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당시 58세)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 출생, 평양 숭실학교 입학
1941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 입학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 7월 일본군에서 탈출, 중국군에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에서 광복군에 편입,『등불』, 『재단』지를 간행
1945년 11월 김구 주석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의원 비서 역임
1947년 12월 조선 민족청년단에 참가, 중앙훈련소 교무처장을 역임
1949년 1월 도서출판'한길사'를 설립
1952년 3월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에 임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 서무과장, 사무국장 역임
1952년 9월 월간 『사상』을 창간
1953년 4월 『사상계』창간
1962년 8월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부문상을 수상
1966년 9월 한비 밀수규탄 연설 중 이른바'밀수왕초'사건으로 1개월간 투옥
1967년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사상계」폐간.
1967년 3월 4자회담을 주선, 야당 통합을 추진하여 신민당에 입당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운동 중 국가원수 모독죄로 3 개월간 투옥
1967년 6월 옥중 출마로 서울 동대문 을구 국회의원에 당선
1971년 출판사 '사상사'를 설립, 저서《돌베개》를 출판
1973년 2월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 최고위원에 피임됨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 제 1 호 위반으로 구속
1974년 4월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형집행정지로 석방
1975년 3월 개헌 민주운동 노선의 단일화 촉구를 위하여 같은 해 4월 민주통일당 탈당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발표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사
1941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 입학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 7월 일본군에서 탈출, 중국군에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에서 광복군에 편입,『등불』, 『재단』지를 간행
1945년 11월 김구 주석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의원 비서 역임
1947년 12월 조선 민족청년단에 참가, 중앙훈련소 교무처장을 역임
1949년 1월 도서출판'한길사'를 설립
1952년 3월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에 임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 서무과장, 사무국장 역임
1952년 9월 월간 『사상』을 창간
1953년 4월 『사상계』창간
1962년 8월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부문상을 수상
1966년 9월 한비 밀수규탄 연설 중 이른바'밀수왕초'사건으로 1개월간 투옥
1967년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사상계」폐간.
1967년 3월 4자회담을 주선, 야당 통합을 추진하여 신민당에 입당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운동 중 국가원수 모독죄로 3 개월간 투옥
1967년 6월 옥중 출마로 서울 동대문 을구 국회의원에 당선
1971년 출판사 '사상사'를 설립, 저서《돌베개》를 출판
1973년 2월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 최고위원에 피임됨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 제 1 호 위반으로 구속
1974년 4월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같은 해 12월에 형집행정지로 석방
1975년 3월 개헌 민주운동 노선의 단일화 촉구를 위하여 같은 해 4월 민주통일당 탈당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발표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