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목사
1931년 기독교에 입교하고 차호공립보통학교 졸업
1935년 농업에 종사하여 8人의 가족을 부양
1940년 金明珠와 결혼, 1男2女의 子女와 1男6女의 孫子女. 일본 東京明治學院 영문학부 졸업
1948년 한신대학교 (학사)
1949년 경동교회 목사
1956년 미국 뉴욕유니언신학대 (학사)
1961년 1983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실행위원ㆍ중앙위원
1962년 캐나다 마니토바대 (명예신학박사)
1963년 크리스챤아카데미(現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
1986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회장
1987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예술행사추진위원회 위원장(~1988년)
1988년 방송위원회 위원장(~1991년)
1994년 원광대학교 (명예철학박사)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공동의장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문학박사)
1998년 통일부 통일고문회의 의장(~2000년) 2002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자문위원(~2002년)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1999년)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공동위원장 (~2003년)
2000년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회 이사장. (사)평화포럼 이사장
2004년 (재)실업극복 국민재단 이사장
2006년 8월 17일 운명
1935년 농업에 종사하여 8人의 가족을 부양
1940년 金明珠와 결혼, 1男2女의 子女와 1男6女의 孫子女. 일본 東京明治學院 영문학부 졸업
1948년 한신대학교 (학사)
1949년 경동교회 목사
1956년 미국 뉴욕유니언신학대 (학사)
1961년 1983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실행위원ㆍ중앙위원
1962년 캐나다 마니토바대 (명예신학박사)
1963년 크리스챤아카데미(現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
1986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회장
1987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예술행사추진위원회 위원장(~1988년)
1988년 방송위원회 위원장(~1991년)
1994년 원광대학교 (명예철학박사)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공동의장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문학박사)
1998년 통일부 통일고문회의 의장(~2000년) 2002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자문위원(~2002년)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1999년)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공동위원장 (~2003년)
2000년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회 이사장. (사)평화포럼 이사장
2004년 (재)실업극복 국민재단 이사장
2006년 8월 17일 운명
저서
[새시대의 건설자], [폐허에의 호소], [자유케 하는 진리], [인생과 종교], [강원용과의 대화], [여해 강원용 전집], [믿는나와 믿음없는 나], [빈들에서], [역사의 언덕에서] 外
상훈
방송공헌 감사장, 모란장, 동백장, 청룡장, 니와노평화상(일본), 만해평화상, 한신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고 강원용 목사(1917.7.3~2006.8.17)는 일제 강점기 국가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고, 해방 전후에는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좌와 우를 넘어서는 국가의 비전을 마련하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성육신의 신학과 기독교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활동은 1945년 <경동교회>를 설립하고 예언자적 말씀의 선포에 이어,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한 이래 한국사회의 인간화를 실현하고자 양극화를 해소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중간집단 육성강화교육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 각 영역의 리더십을 양성하였다. 또 대화운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일을 비롯해 사회 갈등의 당사자들 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분야간, 계층간의 수많은 대화모임을 주선해왔다. 더욱이 2000년대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포럼>을 설립,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를 위한 연구와 국내외의 여론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 위 글은 <여해강원용목사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브로셔에 게재된 문안입니다.
[새시대의 건설자], [폐허에의 호소], [자유케 하는 진리], [인생과 종교], [강원용과의 대화], [여해 강원용 전집], [믿는나와 믿음없는 나], [빈들에서], [역사의 언덕에서] 外
상훈
방송공헌 감사장, 모란장, 동백장, 청룡장, 니와노평화상(일본), 만해평화상, 한신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고 강원용 목사(1917.7.3~2006.8.17)는 일제 강점기 국가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고, 해방 전후에는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좌와 우를 넘어서는 국가의 비전을 마련하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성육신의 신학과 기독교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활동은 1945년 <경동교회>를 설립하고 예언자적 말씀의 선포에 이어,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한 이래 한국사회의 인간화를 실현하고자 양극화를 해소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중간집단 육성강화교육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 각 영역의 리더십을 양성하였다. 또 대화운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일을 비롯해 사회 갈등의 당사자들 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분야간, 계층간의 수많은 대화모임을 주선해왔다. 더욱이 2000년대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포럼>을 설립,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를 위한 연구와 국내외의 여론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 위 글은 <여해강원용목사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브로셔에 게재된 문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