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으로 바로가기

이달의 행사

김주열열사 범국민장

김주열열사 범국민장


○ 일 시 : 2010년 4월 11일(일) 11:00 ~ 15:30


○ 장 소 : 마산 중앙부두


○ 담당자 및 연락처: 서승오 사무국장


○ 열사약력


-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9번지에서 부친 김재계, 모친 권찬주 여사와의 슬하에서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출생


- 1950년 2월 옹정국민학교(현 금지초등학교)에 입학


- 1956년 2월 금지중학교입학하고 


- 1959년 2월 남원농업고등학교(현 용성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한 한기만에 그만둠


- 1960년 1월 서울 서대문 현지동(고종사촌형 장기환)에 머물며 YMCA 고교입시학원 영어반에 다님. 서울고등학교에 원서를 냈으나 은행원이 되어 가계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로 마산 상업고등학교 진학을 결심


- 1960년 3월 10일 경남 마산고등학교(현 용마고)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마산시 장군동 외조모 댁으로 감


- 1960년 3.15일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두고 형 김광열과 함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1차의거에 참가하였다가 이날밤 8시~10시 사이 시청부근 남전 마산지점 앞에서 최류탄에 맞아 사망함. 경비주임 박종표 등 경찰이 시신을 월남동 마산세관 앞바다에 유기하여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 1960년 3월 16일 그의 형이 마산상고 합격증을 대신 찾았다.


- 1960년 4월 11일 어머니 권찬주여사가 마산으로가 열사를 찾아다니면서 김주열을 모르는 마산시민이 알게 되었다. 


- 1960년 4월 11일 실종 27일 만에 어머니 권찬주여사가 열사를 못찾고 남원으로 귀향하던 시간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1960년 4월 14일 경찰이 시신을 탈취하여 고향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우비산에 묻었다


- 1995년 4월 11일 모교 마산상업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 하였다.


당시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부정 부패가 극한 상황에 달해 3.15부정 선거를 감행하였고 드디어 3.15마산 민중의 민주화 의거가 폭발 이시위에 선봉에 섰다. 마산시청 앞에서 순국하였으나 경찰은 시신을 숨겨 행방불명으로 처리 4월 11일 행방불명되었던 주검이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름


시신의 오른쪽 눈에는 미국제 최루탄이 박힌채 주검에는 퍼렇게 이끼가 낀 상태였다. 경찰은 남해바다 멀리 수장하였으나 밀물을 타고 27일간을 흘러 마산앞 바다까지 찾아온 것이다. 허종 신문기자가 찍은 처참한 주검의 사진은 전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케 했으며 열사의 죽음으로 제2의 항쟁으로 불타올랐고 이 항쟁은 서울, 부산을 비롯 전국으로 확산 4.19혁명을 완성해 냈고 부패한 독재자 이승만은 4.26일 하야 성명을 내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의 서막이 되는 4.19혁명, 그 불길을 올린 김주열동지는 당시 4.19혁명의 주역이었던 많은 고등학생처럼 꿈 많고 순수한 학생 이었다.

행사 정보

일요일 2010-04-11
지도보기 마산 중앙부두 지도에서 보기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