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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 [고등부 최우수상]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 [고등부 최우수상]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

 

6․10민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해 청소년들에게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개최되었던 6․10민주항쟁 25주년 기념 전국 

독후감 공모대회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고등부 최우수상]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게『시대의 불꽃 이한열』 

한진규_서울강서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생이던 어느 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이한열기념관’ 을 가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열심히 다녔던 나지만 처음 듣는 사람의 기념관이라 가는 도중 계속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지만 가서 직접 보고 말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신촌의 어느 뒷골목으로 기억이 되는데 찾기가 힘들어 그곳에 전화를 걸기 위해 어머니가 114로 문의를 했다. 그런데 그 안내원이 자꾸만 ‘이한열요? 이한영?“ 이렇게 되묻자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시며 ”세상에 어떻게 이한열을 모를 수 있지! “ 라며 분노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당시 나는 초등학생이라 기념관을 둘러보고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후에도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음을 맞았던 것만 기억하고 돌아왔던 것 같다.

그 후 ‘이한열’ 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다가 중1이던 2008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행렬에 부모님과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많은 엄마 아빠 또래의 시민들을 보면서 1987년 6월에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참으로 궁금해졌다. 광화문 광장에 뿌려진 전단지들을 집에 가서 읽어보려고 모두 모아오는데 엄마는 그 엄청난 군중속에서 친구를 만나 너무 감격해 하셨고 나 또한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나온 친구를 보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내게 기특하다시며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셨다. 도대체 뭐가 기특한 거지? 왜 엄마는 광장서 만난 오랜 친구에게 고마워하시고 친구 아버지는 내가 기특하다고 하신 걸까?

 

‘이한열’의 삶과 6.10민주항쟁을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지나치게 고대, 중세, 근세 그것도 구한말까지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지금 우리의 삶과 직접 연결이 되는 현대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 미 군정기부터의 역사는 기말 진도에 맞추기 위해 대충 배우게 되어 정말 그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백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박정희의 오랜 독재가 10.26 사태로 종말을 고했지만 곧이어 전두환 군사정권이 1979년 12.12 쿠데타로 들어서고 5.18 광주학살을 저지른 집단이 마침내 장기집권을 꾀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모두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어머니, 공군조종사셨던 아버지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이한열 열사’ 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6월 민주항쟁때 외할머니의 눈을 피해 매일 거리에 나가 친구들과 데모를 하셨는데 (어머니는 당신이 결코 과격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데모에 참가하는 민주학생이 대부분이었다고 증언 ) 6월9일에 이한열학생이 최루탄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듣고 학생시위대가 엄청나게 분노해 마침내 6월10일에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규모로 커졌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같은 시절의 젊은이로서 아버지가 그때 행동하지 않은 시민이었다며 가끔 구박을 하신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공군조종사로 근무 중이셨기에 군인신분으로서 그 대열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민주시민들을 응원하셨다고 항변하시곤 한다. 이한열 열사의 시신이 군용기를 통해 광주로 이송될 때를 대비해 아버지께서는 근무대기중이셨는데 누구보다 가슴아프셨다고 증언하신다. 시대의 아픔을 각자의 위치에서 경험하신 자랑스러운 부모님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린 시절 사진으로 본 이한열열사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겨우 세 살정도 많은 형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 살아계신다면 우리 부모님과 같은 연배이리라. 민주시민으로서 한발 앞선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부모님 덕분에 내가 이한열 열사의 삶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알게 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을 믿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당시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와서 일기장에 유치하나마 나의 생각을 적었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6.10민주항쟁 25주년을 맞아 제대로 이한열 열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입시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현충일에 시간을 내어 < 이한열/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 >을 작정하고 읽게 되었다. 서성란이라는 작가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친구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그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를 기억하기 위해 쓴 책으로 문체상으로는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정확한 근거와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자서전 느낌을 주었다. 술술 읽어 내려가긴 했지만 시대에 대한 고민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지녔던 이 진지한 청년의 삶은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비록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어도 수년전 비슷하게나마 광장에 모여 6.10민주항쟁을 기리던 민주시민들의 모습을 본 나로서는 자꾸만 그 6월 항쟁 현장의 함성들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후 장례에 이르기까지 급박한 하루하루 상황에서는 숨이 막혔다.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대학생 형의 모습 중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분의 얼굴도 보여 더욱 가슴아팠다.

이한열 열사의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한발 나아갔고 학생운동을 했던 청년이 현실 정치인이 되는 세상으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시들은 그가 지은 시들인데 겨우 나보다 세 살밖에 많지 않은 분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이런 치열한 고민들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내용들이었다.

교수가 되고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이한열 열사! 아마 살아계셨더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었겠지만 그는 죽어서 영원히 우리들의 꿈을 지켜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이 책속에 나오는 환경은 25년 전의 일이라 지금 나로서는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당시의 대학생들과 지금의 대학생들을 비교해보면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이기적으로 바뀐 것 같다. 자기 자신의 출세에만 다들 신경을 쓰지 사회문제나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너무들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학생도 아닌 주제에 사정도 모르면서 건방진 소리 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고등학생인 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젊은이라면 당연히 뜨거운 가슴을 안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일 개인의 힘은 나쁜 권력이나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기 힘들지만 그런 개인의 힘들이 모이면 나쁜 권력도 잘못된 정치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역사를 바로 잡는 힘이 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한열 열사 같은 분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물려준 고귀한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나가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이한열 열사가 남긴 일기, 시, 편지글 등을 통해서 보면 시골의 부모님은 서울로 유학간 아들이 행여나 데모대에 휩쓸릴까봐 노심초사했고 그는 정말 착하고 성실한 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좋은 동생이자 형이었던 지극히 평범한 그 시절의 대학생이었다. 그가 국토순례대행진 중에 동학혁명 전적지에서 직접 두발과 심장으로 역사상 최대의 민중항쟁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부분에서 나는 실로 전율을 느꼈다. 그저 내가 국사책에서 달달 외우기만 했던 동학 혁명의 의미를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몸소 깨닫다니..역사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살 청년 이한열의 삶과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몸소 저항을 실천하게 되는 과정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 ‘5.18 백양로에서’에 나오는 ‘최루탄,’찌라시,‘파쇼타도’ 이런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단어들속에서 그의 분노가 짐작되기도 했다.

그의 장례식날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백한 문익환 목사님(내게는 ‘통일할아버지 문익환’으로 익숙하다)의 추도사가 그의 삶을 온전히 대변해주는 듯하다. ‘순결한 그 이름 이한열 열사! 온갖 거짓과 타락과 폭력으로 가득찬 시대에 그는 너무나 착한 양심이었고 너무나 숭고한 용기였으며 너무나 강렬한 우리의 희망’이었다고.

 

아들이 데모할까봐 걱정하던 그 평범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살인마 정권을 향해 울부짖던 모습을 뒤로 하며 이젠 그 아들 덕분에 투사가 되셨다고 한다. 5.18 광주 묘역에서 만난 그의 어머니는 “아들덕분에 엄마는 투사가 되어부럿다 엄마는 죽는 날까지 니 대신 싸울란다. 그러니까 걱정말고 편히 쉬어” 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는 여전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우리 한열이가 죽어서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앞당겼을런가”

살아있는 우리가 평생토록 안고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에 묵직한 책임감이 밀려오지만 즐겁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걱정 말고 편히 잠드소서! 이한열 열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