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선 동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라는 부모님과 누나의 말을 뿌리치고 어려운 가정 사정을 생각하여 “나도 돈을 벌겠다”며 진학을 포기한 채, 낯설고 낯선 공장문을 16살의 어린 손으로 두들겨야만 했다. 이렇게 그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초기 현장생활에서의 그의 모습은 촌스러울 정도로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며 말이 없었다.

공장생활 하는 중에도 어머님의 생각은 그의 가슴을 다 메꾸어도 부족했다. 항상 속병을 앓고 계시던 어머님을 걱정하고, 어머님이 아프실 때는 조퇴를 하면서까지 어머님의 병간호에 구슬땀을 흘리며 어머님의 아픔을 같이 나누었다.

술드시고 돌아온 아버님께 두 무릎을 꿇고서 새벽 4시까지 아버님의 맺힌 한과 푸념을 묵묵히 같이 나누곤 했다.

내성적이면서도 한번 사귄 친구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그의 주의에 많은 친구들이 있게 했다. 한 번은 외판원하는 친구가 혼자 무거운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와서 하루종일 친구의 짐을 들고 다니며 “잘 안팔린다. 어째 안팔리지”하며 친구의 근심을 자기 일처럼 생각했었다.

이런 그에게 <살아온 이야기> 노래는 왠지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그는 이 노래를 배우고자 회사 친구를 무척 따라다녔고, 그래서 그와 함께 백마교회 문화잔치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계기가 이 사회와 우리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올바르게 알게 되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했던 것이다. 동지는 4.19강연을 듣고는 “저렇게 어린 국민학생도 악의 무리에 항거해 싸워왔는데 나는 무엇을 했나”라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또 박정희가 독립투사를 때려잡는 만주군 용사였음을 알고는 자신이 너무 모른다고 생각, 좀더 알기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또 “테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이라는 박노해씨의 <진짜 노동자>를 보고는 “그럼 나도 얼빠진 놈이네”라고 겸연쩍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올바르게 보면서 현장생활에도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똑똑해 보이던 관리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권위를 앞세우고 노동자 위에 군림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래서 얌전했던 그가 관리자들의 횡포를 보고는 심한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다.

6월투쟁은 그에게 직접 실천해 봄으로써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6월 10일 거리투쟁에 처음 참가하는 설레임과 두려움을 갖고 참석했다. 참석했던 대중들의 호응과 친구들의 신뢰에 큰 힘을 얻어, 유인물까지 배포하던 그의 눈동자는 사회의 모든 모순을 정화할 수 있는 눈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친구와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목청높이 외쳐대던 모습, 최루탄에 눈물 흘리며 재채기를 하면서 현 정권의 쓴 맛을 알았고 현 정권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경찰의 무차별 최루탄 발사에 흩어지는 대중을 보며 단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에 참석하면서 청천동 일대를 장악하면서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새벽 3시 미친 듯이 최루탄을 쏘아대며 한곳으로 밀어넣어 마구 잡아가던 그들의 무차별 폭력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싸움의 과정들 속에서 그는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그래서 함께 고민을 이야기하는 모임을 가졌다. 소위 노태우의 6.29선언이 발표되고 난 후 이것은 실제로 우리의 싸움의 결과이다라고 말하면서도 한편 노태우의 민주화 8개 조항가운데 생산의 주체이자 역사의 주체인 노동자의 요구조건은 하나도 없다면서 어떻게 이 땅에서 천만 노동자와 그 가족, 천만 농민, 500만 도시빈민을 무시한 민주화선언이 진정한 민주화선언일 수 있겠는가 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따라서 진정한 국민을 위한 민주화조치가 아니라 국민과 진정한 민주화세력을 이간질시키려는 이간책이 아니가 하고 묻기도 했다.

이러한 조그마한 모임 속에서 동지들은 그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친구를 아껴주었고 친구들이 회사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 하였다.

소위 6.29 민주화조치가 발표된 이후 7월 12일 이한열 추모 및 구속자 전원석방 촉구대회가 개최되던 날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하며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농성을 하였다. 농성기간에 동료들이 안에서 충분히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6일간 전투조에 참가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고, 특히 비가 억수같이 몰아치던 날 밤, 속옷까지 젖으면서도 흔들림없이 성당을 지켰다. 어느 때보다도 그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떠올랐고, 흐뭇해했다.

특히 새벽 4시, 엄습해 오는 잠을 쫓아내려고 “새벽잠을 몰아내고 군부독재 타도하자”고 외쳐대던 그 목소리, 이게 바로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가 아니겠는가?

성당 안에서 신포시장을 내려다보던 동지는 시민들이 군화발로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외쳤다.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무섭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라고 두 눈을 부릅뜨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주어 피끓는 절규로 외쳤다.

마음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온 몸으로 부딪혀서 깨부수려는 동지의 정신은 우리의 삶속에 영원히 남아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수련회 간다는 것을 무척이나 기쁘게 받아들였다. 어머님의 병환, 곧 있을 군입대에도 불구하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 수련회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동지는 동지를 위하여 기꺼이 한 목숨을 바쳤다.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기 위하여 그렇게 사라져 갔다.

동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죽음을 택했던 그의 진실된 동지애는 동지들에게 커다란, 진실된 굵직굵직한 눈물로 어두운 곳에 햇살로 비춰주듯 동지들을 정화시켜 주었다.

그렇다! 우린 분명히 알고 있다.

오직 동지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보답하는 것은 지옥같은 노동현실을 바꾸고 우리 모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동지가 남긴 글


차 돌 맹 이


1.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마음에는 하나가득 허망뿐이네
어떻게 살 것인가 물어 보아도
만난사람 모두가 코방귀 뀌네 흥흥흥
자 모이자 차돌맹이로
굳게굳게 어깨걸고 차돌찾으러


2. 돈(유행)쫓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염라씨 부르시면
쓸모없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우리 사랑은 지구에 종말이
온다해 봐도
자- 모이자 차돌맹이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차돌찾으러


3. 세파에 시련이 닥친다 해도
모든 것은 한꺼번에 뺏긴다해도 차돌맹이
가슴속에 뚜렷이 있다
하나의 높은 꿈의 세계가
자～ 떠나자 차돌 찾으러
꿋꿋하게 살아가는 차돌 찾으러

<노래 ‘고래사냥’을 동지가 개사한 것임.>

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