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순
- 1923년 12월 26일 출생
- 1935년 함경북도 회령군 벽성면 벽성초등학교 졸업
- 1937년~1945년 회령 유선탄광, 아오지 유암탄광에서 뚝탄분쇄노동자
- 1946년~1950년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조국강령 20개 해설원으로 활동
- 1951년~1958년 세계통신사 기자, 조국통일운동에 활동하다 구속, 3년 6개월 선고받음
- 1959년~1961년 최백근(사회당 조직위원회 조직부장) 선생과 함께 민족해방, 조국통일운동에 참여
- 1961년~1990년 평생 동지였던 고 박남업 선생과 결혼, ‘오작교’ 사건으로 부군과 함께 구속(국가보안법), 각각 5년과 3년 6개월 옥고
- 1990년~1998년 양심수 석방과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
- 1996년~1997년 북녘큰물피해돕기 운동에 헌신
- 1998년 6월 13일 오전 8시 30분 수차례의 옥고로 인하여 운명
- 1935년 함경북도 회령군 벽성면 벽성초등학교 졸업
- 1937년~1945년 회령 유선탄광, 아오지 유암탄광에서 뚝탄분쇄노동자
- 1946년~1950년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조국강령 20개 해설원으로 활동
- 1951년~1958년 세계통신사 기자, 조국통일운동에 활동하다 구속, 3년 6개월 선고받음
- 1959년~1961년 최백근(사회당 조직위원회 조직부장) 선생과 함께 민족해방, 조국통일운동에 참여
- 1961년~1990년 평생 동지였던 고 박남업 선생과 결혼, ‘오작교’ 사건으로 부군과 함께 구속(국가보안법), 각각 5년과 3년 6개월 옥고
- 1990년~1998년 양심수 석방과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
- 1996년~1997년 북녘큰물피해돕기 운동에 헌신
- 1998년 6월 13일 오전 8시 30분 수차례의 옥고로 인하여 운명
- 1923년 12월 26일 출생
- 1935년 함경북도 회령군 벽성면 벽성초등학교 졸업
- 1937년~1945년 회령 유선탄광, 아오지 유암탄광에서 뚝탄분쇄노동자
- 1946년~1950년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조국강령 20개 해설원으로 활동
- 1951년~1958년 세계통신사 기자, 조국통일운동에 활동하다 구속, 3년 6개월 선고받음
- 1959년~1961년 최백근(사회당 조직위원회 조직부장) 선생과 함께 민족해방, 조국통일운동에 참여
- 1961년~1990년 평생 동지였던 고 박남업 선생과 결혼, ‘오작교’ 사건으로 부군과 함께 구속(국가보안법), 각각 5년과 3년 6개월 옥고
- 1990년~1998년 양심수 석방과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으로 활동하다 구속
- 1996년~1997년 북녘큰물피해돕기 운동에 헌신
- 1998년 6월 13일 오전 8시 30분 수차례의 옥고로 인하여 운명
23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한 동지는 해방 이전까지 회령 유성탄광, 아오지 유암탄광 등지에서 뚝탄분쇄노동자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민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조국강령 20개 해설원으로 활동하였고, 세계통신사 기자로 근무하여 조국통일운동에 전념하다 구속되어 3년 6개월의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출소 이후 최백근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오작교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두 번째 옥고를 치렀다. 계속하여 양심수 석방과 범민련 부의장으로 활동하다 세 번째 구속을 당한 후 ’98년 옥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