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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이창환-당시 23세

이창환-당시 23세

이창환(당시 23세)

1971년 9월 7일 출생
1990년 이리 황동고 졸업. 전북 산업대 경제학과 입학
1991년 전북 산업대 경상대 사회부장
산업대 개혁안 철폐를 위한 투쟁부국장 역임
1992년 노래패 「휘파람」창설
1993년 전북 산업대 8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역임
1994년 1월 27일 겨울 농활 수행 중 사고로 운명
1994년 1월 이창환 동지는 옥구군 회현면으로 후배 4명과 겨울농활을 수행하러 갔다. 그러던 중 27일 저녁 같이 식사를 하던 농민 아저씨가 실의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쌀투쟁의 희망을 주기 위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들은 밤 늦게까지 이창환군이 돌아오지 않자 찾아나섰고 아저씨의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이창환 동지의 주검이 발견되었고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뇌진탕으로 사망하였거나 실신하여 동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동지를 생각하며



형!
이렇게 가는구려
온다 간다는 말 없이
이렇게 먼저 가는구려


어릴 때
병져 누우신 어머니 앞에서
“엄마 우리는 언제 곡소리 해” 하더니
어머니를 남겨두고
젊은 형이 먼저 말없이 가는구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며
우리앞에 거목으로 다가서더니
또 이렇게 온다간다는 말없이
젊은 청춘이 먼저 가는구려


차가운 물에 손적시기를 싫어하는 겨울날 이른 아침
사랑하는 후배 동료들을 위해
쌀을 씻으며 호호 불던 차가운 손이
이제는 온몸으로 번져버려
차갑게 언땅으로 가는구려.


쌀이 개방되면
우리 민족이 다 죽는다며
쌀개방 만큼은 우리 손으로 막아야 한다며
강의실로, 거리로, 농촌으로 뛰어다니던
형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쌀개방만이 우리 주위를 감싸는구려.
언제나 주일이면
자그마한 교회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던 형
골고다 언덕 예수의 죽음처럼
그렇게 살고자 하던 형이
이제는 작은 예수가 되어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렇게 먼저 떠나는구려.


<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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