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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인혁당 추모제 추모시] 베어진 소나무의 밑둥 어루만지며

[인혁당 추모제 추모시] 베어진 소나무의 밑둥 어루만지며

베어진  소나무의  밑둥  어루만지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여덟분의  영전에

-이청화-



1975년  4월  9일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는    죄명을  목에  걸고
북망산  고개  넘어가는  여덟분의  긴  그림자  보고
산새는  붉은  깃털을  세우고  크게  울었습니다.  

그로부터  이  땅의
모든  새들이  깃을  세우고  울었습니다.  
들으면  소름이  돋는  이름  하나를  쪼으며  쪼으며
부엉이도  둘고  학도  울었습니다.  

아  아  그  때의  그  시뻘건  눈
봄날이  피운  꽃은  보지  않고  
오직  남의  피  위에,  죽음  위에
제  금빛  누각만  지으려  했던  독재자의  눈,

그러나  보셨지요
그것도  결국은  
좋은  씨앗을  안고  건너  온  시대의  
발에  밟히는  한낱  기와조각이  되었음을

그리고  새로  밝힌  새  불빛아래
검은  휘장을  걷고,  검은  휘장을  걷고
그  안에  숨어있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한  얼굴도
마침내  마침내  찾아낸  것을

아직  바라는  열매가  익어
뚝  뚝  떨어지는  나무  밑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마름으로  쓴  주소  한  장  들고  예까지  왔으니
어찌  입춘대길을  써  붙인  그  집이  멀었겠습니까?

목련꽃  너머의  영령이시여
베어진  소나무  밑둥  어루만지며
그  위에,  다시는  톱도  도끼도  베지  못할
또  하나의  낙락장송을  우러러  봅니다.  

이제  무죄로도  깨우지  못할  죽음  보면
바늘  찔린  듯  아파오는  두  귀에
당신들의  이야기  같고,  숨결같은  
저  솔바람소리  들려오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