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순(당시 68세)
1926년 전남 광주 출생
1985년 막내 아들 송광영 동지 분신으로 운명
1989년 유가협 회원으로 활동
1991년 전국민주화 유가족 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회장 역임
강경대 동지 치사경관 공판 도중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다가 1년6개월 수배생활
1993년 송광영 동지 묘역을 마석모란공원으로 이장함
1994년 1월 2일 문익환목사 장례식에 참여하고 충격받음
1994년 1월 26일 운명
1985년 막내 아들 송광영 동지 분신으로 운명
1989년 유가협 회원으로 활동
1991년 전국민주화 유가족 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회장 역임
강경대 동지 치사경관 공판 도중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다가 1년6개월 수배생활
1993년 송광영 동지 묘역을 마석모란공원으로 이장함
1994년 1월 2일 문익환목사 장례식에 참여하고 충격받음
1994년 1월 26일 운명
1985년 경원대에 다니던 막내아들 송광영 동지가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학원안정법 철폐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하여 운명한 뒤 경원대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난 민주도 모른다요, 동지가 다 뭐다요, 우리 광영이가 죽으면 무슨 소용 있다요.”라고 말씀해 만인의 가슴을 울린 이오순 동지는 서울 기독교병원에서 화마와 싸우면서도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 통일을 부르짖는 아들 광영과 조국의 어머니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민주화를 위한 여러 투쟁에서 이오순 동지는 ‘감동의 황색 가죽가방’으로 불리우며 백골단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1991년에는 유가협 부회장직을 수행하며 회원 조직화에 앞장서다 강경대 동지 치사 경관 공판 도중 부당한 공판에 항의하다 법정소란 혐의로 1심에서 1년 6월동안 수배생활을 하였다. 94년 문익환 목사님의 서거로 충격을 받고 “나 죽으면 광영이랑 문목사님 묻혀 계신 마석모란공원에 묻어주고, 꽃일랑 차라리 종이 꽃으로 해줘. 문목사님처럼 많은 통일의 씨앗을 뿌리고 죽어야 하는데, 95년까지만 사셨어도 이렇게 슬퍼하지 않았을텐데.”라고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다 결국 심장병으로 운명하여 마석모란공원 목사님과 함께 묻혔다. 동지를 생각하며 전국민주주의민족통일유가족협의회회장 강 민 조 故 이오순 어머니. 우리 유가족들은 이오순 어머니를 ‘광영어머니’라 불러왔습니다. 9년전 막내아들 송광영 동지가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 운명한 후 광영어머니의 운명은 바뀌었습니다. 그저 겸손하고 꼿꼿한 성품을 가진 포근하게 다가오는 우리곁에 항상 있는 평범한 어머니에서 동지의 어머니로 바뀌어야 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되어 찢어진 가슴 부둥켜 안고 죽어간 자식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식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 오셨습니다. 광영어머니! 자식의 한을 다 풀지 못했는데 어떻게 먼저 가신단 말입니까 광영어머니!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저마다 가슴속에 자식들의 무덤을 만들어두고 그 쓰린 가슴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어 서로의 찢긴 상처를 핥아 주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해 왔습니다. 억울하게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의 죽음으로 살해당한 자식들의 한을 풀기위해 136일동안이나 농성을 했을때도 광영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모범이셨습니다. 차가운 겨울의 거리거리에서 양심수 석방을 외칠때에도, 오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자식들이 계속 죽어갔을 때 어느 집회에서나 어느 투쟁에서나 우리는 항상 동지였습니다. 이제 광영이와 함께 잠들 수 있겠군요. 광영이가 잠결에 이불 걷어차면 덮어주시고 다른 아들, 딸들도 돌보아 주세요. 1994. 1. 28. 동지가 남긴 글 우리집 화단의 다알리아 꽃 광영아! 보고 싶은 내 아들아! 우리집 다알리아 꽃은 겨울이 되면 죽었다가 봄이 되면 잎이 자라서 초 가을부터 다시 꽃이 피어 큰송이, 작은 송이, 산들산들 가을바람 타고 싱글벙글 엄마를 쳐다보며 반기고 있는데 우리 막둥이는 길 떠난지 8년이 되도록 못 오는가... 길이 멀어 못 오느냐? 일이 바빠서 못 오느냐? 엽서에 적어서 안부도 못 하느냐? 무심하고 야속한 막둥이가 보구싶어서 불쑥불쑥 모란공원 무덤엘 찾아가면 오는지 가는지 불러도 대답없고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는 어머니 심정 알 것도 같은데... 다알리아 꽃만큼도 몰라주는구나... 어느 해 옆방 아이가 다알리아 꽃을 꺾어서 야단을 치니까 우리 막둥이는 아이가 꺽는데 야단치면 되느냐고 말 했었지. 그때처럼 다알리아 꽃은 한창 피었단다. 아직 피지 못한 망우리는 된서리 맞아서 제구실 못 할까 엄마는 쳐다보면 걱정이란다. 추석 다음 날, 큰형수와 너를 찾아 왔을 때에도 너는 아무 말 없고, 네 후배들이 와서 너를 대신해서 반겨주었고 3일날 학교 후배들이 너한테 갔다가 선물을 사들고 집에까지 와서 엄마를 위로해 주고 갔단다. 광영아! 너도 이제는 우리 집에 해마다 탐스럽게 피는 다알리아 꽃을 닮아주어라. 그리고 이제는, 어미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거라 너를 사랑하는 후배들이 언제나, 항상 잊지 않고 어미를 챙겨주고 있으니... 너는, 민주세상, 통일세상이나 하루 빨리 오라고 빌어다오 막둥아! 사랑하는 막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