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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양봉수-당시 28세

양봉수-당시 28세

양봉수(당시 28세)

1967년 4월 전남 무안 출생
1986년 2월 목포 덕인고 졸업
1990년 10월 현대 자동차 입사(의장 2부)
1991년 소위원활동, 저시급 동지회 2공장 대표
1992년 2월 성과분배투쟁 관련으로 해고
1993년 1월 원직 복직
1994년 의장2부 소위원회 부의장, 8대 대의원 당선
1995년 2월 의장2부 마르샤 투입관련 회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라인정지건으로 두번째 해고
1995년 5월 12일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 본관정문
앞에서 분신
1995년 6월 13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31일간 사투끝에 운명
양봉수 동지는 강직한 품성으로, 동료와 노동조합에 대해 헌신적으로 활동해왔다. 91년 말 노조의 성과분배 요구투쟁에 회사측은 노조없애기 작전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그는 1차 부당해고되었다가 93년에 복직되었다. 복직 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그는 작업강도 조정을 위해 같은 사업부 대의원들과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회사측은 신차를 생산현장에 투입하면서 작업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기에 반대하는 대의원사이에 협상이 계속되어 ‘신차 투입은 대의원들과 합의한 후 실시한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생산현장에 신차를 투입하였고, 양봉수 동지는 담당 대의원으로서 회사측의 노사합의 파기에 강력히 항의하며, 신차를 투입한 생산 라인을 잠시 중단시켰다. 이를 이유로 그는 해고당하였고, 경남지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회사측은 법적인 소송에 계류중일 때는 조합원이 아니라 볼 수 없다는 단체협약에도 불구하고, 대의원 자격으로 노사협상장에 들어와 있는 그를 경비 20여명을 동원하여 정문 밖에 내던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정문출입을 저지하였다. 95년 5월15일, 동지는 그날도 공동소위원회 연합 발대식에 참여하기 위해 동료 해고자 4명과 함께 회사앞에 갔으나 출입을 저지당하였다. 법과 단체협약마저 무시하고, 계속되는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온몸에 신나를 붓고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외치며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비들은 이를 무시하고 집단으로 저지하였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동지의 몸에 불이 붙게 되었다. 병상에서도 동지는 “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살고 싶다. 현장조합원을 사랑한다. 노동조합을 사랑한다. 동지들을 믿습니다....다시 돌아가 함께 하겠습니다..”며 투쟁의 의지로 살고자 했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스물 아홉의 삶을 마감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연설문>


회사의 집요한 탄압을 뚫고 이 자리에 모이신 조합원 동지 여러분!

부당징계자 양봉수, 승용2공장 조합원 여러분께 뜨거운 애정과 의리로써 힘차게 인사드립니다.

“투쟁”

며칠전 유인물을 통하여 김수중 공장장님으로부터 고맙게도 정당해고자 판정을 받았습니다.

“투쟁”

제가 정당해고자 맞습니까? 회사가 여지껏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면서 단 한번이라도 부당하게 해고시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이야기 들어본 조합원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언제나 회사는 정당합니다. 언제나 회사는 잘못한게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맞습니까?

승용 2공장 조합원 동지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모자란 놈이 아닙니다. 더 더욱 미친놈도 아닙니다.

백주대낮에 할 일이 없어서 잘 돌아가는 콘베어를 무단으로 세울만큼 간뎅이가 부은 놈도 아닙니다.

그러나 회사는 저를 미친 놈, 간뎅이 부은 놈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승용 2공장 조합원들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바로 알고 그 부당함을 느끼고 떨쳐 일어서자, 혹시 이 일로 인해 전공장에 투쟁의 기운이 높아지고, 회사의 부당함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이 사건을 왜곡, 은폐, 조작하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징계자에게 회사가 이 정도의 심혈을 기울인 적이 있습니까? 이것만 봐도 이번 징계는 부당하며 우리의 투쟁은 정당합니다.

승용 2공장 조합원 동지 여러분!

오늘로써 “노동운동탄압분쇄, 노조민주화, 부당징계철회”를 위한 철야농성투쟁 21일째를 힘차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간 조합원 동지들께서 보여주신 단결과 투쟁이 21일째 철야농성을 당차고 힘차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새벽 찬바람 속에서도 근무하시다 짬을 내 “힘내라”며 농성장을 방문해 격려해 주시던 장기근속 조합원, 휴일인 일요일날 김밥을 싸갖고 오셔서 “잘 먹어야 투쟁을 하지”하면서 애정어린 눈빛을 떨구던 조합원, 반 별로 격려방문을 오셨던 각 부서 조합원 동지들, “아저씨, 힘내세요”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가녀린 여성조합원, 그외에도 수많은 전공장 조합원 동지들의 격려, 이것이 없었다면 저는 오늘 이자리에 서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지들과 함께 한 투쟁, 동지들의 일로 받아들인 투쟁, 이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힘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동지들께서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어제 2심에서도 해고가 되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제가 가슴 아픈것은 해고사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생산현장을 부당징계의 실험장으로 만드는 회사가 조합원의 가슴 아픈 소리를 피맺힌 절규를 외면하는 이영복 집행부의 반노동자적인 행위가 정말 가슴 아프게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실망하지도 가슴 아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투쟁에서 보여준 승용2공장 조합원 여러분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비록 외형적으로 제가 해고되어 이 투쟁에서 패배한것 같지만 내면적으론 이번 투쟁은 분명히 승리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근거로

첫째, 회사의 노동운동탄압과 부당한 노동통제에 맞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일동안 우리는 회사의 부당함을 전공장에 알리며 힘차게 투쟁해 왔고

둘째, 조합원의 아픔을 외면하는 이영복 집행부의 비민주성을 폭로하고 규탄했으며

셋째, 제2의, 제3의 양봉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현장이 부당징계의 실험장이 될 수 없다는 굳은 각오로 부당징계 철회투쟁을 힘차게 전개해 왔습니다.

저는 이 세가지 근거로 이번 투쟁은 분명히 승리했다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께 다시 한번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부당징계가 철회되지 못해 모두가 가슴 아프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동지여러분!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 가슴 속 알알이 맺힌 노동자의 피끓는 분노를 조직화하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새로운 투쟁을 힘차게 전개합시다.

승용 2공장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저는 이제 또다시 해고자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분명히 조합원이면서 대의원입니다. 회사는 저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법정투쟁을 통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원직복직쟁취 투쟁을 전개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대의원으로서 조합원의 권익신장을 위해 일상투쟁에 맡은바 임무를 다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이 투쟁을 막을 순 없습니다.

조합원 동지들이 늘 함께하는 한 저의 조합활동을 막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부서로 다시 돌아가 그간 중단된 H-CAR M/H투쟁에 전심전력을 다 하고, 다가 온 임단협 투쟁의 선봉에서 힘차게 투쟁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동지들의 힘으로 복직되는 그날까지 노동자의 양심과 의리를 굳건히 지키겠습니다.

끝으로 이번 투쟁에서 보여준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의 무한한 사랑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어렵고 힘든 조건속에서 노동자의 의리와 애정으로 함께 철야농성을 전개해온 승용2공장 대의원대표 김광식 동지 그리고 대의원, 소위원, 조합원 동지들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노동탄압 분쇄하고 부당징계 박살내자!”

“부당징계 박살내고 민주노조 쟁취하자!”

<21일간의 철야농성을 마치면서 가진 사업부 집회에서의 연설문>



추모시


고인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그대 이렇게 떠나는가
누가 무엇이 그대를 떠나게 했는

그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알고 있음을
그대의 영전에서 부끄럽게 고백하네
그대 진정 나약한 우리를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가
그대가 그렇게 들어오자 했던 양정동 700번지 민주광장
지금 그대 어찌하여 두발로 들어오지 않고 영정으로 왔단 말인가
우리가 애타게 원했던 것은 그대의 영정이 아님을
그대는 진정 몰랐단 말인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그대의 쾌유를 빌었건만
그댄 우리의 바램을 외면할 수 밖에 없더란 말인가
아니니라, 아니니라, 그대가 아니니라
그댄 우리와 함께 하길 우리가 알고 있을 진대
그댄 정녕 아니니라
우린 알지요. 우린 알지요 누구인지를
그는 지금도 안락한 회전의자에 앉아
우릴 내다보고 있을 저들을
그대여!
나 말하리라 나의 아들, 딸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탄압에 고통과 피흘림과 죽임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자유를 누린다고
그리고 그대의 죽음도 잊지 않고 말하리라
그대여! 그대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대의 뜻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도 않았는데
그대 어떻게 가려나
그대여!


그대 이제 편히 가게나 이 세상 더럽고 추한 것 다 잊어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하나 그대를 향한 우리들의 사랑만 가져 가게나
그곳에서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묻거던 이렇게 말하여 주게나
가난한 노동자의 가슴에는 뜨거운 사랑이 있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의가 흐르고
억센 팔뚝에 정이 넘쳤기 때문이라고


그대여! 그대 이렇게 떠난다해도
그대의 뜻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남을 것이며
그대의 뜻 이어나갈 것임을 낮은 목소리로 그대의 영전에 맹세하네
나 그대의 무덤에 다시 찾아가리라
역사가 온전히 심판하는 날
백합 한송이 장미 한송이 국화 한송이 품에 안고 가리라
그대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역사가 심판했노라고
콘베이어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동자가

<이글은 양봉수 동지 분향소를 방문한 이름모를 조합원이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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