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림(당시 42세)
1957년 12월 10일 경남 고성에서 출생
1975년 고성종합고등학교 졸업
1979년 군대 제대
1985년 1월 23일 대우조선입사
1998년 2월 13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중이던 배위에서 분신, 투신 운명.
1975년 고성종합고등학교 졸업
1979년 군대 제대
1985년 1월 23일 대우조선입사
1998년 2월 13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중이던 배위에서 분신, 투신 운명.
최대림 동지의 죽음은 경제위기속에서 끝없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1천만 노동자의 극단적인 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인과 재벌들의 잘못으로 초래된 IMF위기에서 자성의 목소리는커녕 또다시 과거와 같이 노동자들의 목자르기로 책임을 전가하는 폭거에 대한 저항이었다.
최대림 동지는 1998년 2월 1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입법화가 합의되어 국회통과를 앞두고 대우조선에서 건조 중이던 유조선 갑판위 25M위에서 분신후 투신하여 운명하였다. 당시 대우조선은 IMF 경제체제를 이용해 97년말 성과금과 상여금을 뒤늦게 지불하고, 연차수당 체불과 토요격주 휴무중단 등의 의도를 노골화하면서 조기작업과 한시간 일 더하기 등을 강요하고 현장 조합원들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동통제와 부당노동행위로 탄압해 왔다.
그리고 최대림 동지가 지게차 운전 도중 안전사고를 냈다하여 약 2개월 전에 보직을 박탈하였으며, 타 부서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해 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최대림 동지는 재벌자본과 정권의 음모에 맞서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을 저지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운명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탄압에 짓눌려 노동조합의 행동지침을 따르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최대림 동지는 1998년 2월 13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입법화가 합의되어 국회통과를 앞두고 대우조선에서 건조 중이던 유조선 갑판위 25M위에서 분신후 투신하여 운명하였다. 당시 대우조선은 IMF 경제체제를 이용해 97년말 성과금과 상여금을 뒤늦게 지불하고, 연차수당 체불과 토요격주 휴무중단 등의 의도를 노골화하면서 조기작업과 한시간 일 더하기 등을 강요하고 현장 조합원들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동통제와 부당노동행위로 탄압해 왔다.
그리고 최대림 동지가 지게차 운전 도중 안전사고를 냈다하여 약 2개월 전에 보직을 박탈하였으며, 타 부서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해 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최대림 동지는 재벌자본과 정권의 음모에 맞서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을 저지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운명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탄압에 짓눌려 노동조합의 행동지침을 따르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각성을 촉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