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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사

고대 민주열사합동 추모제

 ○ 일 시 : 2009년 6월 21일(일) 13:00

 ○ 장 소 : 고대 민주광장 추모비

 ○ 담당자 및 연락처: 정진만 010-6254-7633

 ○ 열사약력


  * 김두황

  - 1960년 6월 23일 서울 출생

  - 1980년 고려대학교 정경계열에 입학

  - 1982년 3월 학회활동을 주도

  - 1983년 경제학회 학회장

  - 1983년 3월 학생운동 관련 성북서에 연행되어 강제징집됨

  - 1983년 6월 18일 보안사의 `녹화사업` 도중 6월 18일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함


동지는 3남 3녀중 3남으로 태어나 `80년 고대 정경계열에 입학하였다. 3학년 말, 학내활동을 반성,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하던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축제 및 학도호국단 선거, 4.19행사 등에 관해 토론하고 방향과 대안을 계획하던 중 `83년 3월 8일 성북경찰서에 연행되었다. 18일 강제징집 되어 보충대에 입대하였다. 그 후 `83년 6월 18일 보안사의 녹화사업으로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군당국은 내성적 성격으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소외감 내지는 열등감으로 인한 복무염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동기를 발표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사건 당일, 오후 6~8시경 단발음의 총성이 소속대 인근에서 먼저 발생하였고, 보고지연 지시와 초동 현장출동이 이루어진 후 헌병대 수사기록상의 현장에서 연발음의 총성이 발생한 이유와 보안사령부로 보고된 「사망사건보고서」를 기무사를 통해 공개를 요구하였으나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




  * 임혜란

  - 1965년 4월 17일 서울 출생

  - 1984년 숭의여고 졸업. 고려대 가정교육학과 입학, 고대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

  - 1988년 운동 위해 중퇴, 인천 링크시스템 입사

  - 1989년 대한 트랜스(주) 입사,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

  - 1990년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해고당함 업무방해 혐의로 6개월간 옥고

  - 1991년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 및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

    선교문화원 창립. 선교문화원 `땀방울산악회` 간사로 활동

  - 1992년 9월 17일 백혈병으로 입원, 투병활동

  - 1993년 9월 9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운명


동지는 서울출생으로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가정교육학과에 입학하여 고대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 땅의 사회적 모순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었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88년 대학교를 중퇴한 이후 인천 링크시스템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89년에는 보다 적극적인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구로1공단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트랜스(주)에 입사하여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쟁의와 관련하여 부당해고와 업무방해를 하였다는 혐의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출소 이후 동지는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 및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하였고, 문화원 `땀방울산악회` 간사로 활동하던 중 백혈병으로 `92년 9월경부터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년여의 투병에도 불구하고 동지는 `93년 9월 9일 꽃다운 나이에 신촌세브란병원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 유재관

  - 1962년 서울 출생

  - 1981년 서울 한성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 1983년 학내시위 주도로 장기간 수배

  -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로 재입학

  - 1985년 고려대 졸업

  - 1987년 인천 신흥목재(우아미 가구)에서 활동 중 해고

  - 1989년 인천 목재 노동자회 실무자로 활동

  - 1990년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남부 노동반 반장. `인사연` 제8차 정기총회 준비위원

  - 1991년 6월 27일 운명


`84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수배 해제되어 학회건설에 노력하던 동지는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역량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며, 젊은 지식인으로서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당시 동지는 구로지역을 거쳐 인천으로 가게 되고, 주로 목재단지 근처에 방을 얻어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목재 노동자회와 인노회, 인사련의 활동을 통해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통일 그리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활동을 앞장서서 전개하였다. `91년 6월 27일 1시경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동지는 새벽 1시 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련`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럴 경우 총회자료가 압수당하게 되고 조직에 대한 큰 타격이 예상되어 이를 막으려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 유구영

  - 1957년 출생

  - 1978년 청주고등학교 졸업

  - 1981년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신학대학원 입학

  - 1988년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 1990년 대한 중전기 분회장

  - 1993년 서울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정책실장

  - 1995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정책부국장

  - 1996년 5월 2일 새벽 2시 25분경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암으로 운명


동지는 `78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에서 유신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81년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간암 중기의 하늘이 무너지는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 밤에도 동지는 민주노총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이면서 동지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새벽 4시까지 정리했다. 동지가 민주노총의 정책기획국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꿈에도 염원하는 민주노총 건설이 실현되고, 자신의 땀이 밴 그 조직이 이제 막 새롭게 활동을 펼치려던 참이었던 `96년 5월 2일, 그의 병세가 악화되어 여러 번의 입원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지는 새벽 2시 25분경, 아직 채 못 피운 서른아홉살의 짧은 생애로 운명하였다.




  * 유인식

  - 1963년 7월 인천 출생

  - 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입학

  - 1985년 노동현장에서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 1986년 샘터교회 청년회 운영위원으로 활동

  - 19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원, 6월 대투쟁 적극 참여

  - 1987년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체육부장으로 참여하여

    동료를 구하고 운명


`82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동아리에 가입해서 고교시절부터 생각해왔던 민주화의 대열에 앞장섰다. 동지는 학교 내에 경찰이 진주하고 학내 집회조차 열기가 힘들었던 1,2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으며, 이때부터 노동자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곤 했다.


`86년 9월부터 인천대 앞에다 사회과학 전문서점 `밀물`을 운영하며 또 다른 현장생활을 준비하던 동지는 `87년 박종철 추모기간에는 같이 공부한 노동청년들과 거리로 나가 군부독재의 만행을 폭로하고, `87년 5월 그동안 같이 고민했던 노동청년들을 모으고 좀더 많은 대중들을 모으고자 샘터교회 청년회를 만들고 실제적으로 홍보부를 맡아 운영해 나갔다. `87년 7월말 동지는 인기노의 수련회 도중 동지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자 멀리서부터 뛰어와 자신이 수영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최선두에 서서 동료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운명하였다.


 

행사 정보

일요일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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