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진(당시 32세)
1960년 서울 출생
1980년 세종대 국문과 입학
1985년 광진중학교에 부임
1989년 신암중 부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 해임
1990년 강남강동 지회 교육선전부 활동
1992년 11월 4일 해직 3년만에 암으로 운명.
1980년 세종대 국문과 입학
1985년 광진중학교에 부임
1989년 신암중 부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 해임
1990년 강남강동 지회 교육선전부 활동
1992년 11월 4일 해직 3년만에 암으로 운명.
임희진 동지는 89년 서울 신암 중학교에서 전교조 신암중학교 분회결성으로 해직되었다. 동지의 부모에게까지 압력을 가하며 전교조 탄압을 하는 비열한 정권에 맞서 해직 후 교육선전부 활동을 했다. 91년에 동지는 암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동지들과 조직을 걱정해 발병 사실을 숨기며 참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임희진 동지는 무서운 병마와 끝내 혼자 싸우다가 92년 “전교조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른 두 해의 생을 마감했다.
동지를 생각하며
우리 앞에 살아날 故 임희진 동지여!
동지와 우리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참교육을 위해 지금도 우리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아십니까. 1만명의 현직교사들이 공개선언으로 교육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참교육의 토대인 전교조 합법화와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힘찬 전국교사대회와 노동자대회로 참교육을 위한,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의 의지들이 굳건히 다져지고 있습니다. 정말 평범하고 말없이 살다간 그대 뒤를 따라 굳은 의지와 흔들림없는 실천으로 남은 저희들은 살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동지와 더불어 이름없이 살아가는 모든 노동 형제들이 자유와 평등이 새세상에서 함께 하리라는 신념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고개숙여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추모의 글
선생님. 우리 마음속에 늘 살아 주십시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선생님이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모처럼 찾아간 지구모임에서 뜻밖에 그런 기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어이없어 황급히 지구 선생님들과 대학병원 영안실을 달려 갔습니다.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서도 선생님이 딴 세상 사람이라는 것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어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곤 부모님밖에 안계신다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듣고서야 선생님이 얼마나 외롭게 병마와 싸우다 가셨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내 혼자서 버티시다 운명직전에야 “전교조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광진중학교에서 2년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도 선생님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군요. 선생님의 인상은 언제나 말없이 조용한 모습으로만 떠오릅니다. 88년에 평교사회가, 그리고 동북부교사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교육민주화 바람이 불고 서명운동과 깃달기 등을 할 때에도 선생님은 언제나 말없이 조용히 따르셨지요. 그런 선생님에 대해서 우리는 조용한 동조자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방학 직후에 선생님께서도 해직을 당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직까지 각오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지요. 설치기 좋아하는 저도 해직생활이 너무도 힘들고 괴로워 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조용하신 선생님의 3년 세월이 얼마나 큰 괴로움과 절망이었을까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황량한 그 세월을 안고 선생님은 목숨을 노리는 또 하나의 무서운 적과 싸움을 해야만 했군요. 동료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지않으려고 선생님은 그 처절한 싸움을 혼자 감당하셨군요, 임종에 이르러서야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신 선생님...
작년에는 동생도 잃어 이제 부모님 두 분만 남으셨다는 소식. 그래서 무덤조차 없이 저 세상으로 가신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입니다. 엊저녁 선생님이 누워계신 영안실을 나온 뒤에 함께 온 선생님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실 때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는데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서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해직을 당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텐데...
편안히 잠들 무덤조차 없을 임희진 선생님.
부디 구천을 이리저리 떠돌지 마시고 살아서 실현하시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신 그 뜻과 마음을 우리 마음에 전해주시고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 마음속에 늘 살아주십시오.
김희선 선생님 (전 광진 중학교)
임희진 동지는 무서운 병마와 끝내 혼자 싸우다가 92년 “전교조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른 두 해의 생을 마감했다.
동지를 생각하며
우리 앞에 살아날 故 임희진 동지여!
동지와 우리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참교육을 위해 지금도 우리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아십니까. 1만명의 현직교사들이 공개선언으로 교육개혁을 외치고 있습니다. 참교육의 토대인 전교조 합법화와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힘찬 전국교사대회와 노동자대회로 참교육을 위한,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의 의지들이 굳건히 다져지고 있습니다. 정말 평범하고 말없이 살다간 그대 뒤를 따라 굳은 의지와 흔들림없는 실천으로 남은 저희들은 살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동지와 더불어 이름없이 살아가는 모든 노동 형제들이 자유와 평등이 새세상에서 함께 하리라는 신념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고개숙여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추모의 글
선생님. 우리 마음속에 늘 살아 주십시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선생님이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모처럼 찾아간 지구모임에서 뜻밖에 그런 기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어이없어 황급히 지구 선생님들과 대학병원 영안실을 달려 갔습니다.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서도 선생님이 딴 세상 사람이라는 것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어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곤 부모님밖에 안계신다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듣고서야 선생님이 얼마나 외롭게 병마와 싸우다 가셨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내 혼자서 버티시다 운명직전에야 “전교조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광진중학교에서 2년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도 선생님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군요. 선생님의 인상은 언제나 말없이 조용한 모습으로만 떠오릅니다. 88년에 평교사회가, 그리고 동북부교사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교육민주화 바람이 불고 서명운동과 깃달기 등을 할 때에도 선생님은 언제나 말없이 조용히 따르셨지요. 그런 선생님에 대해서 우리는 조용한 동조자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방학 직후에 선생님께서도 해직을 당하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직까지 각오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지요. 설치기 좋아하는 저도 해직생활이 너무도 힘들고 괴로워 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조용하신 선생님의 3년 세월이 얼마나 큰 괴로움과 절망이었을까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황량한 그 세월을 안고 선생님은 목숨을 노리는 또 하나의 무서운 적과 싸움을 해야만 했군요. 동료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지않으려고 선생님은 그 처절한 싸움을 혼자 감당하셨군요, 임종에 이르러서야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신 선생님...
작년에는 동생도 잃어 이제 부모님 두 분만 남으셨다는 소식. 그래서 무덤조차 없이 저 세상으로 가신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입니다. 엊저녁 선생님이 누워계신 영안실을 나온 뒤에 함께 온 선생님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실 때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는데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서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해직을 당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텐데...
편안히 잠들 무덤조차 없을 임희진 선생님.
부디 구천을 이리저리 떠돌지 마시고 살아서 실현하시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신 그 뜻과 마음을 우리 마음에 전해주시고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 마음속에 늘 살아주십시오.
김희선 선생님 (전 광진 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