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훈(당시 40세)
1955년 경북 영덕군 출생
1971년 영해 중학교 졸업
1982년 대우조선 입사, 특선수 선장탑에서 근무
1995년 6월 21일 분신 후 투신, 운명
1971년 영해 중학교 졸업
1982년 대우조선 입사, 특선수 선장탑에서 근무
1995년 6월 21일 분신 후 투신, 운명
대우조선은 그 동안 노동조합 집회 등 조합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관리라인을 총동원하여 노조활동을 탄압해 왔었다. 동지는 회사의 이러한 부당한 탄압에 온몸으로 항거, 분신후 투신하게 되었다.
박삼훈 동지가 근무하던 대우조선은 신경영 전략으로 현장의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 감독하는 인간말살 정책을 펴왔으며 단체교섭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회사측의 살벌한 노동통제와 노무관리아래 노동자들은 호봉 하나, 잔업특근 하나에 동료와 경쟁하고 눈치보며 서로 감시자가 되어야 했고, 조합원의 정당한 권리인 집회 참석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 당해야 했다.
회사측의 이러한 부당한 탄압에 맞서 6월 21일, 12시20분경 박삼훈 동지는 특수선 본관 사무실 옥상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후 투신해 대우병원으로 긴급 후송했으나 12시 58분 끝내 숨지고 말았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이놈에 세상 가진자만이 판치는 세상
우리 근로자는 작은 월급으로 치솟는 물가를 따라 가지도 못하고
노동자여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살아가는게 아닙니까
툭하면 집회 참석 못하게 하고 우리 권리를 우리가 찾아야지 누가 찾습니까
노동자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올 임금 100% 쟁취하기 바랍니다.
사용자여 각성하라
앞서간 노동동지 뒤를 따라갑니다.
노동형제 여러분
올해 목적을 기필코 승리하기 바랍니다.
애 도 사 (동지의 동생)
언제나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다리가 떨리고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도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 가면서 즐겁게 작업하셨고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 역시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솔선수범하셨던 형님!
얼마전 저에게 막걸리 한잔을 전해주면서 항상 가정에 충실하라던 말씀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머물러있어 저로서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형님을 고이 보내 드립니다.
이제는 자본가가 생산제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잊으시고 덥기만 하고 겨울철에 어디에도 몸녹일 곳 조차 없는 회사,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과감히 떨쳐 버리시고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영혼은 노동자의 곁에서 살아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참세상을 위한 노동해방의 그날까지 길이길이 머무시어 인간해방, 노동해방이 존재하는 그곳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편안하게 잠드소서.
추모시
옳은 건 옳은 거고 틀린건 틀린거 아니요
그렇게 말하지 못할 때
내가 노동자요?
내가 과연 사람이요?
먼저 이길 갔던
그 사람들이 이제 알 것 같소
온 세상에 불 한 번 싸지르고 싶던
그 더러운 기분
내 한몸에 지르고
나는 가요
이렇게 라도 해야
내가
사람일 것 같소
<제목 “내 장례식에 부쳐” 中에서, 시인 채유정 지음>
추모의 글
열사없는 좋은 세상을...
“아침에 출근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금방이라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는 미망인 최정임씨.
살아 생전 그렇게 쾌활하고 탁트인 성격을 지녔던 남편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한편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남편이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정을 놔두고 그렇게 떠나버린 남편의 심정이 어땠는지,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단다. 대우조선에서 같이 회사생활을 했기에 노동통제가 어떤건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온 몸 불덩이 되어 그렇게 떠나갔다.
회사는 각성하라고.. 노동자되어 단결하라고..
그 큰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노동열사의 떳떳한 아내로 살아야 한다는 어떤 책임이 버팀목이 되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고현에 있는 한 아담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지금은 삼성중공업 외주업체에 나가고 있다. 큰아들은 대구에서 법학과 대학을 다니고 작은딸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착하고 굳건하게 커가는 모습이 가장 큰 위안이다. 또 하나의 보람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는 전국민주열사 유가족협의회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잃은 생채기 투성인 가슴을 안고, 고인들의 못다한 일들을 계속 펼치고 있다.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누구도 감히 손을 못 댈만큼 응어리진 이들의 투쟁에서 커다란 힘과 용기를 얻고 있다. 만약 저승에서 남편이 보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조합원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어렵고 힘들수록 조합원끼리 서로 뭉쳐서 다시는 열사가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한다.
<박삼훈 동지 미망인 최정임씨>
박삼훈 동지가 근무하던 대우조선은 신경영 전략으로 현장의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 감독하는 인간말살 정책을 펴왔으며 단체교섭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회사측의 살벌한 노동통제와 노무관리아래 노동자들은 호봉 하나, 잔업특근 하나에 동료와 경쟁하고 눈치보며 서로 감시자가 되어야 했고, 조합원의 정당한 권리인 집회 참석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요 당해야 했다.
회사측의 이러한 부당한 탄압에 맞서 6월 21일, 12시20분경 박삼훈 동지는 특수선 본관 사무실 옥상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후 투신해 대우병원으로 긴급 후송했으나 12시 58분 끝내 숨지고 말았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이놈에 세상 가진자만이 판치는 세상
우리 근로자는 작은 월급으로 치솟는 물가를 따라 가지도 못하고
노동자여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살아가는게 아닙니까
툭하면 집회 참석 못하게 하고 우리 권리를 우리가 찾아야지 누가 찾습니까
노동자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올 임금 100% 쟁취하기 바랍니다.
사용자여 각성하라
앞서간 노동동지 뒤를 따라갑니다.
노동형제 여러분
올해 목적을 기필코 승리하기 바랍니다.
애 도 사 (동지의 동생)
언제나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다리가 떨리고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도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 가면서 즐겁게 작업하셨고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 역시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솔선수범하셨던 형님!
얼마전 저에게 막걸리 한잔을 전해주면서 항상 가정에 충실하라던 말씀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머물러있어 저로서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형님을 고이 보내 드립니다.
이제는 자본가가 생산제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잊으시고 덥기만 하고 겨울철에 어디에도 몸녹일 곳 조차 없는 회사,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과감히 떨쳐 버리시고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영혼은 노동자의 곁에서 살아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참세상을 위한 노동해방의 그날까지 길이길이 머무시어 인간해방, 노동해방이 존재하는 그곳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편안하게 잠드소서.
추모시
옳은 건 옳은 거고 틀린건 틀린거 아니요
그렇게 말하지 못할 때
내가 노동자요?
내가 과연 사람이요?
먼저 이길 갔던
그 사람들이 이제 알 것 같소
온 세상에 불 한 번 싸지르고 싶던
그 더러운 기분
내 한몸에 지르고
나는 가요
이렇게 라도 해야
내가
사람일 것 같소
<제목 “내 장례식에 부쳐” 中에서, 시인 채유정 지음>
추모의 글
열사없는 좋은 세상을...
“아침에 출근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금방이라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는 미망인 최정임씨.
살아 생전 그렇게 쾌활하고 탁트인 성격을 지녔던 남편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한편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남편이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정을 놔두고 그렇게 떠나버린 남편의 심정이 어땠는지,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단다. 대우조선에서 같이 회사생활을 했기에 노동통제가 어떤건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온 몸 불덩이 되어 그렇게 떠나갔다.
회사는 각성하라고.. 노동자되어 단결하라고..
그 큰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노동열사의 떳떳한 아내로 살아야 한다는 어떤 책임이 버팀목이 되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고현에 있는 한 아담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지금은 삼성중공업 외주업체에 나가고 있다. 큰아들은 대구에서 법학과 대학을 다니고 작은딸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착하고 굳건하게 커가는 모습이 가장 큰 위안이다. 또 하나의 보람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는 전국민주열사 유가족협의회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잃은 생채기 투성인 가슴을 안고, 고인들의 못다한 일들을 계속 펼치고 있다.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누구도 감히 손을 못 댈만큼 응어리진 이들의 투쟁에서 커다란 힘과 용기를 얻고 있다. 만약 저승에서 남편이 보고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조합원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어렵고 힘들수록 조합원끼리 서로 뭉쳐서 다시는 열사가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한다.
<박삼훈 동지 미망인 최정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