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진(당시 21세)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입학.
1988년 2학기 총학생회 사회부차장.
1989년 전대협 한라선봉대 용성총련 대표
1990년 11월 19일 군 입대.
1991년 2월 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사건경과
90년 11월 19일 논산 제2훈련소 입소
91년 1월 14일 논산 제2훈련소 퇴소
23일 연대 배치 (주특기가 08에서 소총부대로 바뀜)
24일 자대 배치
25일 전방입소 훈련 떠남, 내무반에서 친구에게 편지 이후 이창호 하사와 대화 나눔. 이때 이창호 하사가
“남북이 통일되면 그때 우리의 적은 누가 되는가?” 라고 묻자 “우리의 적은 미국이다”라고 대답
2월 2일 훈련을 마치고 새벽에 자대도착 3일 오전 10시경 교회를 다녀온 후 의무반에서 무릎상처를 치료받고 감기약 타감 오전 11시 30분경 일병이 쓰레기 소각장에서 3-5인분의 빵과 음료를 사들고 있는 현진이를 목격 오후 2시 50분 부대밖에서 목을 멘 시체로 발견됨 많은 의문점들에 대해 군은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하였고 이 속에서 남현진 동지가 자대배치 이전에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특히 동지의 군생활을 잘 알고 있는 훈련소 동기들의 증언은 이러한 의문점을 더하게 한다. 그들은 “군에서는 현진이가 전방입소 훈련을 사고없이 잘 수행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알기로 현진이는 무릎의 상처 때문에 60킬로미터 행군을 하다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훈련 중에 쓰러지게 되면 정상적인 군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현진이처럼 08(보안 및 정보요원) 주특기를 받게되면 엄격한 성분조사와 기무사 요원과의 면담을 통해 적격(?)여부가 결정됩니다” 라는 동기들의 증언은 남현진 동지의 죽음에 기무사가 개입되었음을 확신하게 해준다.
다시말해 기무사가 남현진 동지의 전력을 왜 조사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면서 기무사가 철저한 사전조사와 면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지를 만났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기무사는 남현진 동지가 논산훈련소에서 08주특기를 받은 후 그가 재학중 총학생회 간부였음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기무사가 그의 전력을 알았다면 조사과정에서 가해졌을 많은 물리력과, 협박, 프락치 강요 등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또한 훈련기간에 쓰러지게 된 원인인 무릎상처는 조사과정에서 행해졌을 물리력에 대한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실제 1월 24일 이후 남현진 동지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한다. 굳은 얼굴에 마치 무슨 일이 있던 것 같다는 동료의 증언, “아무 말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네가 유추 해석해야 한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문귀와 함께 심리적 불안이 가득한 상태의 편지내용은 뭔가 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끔직한 상황이 자신을 엄습하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1월 5일자 발송되지 않은 편지에는 유가족에게 자신의 안전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 있었고, 동기생들이 사건 직후 감금되어 나타나지 않은 일 등도 의혹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