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관(당시 27세)
1972년 경남 사천 출생
1994년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 입사
1999년 2월 20일 산재 당함
1999년 6월 22일 자결
1994년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 입사
1999년 2월 20일 산재 당함
1999년 6월 22일 자결
1972년 경남 사천에서 이석수님의 3남 1녀 중 태어난 이상관 동지는 1994년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 입사하여 일을 하던중 1999년 2월 20일 산재 사고를 당하여 치료를 받게 된다. 제대로 몸 조차 가누지 못하는 동지를 근로복지 공단은 통원조치 시키는가 하면 강제 퇴원 조치를 한다. 힘겹게 통원 치료를 받던 중 1999년 6월 22일 육체적 고통과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유서로 전하며 동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9년 7월 7일 산재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사수를 위한 마창지역 공대위 공단창원지사 항의집회를 시작으로 사건이 알려지고 7월 29일 유족과 공동대책위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두 번의 농성장 침탈과 탄압속에서 산재노동자 이상관 자살 책임자처벌과 근로복지공단개혁을 위한 전국순회투쟁 등이 지속되었고 155일간 투쟁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산재노동자 이상관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보도자료 >
"근거없는 거짓을 유포하여 산재노동자 이상관 유족을 두 번 울리는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한다!"
○ 근로복지공단의 관료주의적 업무처리와 형식적인 자문의 제도의 운영에 희생되어, 지난 6월 22일 자살한 산재노동자 이상관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의 허위사실 유포로 다시 한번 고통받고 있다.
○ 공단은 7월 15일 배포한 「해명서」에서 이상관이 남긴 유서가 `유서의 일부분으로 생각된다. 그 전체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겠으나`라며, 마치 이상관의 유족이 유서의 다른 내용을 숨기고 있거나 조작한 것처럼 쓰고 있으며, 일부 언론사 기자에게도 `유서가 원래는 3장이었다`고 말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 유서를 처음 발견한 이는 이상관의 이웃주민인 김청자(60세, 경남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씨이며, 그는 음독한 이상관과 가족을 싣고 나가는 앰브런스 소리를 듣고, 이상관의 집으로 뛰어가 이상관의 친척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찾다가 편지봉투를 발견하였다. 그는 "봉투를 열어보니 1장의 유서가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유서를 가족이 볼 수 있도록 TV위에 올려놓고, 가족이 돌아온 후 이야기 하였다.
○ 이상관의 유서는 이미 공개된 대로 1장임이 명확하며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몸이 아프다는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이상관이 자살한 책임은 공단에 있음이 명백한데,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는 행위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라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유족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고, 공단 스스로 불신을 가중시키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 공단은 지금이라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유족에게 사과하고, 이상관 자살의 책임이 공단에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이상관의 유족과 공대위는 현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이상관 자살의 진실을 밝히고, 공단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6일째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1999. 8. 2
산재노동자 이상관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1999년 7월 7일 산재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사수를 위한 마창지역 공대위 공단창원지사 항의집회를 시작으로 사건이 알려지고 7월 29일 유족과 공동대책위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두 번의 농성장 침탈과 탄압속에서 산재노동자 이상관 자살 책임자처벌과 근로복지공단개혁을 위한 전국순회투쟁 등이 지속되었고 155일간 투쟁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산재노동자 이상관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보도자료 >
"근거없는 거짓을 유포하여 산재노동자 이상관 유족을 두 번 울리는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한다!"
○ 근로복지공단의 관료주의적 업무처리와 형식적인 자문의 제도의 운영에 희생되어, 지난 6월 22일 자살한 산재노동자 이상관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의 허위사실 유포로 다시 한번 고통받고 있다.
○ 공단은 7월 15일 배포한 「해명서」에서 이상관이 남긴 유서가 `유서의 일부분으로 생각된다. 그 전체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겠으나`라며, 마치 이상관의 유족이 유서의 다른 내용을 숨기고 있거나 조작한 것처럼 쓰고 있으며, 일부 언론사 기자에게도 `유서가 원래는 3장이었다`고 말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 유서를 처음 발견한 이는 이상관의 이웃주민인 김청자(60세, 경남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씨이며, 그는 음독한 이상관과 가족을 싣고 나가는 앰브런스 소리를 듣고, 이상관의 집으로 뛰어가 이상관의 친척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찾다가 편지봉투를 발견하였다. 그는 "봉투를 열어보니 1장의 유서가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유서를 가족이 볼 수 있도록 TV위에 올려놓고, 가족이 돌아온 후 이야기 하였다.
○ 이상관의 유서는 이미 공개된 대로 1장임이 명확하며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몸이 아프다는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이상관이 자살한 책임은 공단에 있음이 명백한데,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는 행위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라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는 유족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고, 공단 스스로 불신을 가중시키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 공단은 지금이라도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유족에게 사과하고, 이상관 자살의 책임이 공단에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이상관의 유족과 공대위는 현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이상관 자살의 진실을 밝히고, 공단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6일째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1999. 8. 2
산재노동자 이상관자살 책임자 처벌과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