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진(당시 38세)
1948년 3월 16일 강화도 삼산군 출생
1961년 강화도 삼산국민학교 졸업
1976년 대성연탄 취직
1981년 택시기사로 취직
1985년 삼환택시 입사
1986년 2월 22일 부당해고 통고, 4.30일까지 출근투쟁
1986년 4월 30일 오후 2시 30분경 회사앞에서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
1986일 5월 1일 운명
1961년 강화도 삼산국민학교 졸업
1976년 대성연탄 취직
1981년 택시기사로 취직
1985년 삼환택시 입사
1986년 2월 22일 부당해고 통고, 4.30일까지 출근투쟁
1986년 4월 30일 오후 2시 30분경 회사앞에서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
1986일 5월 1일 운명
회사에서 기사들에게 세차비를 부담시키자 변형진동지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회사측은 배차정지를 시켜 3일간 일을 못하게 하고 월급에서 3일치를 공제시키자 이에 반발하여 회사앞에서 알몸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4월21일에는 배차를 받아 회사에서 나오다가 사장차와 마주치게 되었으나 뒤로 비키지 않고 그대로 몰고 나왔다. 이에 격노한 사장의 지시로 동지는 해고를 당하게 되고, 이에 반발. 출근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4월30일 신나를 몸에 끼얹고 분신하여, 회사측은 아무도 모르게 변형진 동지를 한강 성심병원으로 옮기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동지들에게 동지가 이미 죽었다며 면회조차 거부하며 합의하기를 공갈협박하였다. 그러나 동지는 5월1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이 길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떳떳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38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누가 변형진 동지를 죽였는가?
세차비까지 기사들에게 부담시키며, 극에 달한 착취를 일삼고도 취업카드라는 제도를 통해 언제든지 기사들의 생존권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자본가의 끊임없는 착취와 노동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자본가의 비인간적 작태에 동지는 죽음으로써 항거하였다.
동지의 정당한 투쟁을 아무 이유없이 억누르는 경찰과 동지의 주검마저 철거하겠다고 위협하여 동지의 삶의 마지막 보루인 가정까지 파괴하려한 현정권의 하수인은 물론 자본가 위주의 노동정책과 교통정책 및 모든 면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현정권이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일천만개의 불꽃으로 타올라 억압과 착취를 불사르자!
변형진 동지는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는 노예적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1천만 노동자의 피맺힌 현실을 온몸으로 불살랐다. 때려 죽일 삼반의 무리들은 우리 변형진 동지를 죽였으나 이제 변 동지의 목숨을 건, 장엄한 투쟁은 1천만개의 심지에 불을 당겨 결코 꺾이지 않는 영원한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40만 운수 노동자여! 1천만 노동형제여! 변 동지의 죽음앞에 과감한 투쟁을 벌여 우리 노동자의 손으로 삼반세력을 물리치자!
변형진 동지의 성품
변형진 동지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고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그대로 행하며,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단 한 치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격이었다. 동지는 남 술사주는데 일등이었으며,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술을 먹으면 쓸데없는 주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바른 소리를 잘 하였다.
인정이 많아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실어다준 적도 상당히 많았으며, 심지어 몇 해 전에는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을 자신의 차로 강원도 춘천에까지 모셔다가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병구완을 했을 정도였다.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해 회사측과 여러번 싸웠으나 그때마다 회사측은 무조건 경찰을 불러 동지를 파출소로 끌고 가게 하였고, 그때마다 번번이 무혐의로 훈방되어 나왔으며, 이 까닭에 개인택시 면허에 대한 기대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추모글
<결의문> - 우리의 결의
- 변형진 동지를 죽인 사장놈들과 살인정권 깔아 죽이자!
- 운전기사의 개목걸이 취업카드 불태우자!
- 사납금 철폐하고 완전월급제 쟁취하자!
- 운전기사 골병드는 자율버스 철폐하자!
- 3교대 근무하고 생활임금 쟁취하자!
- 파업,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 우리 손으로 쟁취하자!
- 군사독재 앞장세워 광주민중 학살하고 노동자 농민 피땀짜는 미국놈들을 몰아내자!
- 일천만 노동자의 요구에 등돌리는 신민당을 믿지 말자!
- 가두 총파업으로 군사독재 타도하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삼민헌법 쟁취하자!
1986년 5월 2일 취업카드 철폐투쟁위원회
동지를 생각하며
누가 변형진 동지를 죽였는가?
세차비까지 기사들에게 부담시키며, 극에 달한 착취를 일삼고도 취업카드라는 제도를 통해 언제든지 기사들의 생존권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자본가의 끊임없는 착취와 노동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자본가의 비인간적 작태에 동지는 죽음으로써 항거하였다.
동지의 정당한 투쟁을 아무 이유없이 억누르는 경찰과 동지의 주검마저 철거하겠다고 위협하여 동지의 삶의 마지막 보루인 가정까지 파괴하려한 현정권의 하수인은 물론 자본가 위주의 노동정책과 교통정책 및 모든 면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현정권이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일천만개의 불꽃으로 타올라 억압과 착취를 불사르자!
변형진 동지는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는 노예적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1천만 노동자의 피맺힌 현실을 온몸으로 불살랐다. 때려 죽일 삼반의 무리들은 우리 변형진 동지를 죽였으나 이제 변 동지의 목숨을 건, 장엄한 투쟁은 1천만개의 심지에 불을 당겨 결코 꺾이지 않는 영원한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40만 운수 노동자여! 1천만 노동형제여! 변 동지의 죽음앞에 과감한 투쟁을 벌여 우리 노동자의 손으로 삼반세력을 물리치자!
변형진 동지의 성품
변형진 동지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고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그대로 행하며,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단 한 치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격이었다. 동지는 남 술사주는데 일등이었으며,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술을 먹으면 쓸데없는 주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바른 소리를 잘 하였다.
인정이 많아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실어다준 적도 상당히 많았으며, 심지어 몇 해 전에는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을 자신의 차로 강원도 춘천에까지 모셔다가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병구완을 했을 정도였다.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해 회사측과 여러번 싸웠으나 그때마다 회사측은 무조건 경찰을 불러 동지를 파출소로 끌고 가게 하였고, 그때마다 번번이 무혐의로 훈방되어 나왔으며, 이 까닭에 개인택시 면허에 대한 기대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추모글
<결의문> - 우리의 결의
- 변형진 동지를 죽인 사장놈들과 살인정권 깔아 죽이자!
- 운전기사의 개목걸이 취업카드 불태우자!
- 사납금 철폐하고 완전월급제 쟁취하자!
- 운전기사 골병드는 자율버스 철폐하자!
- 3교대 근무하고 생활임금 쟁취하자!
- 파업,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 우리 손으로 쟁취하자!
- 군사독재 앞장세워 광주민중 학살하고 노동자 농민 피땀짜는 미국놈들을 몰아내자!
- 일천만 노동자의 요구에 등돌리는 신민당을 믿지 말자!
- 가두 총파업으로 군사독재 타도하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삼민헌법 쟁취하자!
1986년 5월 2일 취업카드 철폐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