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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식-당시 29세

정경식-당시 29세

정경식(당시 29세)

1959년 12월 15일 경남 의창군 진동에서 출생.
삼진중 졸업. 한독직업훈련원(현재 부산기공)에 다니다 1년만에 가정사정으로 중퇴.
19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
1987년 5월 26일 노조지부장 선거운동에 참여.
1987년 6월 8일 실종.
1988년 3월 2일 창원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됨.
정경식 동지는 3년동안의 월급으로 800만원이나 되는 돈을 저축할 정도로 검소하고 생활력이 강했으며 동료 노동자들과의 관계도 대단히 원만하였다고 한다. 기숙사 생활 중에도 놀러갈 때는 빠짐없이 집으로 연락했으며 월급을 타면 집에 꼬박꼬박 맡기고 용돈을 타 쓸 정도로 성실했다. 정씨는 노동자로서의 의식도 투철했는데 86년 5월에 공장에서 일을 하다 팔을 다쳐 4개월 정도 입원해 있었을 때, 문병 온 동료들에게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특히 젊은 층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퇴원한 이후부터는 노조를 민주화 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정경식 씨 실종사망사건의 진상>

-노동자의 죽음이 기업과 권력에 의해 은폐·조작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난 87년 6월 8일 오전 9시경 경상남도 창원시 대우중공업 창원 제2공장에서 실종된 정경식 씨(당시 28세)의 변사체 사건에 대해 가족들이 추적·조사 내용을 검토한 결과, 정씨의 실종 원인, 사체 발견 과정, 사인 등에 대한 회사와 경찰 측의 발표가 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1. 사건의 발단 실종

87년 5월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때 회사측은 서석교(수년전에 노조지부장을 지낸 사람으로 미국에 파견 근무하던 중 지부장 선거전에 귀국했다고 함)를 지원했으며 정경식 씨등은 젊은 층을 대표하는 후보를 도왔다고 한다. 정씨와 기숙사의 같은 방에 있던 홍근식 씨가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의원에 선출됐으나 이동석 씨(36~7세 가량 생산괸리부 생산과 1공장 창고근무)가 수차례 홍씨를 매수했다. 그 결과 선거에서 서석교 씨가 당선 됐다. (개표결과 7대6) 그후 홍근식 씨는 기숙시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동석 씨의 집에서 자주 지냈다고 한다.

5월 28일 예비군 훈련 후 정경식 씨와 젊은 동료들이 홍근식 씨와 이야기 하려 할 때 이동석
씨가 “자신과 선약이 있는데 왜 데러가느냐”고 해서 가벼운 충돌이 발생했다. 정경식 씨가 이동석 씨에게 “ 얼마나 돈을 먹고 회사 편만 드느냐? 너는 근로자가 아니냐?”고 따지자 시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씨가 코피를 흘리는 가벼운 사고가 일어났다.(정씨의 동료이며 어용노조에 반대했던 이춘일 씨의 증언)

사고 후 이동석 씨는 3주 진단으로 고소를 하고 1백5십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

6월 8일 오전 9시쯤 정경식 씨는 근무하던 제2공장에서 동료 이춘일 씨에게 “이동석과 홍근식이 합의하려 오라고 해서 외출증을 끊어 기숙사에 간다”며 작업복을 입 은채 기숙사로 간 뒤 행방불명 됐다. (정씨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을 기숙사 수위가 목격 했으며, 이동석 씨도 기숙사 106호 실에서 정씨를 만났다고 시인했다.)

정경식 씨가 실종된 뒤 가족들은 경남도경에 실종신고를 내고 (6월 20일) 신문광고 등을 통해 6월 23일 경남일보 광고)행방을 찾아 나섰다.

2. 사체 발견

(정경식 씨의 사체가 확실하고 타살이라는 근거)

정씨의 행방을 찾던 가족들은 12월 12일 창원시 동정동 천주산 관음사 뒷편에서 산원불명이 사체가 발견되어 창원파출소에 신고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2월 17일 가족들이 동정동 사무소와 창원 파출소에서 확인한 결과 보관 중인 사체의 유류품 중 구두가 정경식 씨의 것임을 확인했다.(6월 8일 전에 신고다닌 것임)

사체에 대해 가족들이 확인을 요청하자 경찰 측은 “55세 가량의 사람이 농약으르 먹고 자살한 것” 이라고 발표했다. 당국은 이같은 발표와 근거로

첫째, 배의과 의원의 검시결과 55세 정도의 사람으로 추정되며(이유는 머리카락이 반백색이라는 것)

둘째, 사체 발견 장소 주위에서 빈 농약병이 발견돼 자살의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12월 17일부터 26일까지의 증거 및 사체조사 결과“55세 가량의 사람”이며 “자살”이라고 하는 경찰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55세 가량의 사람”이라고 하는 발표가 잘못된 것이며 정경식 씨의 사체가 분명하다고 입증할 만한 근거

1) 유류품 중 신발, 상의 메리야스, 바지, 양말, 등이 정경식 씨가 실종 당시 입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2) 12월 18일 최초의 사체 발견자 이순우 씨(25세 가량 수목전지사)는“사체발견 당시 사체의 머리카락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모두 검은색이었다고”라고 말해 젊은 사람의 사체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12월 28일 가매장 현장의 사체 확인결과 두개골의 반백색의 머리는 가위로 잘라 본드로 붙인 것임이 드러났다. 따라서 두개골의 반백색의머리카락은 사체의 연령을 위장하기 위해 붙였던 것이며“55세 가량의 사람”이라고 하는 경찰의 발표는 조작된 것임이 분명하다.

3) 12월 28일 사체 확인 결과 정경식 씨가 1986년 5월쯤 대우중공업공장에서 다친 오른팔 뼈 두개 등 골절되어 치유된 흔적이 있는 팔뼈가 발견 되었다.(다쳤을 당시 X선 촬영 사진과 동일함)

둘째,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하는 근거

1) 사체 발견 당시 구두가 신겨진 상태가 아니고 사체 옆에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살의 경우 신발을 신고 있었을 듯함)또한 점퍼와 흰 옷은 주위 약 2-3미터 근방에 널려져 있어 옷가지 등을 일부러 주위에 펼쳐 놓은 흔적이 보였다.

2) 자살을 했다면 정경식 씨가 실종되었을 때(86년 6월 8일) 비가 많이 왔는데 (6월 8일 비온 것은 마산 측우기상소가 증명) 비를 맞으며 산으로 올라갔을 경우 구두에 많은 흙이 묻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 구두 밑창은 깨끗하고 흙이 묻어있지 않았다. 이는 사전에 살해된 뒤 옮겨 놓았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타살을 입증 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3) 사체 발견 현장 5미터 가량 아래쪽에 풀과 나무를 베어서 10미터 가량 길이로 담을 쌓은 것이 발견 됐다. 이 담 때문에 사체를 아래쪽에서 발견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며 이는 타살을 장기적으로 사체를 유기하고자 한 흔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3. 사건 은폐·조작의흔적

정경식 씨 사건은 회사와 경찰에 의해 은폐 조작 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1) 정경식 씨가 실종된 뒤 가족들은 싸운 당사자인 이동석 씨로부터 노조 문제로 인해 싸움이 벌어졌다고 확인했으나 회사 측은 개인간의 충돌이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과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7월 11일)회사 측은 노조 문제로 인한 사건임을 인정했다.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 측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려고 했다.

2) 사체 발견 뒤 경찰은 이 사체가 정씨가 아니며 자살체라고 주장 했다. 그러나 위에서 본바와 같이 사체의 두개골에는 반백색이 머리를 본드로 붙인 흔적이 있었고 사체 주위에서는 자살로 위장하고자 여러 가지 증거가 발견되었다. (위 정경식 씨의 사체이며 타살이라고 하는 증거 참조)

3) 사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 두개골에 치아가 붙어있었으나(목격 이순우 씨의 증언)12월 28일 가매장 된 유골을 확인했을 때는 모두가 뽑혀 있었다.(정씨는 평소“드라큐라”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윗니가 뾰족해서 이를 보면 정씨라고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는데 빼버린 후에는 이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4) 정씨의 실종·사망사건과 관련 가족측이 계속 진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실종과 관련된 이동석 씨와 홍근식 씨에 대한 수사를 일체 하지 않고 있다. 이동석 씨는 지난해 9월초 정씨를 찾으려 하는 가족들에게 “당신들이 까불어도 회사에서 알려 5백만원만 들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이 사건관 관련해 많은 의혹을 보이고 있으나 이들에 대해 수사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5) 올해 1월 28일 사체 검시를 위해 지난해 12월에 가매장한 묘를 확인한 결과 파헤친 흔적이 드러났다. 봉분의 높이가 훨씬 높아져 있었으며 관을 묶었던 끈이 다시 묶어져 있었다.

또한 관 안의 옷가지 유골 등이 원래 상태와 달리 흩어져 있었고 정씨라고 확인할 수 있는 팔뼈가 없어진 것이 발견됐다.

4. 결론

이상의 조사 결과 우리는 정경식 씨 실종·사망 건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얻었다.

1. 정경식 씨는 대우중공업 노조지부장 선거와 관련·실종됐었으며 타실된 것이 분명하다.

2. 12월 12일 발견된 사체는 정경식 씨가 분명하며 사체는 자사로 위장된 채 유기된 것이 분명하다.

3. 정경식 씨 실종·사망사건은 회사 내에서 발생한 것이며 회사와 경찰이 이 사건을 은폐하기위해 진상을 조작해 왔으며 지금도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각적인 음모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경식 씨의 실종·사망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1. 이사건을 처음부터 완전히 재조사하고

2. 정씨의 실종 사망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동석 씨와 홍근식 씨에 대한 수사를 아울러 하고

3. 회사 및 경찰의 관련 여부,은폐·조작의 전모도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민주 통일 민중운동연합과 정경식의 가족은 이 사건의 본질이 정경식 씨에 대한 살해 및 은폐조작이라고 규정하며 종교계(개신교, 카톨릭,불교)민중,민주운동단체 및 민주정당들과 함께 공동진상 조사위원회를 구성,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거듭 밝힌다.

1988. 2. 5.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경식 씨의 가족 (김을선 정경호)

솥발산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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