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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최명아-당시 35세

최명아-당시 35세

최명아(당시 35세)

1963년 11월 10일 충북 음성 출생
1985년 2월 이화여대 행정학과 졸업
1985년 인천의 태성전자, 인우전기, 한미실업 등에 입사
1986년 인천그로리아 가구 입사
1989년 그로리아 가구 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으로 활동. 화재로 인한 인원감축 때 집단해고됨
1989년-1955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교육부장, 조직부장 등으로 활동
1995년 12월부터 민주노총 조직국 조직1부장으로 뜨거운 열정과 강한 책임감으로 활동해옴
1998년 2월 11일 진료차 서울대 병원에 갔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짐
1998년 2월 24일 오후 1시경, 운명
최명아 동지는 민주노총 조직부장으로서 남다른 책임감으로 헌신적인 활동을 해오며 항상 격무에 시달렸다. 특히 최근 IMF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이 재벌개혁과 고용안정을 위해 긴박한 활동을 전개하면서부터 부족한 인원으로 더욱 바쁘고 힘들게 활동해왔다. 각종 집회와 농성을 준비하고 참석하였으며, 지도부와 함께 산하 노조들을 현장 순회하고 방문하였으며, IMF 상황을 빌미로 각 사업장에서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자 이의 해결을 위한 활동에 동분서주해왔다. 2월 4일에는 부당노동행위 사업장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조대표들과 국민회의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 피로가 극심하게 누적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두통과 가벼운 얼굴마비, 그리고 시력장애가 나타났으나, 그 뒤에도 2월 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준비하고, 2월 10일, 11일에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점검하기 위해 쉴틈도 없이 근무해왔다. 그러다가 11월 오후에는 두통과 눈 증세가 악화되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되자 안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쓰러져 뇌출혈로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13여일간 뇌사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던 동지는 결국 2월 24일 오후 1시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작은 일은 시시해서 못하고, 큰 일은 너무 커서 못하고, 작은 일부터, 작은 일도 열심히,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지.” 우리 선배들의 목숨 건 투쟁.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가깝게 보면 7, 80년대 초보다 암흑기다. 자꾸만 잊고 살게 된다. 과거의 아픔과 고통, 피나는 역사를 잘 기억하고 살자. 과거의 아픔과 고통, 피나는 역사를 잘 기억하고 살자. 당장 현실의 모습이 현상적으로 편하다고 해서 잊어 버리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기억하고 본질을 직시하고 두 배 세 배 몇 배로 갚아주자.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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