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석(당시 20세)
1969년 전남 보성 출생
1983년 영선중학교 졸업
1984년 인천 직업훈련원 수료
1985년 진주 방송통신고등학교
1986년 대우조선 입사, 조립 2부에서 근무
1988년 진주 방송통신등학교 입학
1989년 5월 29일 구사대 가입을 강요하자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며 항의, 분신·투신
1989년 6월 4일 운명
1983년 영선중학교 졸업
1984년 인천 직업훈련원 수료
1985년 진주 방송통신고등학교
1986년 대우조선 입사, 조립 2부에서 근무
1988년 진주 방송통신등학교 입학
1989년 5월 29일 구사대 가입을 강요하자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며 항의, 분신·투신
1989년 6월 4일 운명
89년 5월18일 임금교섭을 시작하던 대우조선 노조측에서는 시급하게 일당 620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회사측은 한푼도 올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유선 TV방송을 이용해 지역사회 주민들을 회유하기까지 하였다. 5월26일 5차 교섭때 회사측은 ‘임금동결 아니면 폐업하겠다’며 종래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자 29일 오전 9시 박진석 동지는 반장이 나눠준 구사대 가입 신청서를 찢어 버리고 “더이상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또다시 밤 10시 40분경 이상모 동지가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 투신하였다.
이에 회사측은 박동규 조선소장 명의로 ‘이 어려운 시기에 일부 선동분자들은 단체 협약과 사규를 무시하고 종업원을 불법소집하여 우리의 생산시간을 낭비하여 감정에 호소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자행했다.
런 행동에 동조하는 것은 회사문을 빨리 닫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오후 10시40분 이상모 동지 옥상에서 분신후 투신, 운명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사용자는 각성하라.
1만여 조합원여러분
나는 죽지 않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회장님 불쌍한 노동자를 울리지 마십시오)
동지를 생각하며
<전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의 성명서 中>
일천만 노동동지와 사천만 민중형제 여러분!
지금 우리는 치떨리는 분노로 우리의 동지들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1989년 5월29일 거제 대우조선의 이상모 열사가 “원직복직, 임금인상 확실하게 쟁취하자”를 외치며 분신 사망했으며, 이에 앞서 “노동조합만세”, “노동자 만세”를 외치며 분신한 박진석 열사도 6월4일 6일간의 병상투쟁도 보람없이 운명했습니다.
87년 8월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살해된 이석규 열사의 무덤에 잔디가 채 피기도 전에 또다시 거제 대우조선에서 2명의 청년 노동자를 동시에 우리는 잃었습니다.
지난 3월 폭력 경찰에 의해 진압된 현대 중공업 투쟁을 기억하십니까? 현대의 반인륜적 테러와 정권의 가공할 폭력에 맞선 현중 노동자의 투쟁은 반사회적인 재벌의 횡포를 저지하고 노동자와 민중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재벌과 정권에 단호히 일격을 가하고 우리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나갑시다!
대우그룹과 정권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대우조선 노동동지에 대한 자원 연대투쟁을 전국에서 힘있게 펼쳐나갑시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태우정권을 반드시 퇴진시킵시다.
지역주민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땅 거제도는 거제 원주민들의 선조들이 뼈를 묻은 곳입니다.
이곳에 대우조선이라는 문명이 들어왔고, 문명은 경영주의 이윤창출을 위해 곧 우리같은 노동자를 불렀습니다.
아름다운 거제에 망치소리 울리게 되면서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경영자의 무자비한 이윤추구욕에 억눌려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말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이익을 만드는 기계처럼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대의에 우리의 권익을 찾기위해 87년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고 3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권익은 커녕 경영자들의 탄압은 더욱 노골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생존권인 원직복직, 임금인상, 회사의 분열책동에 항거 분신한 열사의 죽음은 그간 있어왔던 수차례의 교섭과정과 구사특공대, 우리직장 수호결사대, 상록회라는 유령단체의 노동자 탄압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 우리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위협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두분 열사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두분 노동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오늘 실천대회에 주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라며 거제도가 다같이 잘 사는, 우리들을 위한 거제도로, 장승포시로 우리 서로 힘을 모아 만들어 봅시다.
1989. 6. 6.
대우조선 공업(주) 노동조합 조합원 일동
그러자 29일 오전 9시 박진석 동지는 반장이 나눠준 구사대 가입 신청서를 찢어 버리고 “더이상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또다시 밤 10시 40분경 이상모 동지가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 투신하였다.
이에 회사측은 박동규 조선소장 명의로 ‘이 어려운 시기에 일부 선동분자들은 단체 협약과 사규를 무시하고 종업원을 불법소집하여 우리의 생산시간을 낭비하여 감정에 호소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자행했다.
런 행동에 동조하는 것은 회사문을 빨리 닫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오후 10시40분 이상모 동지 옥상에서 분신후 투신, 운명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사용자는 각성하라.
1만여 조합원여러분
나는 죽지 않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회장님 불쌍한 노동자를 울리지 마십시오)
동지를 생각하며
<전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의 성명서 中>
일천만 노동동지와 사천만 민중형제 여러분!
지금 우리는 치떨리는 분노로 우리의 동지들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1989년 5월29일 거제 대우조선의 이상모 열사가 “원직복직, 임금인상 확실하게 쟁취하자”를 외치며 분신 사망했으며, 이에 앞서 “노동조합만세”, “노동자 만세”를 외치며 분신한 박진석 열사도 6월4일 6일간의 병상투쟁도 보람없이 운명했습니다.
87년 8월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살해된 이석규 열사의 무덤에 잔디가 채 피기도 전에 또다시 거제 대우조선에서 2명의 청년 노동자를 동시에 우리는 잃었습니다.
지난 3월 폭력 경찰에 의해 진압된 현대 중공업 투쟁을 기억하십니까? 현대의 반인륜적 테러와 정권의 가공할 폭력에 맞선 현중 노동자의 투쟁은 반사회적인 재벌의 횡포를 저지하고 노동자와 민중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재벌과 정권에 단호히 일격을 가하고 우리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나갑시다!
대우그룹과 정권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대우조선 노동동지에 대한 자원 연대투쟁을 전국에서 힘있게 펼쳐나갑시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태우정권을 반드시 퇴진시킵시다.
지역주민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땅 거제도는 거제 원주민들의 선조들이 뼈를 묻은 곳입니다.
이곳에 대우조선이라는 문명이 들어왔고, 문명은 경영주의 이윤창출을 위해 곧 우리같은 노동자를 불렀습니다.
아름다운 거제에 망치소리 울리게 되면서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경영자의 무자비한 이윤추구욕에 억눌려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말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이익을 만드는 기계처럼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대의에 우리의 권익을 찾기위해 87년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고 3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권익은 커녕 경영자들의 탄압은 더욱 노골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생존권인 원직복직, 임금인상, 회사의 분열책동에 항거 분신한 열사의 죽음은 그간 있어왔던 수차례의 교섭과정과 구사특공대, 우리직장 수호결사대, 상록회라는 유령단체의 노동자 탄압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 우리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위협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두분 열사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두분 노동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오늘 실천대회에 주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라며 거제도가 다같이 잘 사는, 우리들을 위한 거제도로, 장승포시로 우리 서로 힘을 모아 만들어 봅시다.
1989. 6. 6.
대우조선 공업(주) 노동조합 조합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