 죽음의 원인이 될만한 비관이나 고민 같은 것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친이 영안실로 가서 시체를 확인한 바, 가슴에 3발의 총탄자국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고, 손은 굵은 밧줄로 염을 해놓았는데 보기가 흉할 정도로 손등이 검은색을 띄고 있었고 약간 부어 있었다.

이후 서울의 각 대학생들의 주최로 열린 홍제동 성당에서의 “한희철 100일 추모제”때 배부된 “강제 징집 진상보고서”를 보고서야 동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를 잡게 된 부친은 보안사령부를 찾아가 동지가 보안대에서 5일동안 조사받은 사실과 기록을 확인하였으나 고문한 사실에 대해서는 끝내 부인하였다.

만일 자살이라 하더라도 죽음으로 몰고 갈만한 극한 상황을 만들게 한 보안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으며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한희철 동지가 사망 직전 동료에게 건네준 YMCA에 보내는 편지에 의하면 취조를 받을 때 고문당한 것은 물론 협박과 앞으로 전개될 일의 확대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될 것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로 몸과 정신이 견디어 낼 수 없어 조사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에 자결을 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사는 [한희철은 군부대 녹화사업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았으나 조사 종료 후 가정비관 (모친의 가출, 동생의 정신질환)으로 자살하였다] (국정감사 때 제출한 정부측 자료)고 하여 비관자살이라고 결말지었다.



동지가 남긴 글 - 서울대 가톨릭학생회 날적이 중에서


82년 5월 8일


‘理想’을 잘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이상’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식품처럼 ‘이상’을 간직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나는 ‘이상’을 ‘민중의 보편적 염원’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이상’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民族’을 잘 생각해보자. 분명 民族은 살아있는 실체이다.

노예가 되었을 때 쇠사슬을 부수며 해방되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실체였다.

그러나 이 한반도란 땅에는 이 民族에게 쇠사슬을 채우고 노예로 만드는 또다른 실체가 있었다.

분명 우리 民族은 분노할 줄 알았었다.

그래서 그들을 친일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우리 民族의 범주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은 실패로 돌아갔다.

民族의 역량이 친일민족반역자를 타도할 만큼 성숙되지 못한 탓이었지.

자!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은 분단 현실이다. 허리에 철책을, 쇳조각을 박아 피흐르는 현실이다. 아픔마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상처가 큰 현실이다.

우리 진정한 ‘민족’은 철책과 쇳조각을 뽑아내어 민족의 끊어진 몸뚱이를 붙이려고 갈망하는 자와 노력하는 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잘라진 몸뚱아리를 각성시키는 자도…

그러나 한반도에는 ‘민족’이 아닌 자들도 많다.

민족의 허리에 철책과 쇳조각을 유지시키는 모든 자들! 이데올로기들! ‘노력’을 탄압하는 자들!

잘린 민족의 현실적 아픔을 망각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자들!

분단으로 인한 모든 현실로 인해 편해진 자들!

- 통일을 향한 싸움이 전제되지 않고는 우리는 聖化될 수 없다. ‘소외’에서 해방될 수 없다. -

나는 울톨릭 회원들이 민족의 삶을 택하여, 함께 어깨걸고 걸어나가는 동지들이 되길 기다린다.

마석모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