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일(당시 23세)
1982년 2월 동래고등학교 졸업.
1982년 3월 경성대학교(구 부산산업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입학.
1986년 행정학과 복학.
11월 5일 ‘건국대학교 농성사건 해명, 군부독재타도, 미제국주의 축출’의 유서를 뿌리고 시청각관 5층
에서 분신, 투신.
제 10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진성일 동지는 중산계층의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한 장남으로 자랐고, 군입대를 계기로 사회적 인식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2. 12 총선에서 특정인과 특정정당에 대한 편파적 흑색선전과 민정당 지지를 강요하자 군에서의 교육에 거부감을 품게 된다. 이를 계기로 5공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대해 심한 반감을 품고 복학한다. 애학투의 건대 농성투쟁에서 ‘황소진압작전’이라는 살인적 테러로 진압하고 관제언론에서는 공산혁명분자의 난동이라고 왜곡보다하는 속에서도 침묵뿐인 산업대 학우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86년 11월5일 “건국대 농성사건 즈음하여”와 “산대 학우에게”라는 유서를 뿌리고 이 시대의 침묵과 어둠을 사르려 분신, 투신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산대 학우에게 - 86.11.5 뿌려진 유서>
10月29日 서울에는 대학가 특히 건국대와 부산의 부산대, 동아대 모두 민주를 위해, 민중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산대는 대동제니 하면서 희열에 빠져 있었다. 산대인이여 우린 똑같 대한민국 대학생으로서 진실을 보고 외면 하여서는 안된다. 똑같이 눈을 뜨고 진리를 위해 우리 싸우자 어떤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 땅에 암흑을 모조리 몰아내자 그리고, 어용 총단을 물러가게 하자 진정 학원의 민주화가 무엇인가 짐승은 행동을 학생들에게 행해도 그냥 묵과할 수 있겠는가 요번 기회에 어용총단을 뿌리 뽑아 민주 대열에 앞장설 수 있는 우리의 친구를 선출해 내자. 산대인이여!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가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왜, 무엇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가 여러분 우리모두 앞장서서 나갑시다. “민족분단 영구화하는 군부독재 물러가라” “민족의 피 빨아 먹는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
“건국대 농성사건에 즈음하여”
우리 학우들이 용공이니 공산혁명분자로 몰리고 있다.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손가락 하나 다치면 팔전체를 잘라내는 그런 식이 되고 있다. 「건국대 농성사건의 1천 2백 87명 우리학우 여러분 새날이 올때까지 우리 흔들리지 맙시다. 여러분 주위에는 진정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용기와 힘을 잃지 마십시오」 저 비록 미약한 존재지만 격분을 참을 길 없어 여러 친구들 보다 먼저 갑니다. 부디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싸우십시오 승리할 그날까지.... “건국대 농성사건 진상보고하라” “군부독재 물러가라” “파쇼타도”
추모시
새로운 사회를 쟁취할 때까지, 해방의 그날까지! 진성진 동지!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그대 가족을 남달리 사랑했던 그대 이땅의 억압받는 민중의 고통을 가슴아파했던. 저의와 진리를 따려 했던 그대, 이제, 미제의 대리정권 군사파쇼의 살인적 폭압에 맞서 이 시대의 침묵과 어둠을 사르려 그대 육신에 불을 붙였다 사천만의 불길로 타올라라! 그대 그렇게 원하던 새로운 사회를 쟁취할 때까지, 해방의 그날까지 끝까지, 끝까지 싸워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