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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사

4.9인혁열사 35주기 서울추모제

4.9인혁열사 35주기 서울추모제 


○ 일 시 : 2010년 4월 9일(금) 18:00


○ 장 소 : 명동 서울 YWCA 4층 대강당


○ 담당자 및 연락처: 안주리 사무국장


○ 열사약력


 


◉ 서도원열사


- 1923년 3월 28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출생, 대구매일신문 기자


- 1960년 4.19이전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생주임, 동양사 강의


- 1961년 4.19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


- 1961년 5.16이후 혁명재판에서 7년 언도, 2년 7개월 복역


- 1967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 무죄판결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 재건단체 사건으로 구속, 당시 침술사


-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혁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 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경남창년 선산에 안장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동지는 &rsquo23년에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였다. 4.19 이전에는 영남(청구)대학 학생주임으로 정치학을 강의하였고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다. 동지는 &rsquo60년 4.19 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으로 활동하다 5. 16이후 군사재판에 의해 2년 7개월 복역하였다. 출소 이후에도 유신반대 민족통일을 위해 투쟁하다가 &rsquo75년 4월 9일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인혁당 재건위&rsquo사건으로 사형당하였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 도예종열사


- 1924년 12월 25일 경북 경주시 서악 출생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4·19 이전 대구대학교 (현 영남대학) 경제학 강사 


- 4·19 이후 경북 영주군 교육감 당선, 민주민족청년동맹 간사장


- 1964년 소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3년형 (당시 삼화건설 회장)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사건으로 구속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rsquo24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동지는 경북 상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4.19이후 경북 영주군 교육감 당선되기도 한 동지는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간사장, 민자통 중앙상무집행위 조직부장 등으로 활동하다 &rsquo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이후 유신반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다 유신 독재권력에 의해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사형당하였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 송상진열사


- 1928년 9월 18일 대구시 동구 백암동 출생 대구사범 대구대 경제학과 졸업 공산초등학교, 대구초등학교 교사 4·19 이후 교원노조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총무국장


- 1964년 소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연행, 무혐의 석방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양봉업)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rsquo28년 대구에서 출생한 동지는 공산국교, 대구국교 등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4.19 이후 교원노조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도위원회 사무국장등으로 활동하다 &rsquo64년 1차 인혁당 사건시 연행되었으나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유신반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다 유신독재권력에 의해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사형당했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 우홍선열사


- 1931년 출생 6·25 당시 고교생으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 육군대위 예편 4·19 이후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역임. 5·16 이후 수배


- 1964년 1차 인혁당사건으로 구속 1년형, 집행유예로 석방 (당시 골든 스탬프사 상무)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동지는 &rsquo31년 경남 울주에서 출생하여 6.25에 학도병으로 참가한 후 육군 대위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4.19 이후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민자통 조직위 간사로 활동하던 중 5.16 이후 수배되었다. 그리고 &rsquo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후에도 유신반대 민주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투쟁하시다 유신독재권력에 의해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 하재완열사


- 1931년 1월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출생 단국대학교 졸업


- 1950년 입대


- 1957년 중사 제대, 양조장 경영. 4·19 이후 민주자주통일협의회 경상북도 협의회 부위원장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 사건으로 구속 (당시 건축업)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4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 현대공원에 안장)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 김용원열사


- 1935년 경남 함일군 출생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4·19 이후 서울대 학생민통련 참가. 5·16 이후 연행, 조사받고 나옴 


- 1964년 소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연행, 조사받고 나옴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경기여고 교사)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동지는 &rsquo35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4.19 이후 서울대 학생민통련 대의원등으로 활동하였다. 5.16이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조사받고 나온 이후 동양중고, 경기여고 교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계속하여 유신반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다 박정희 권력에 의해 인민혁명당재건사건재건위으로 사형 당하였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이수병열사


- 1936년 12월 경남 의령군 부림면 출생 부산사범, 경희대학교 졸업. 4·19 이후 경희대학교 학생민족통일연맹 위원장. 5·16 이후 구속, 혁명재판에서 15년형 선고, 7년 복역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당시 삼락 일어학원 강사)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경남 의령군 신반리에 안장)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경희대학교에서 추모제 진행


동지의 생애는 철저히 조국과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일관된 것이었다. &rsquo60년 11월 12일 경희대 민족통일연구회를 발족시켜 수차에 걸쳐 세미나와 대강연회를 개최, 통일문제에 관한 인식을 넓혀 가는 한편 민통련(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의 전국조직 결성에 적극 참여하였다. &rsquo68년 4월 17일 7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동지는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변혁운동에 뜻을 둔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한 은밀한 접촉을 재개하게 된다. 독서회, 강좌를 통하여 혁신계를 비롯 학생, 노동자, 제 민주세력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활동을 전개해 나가던 동지는 민청학련 상층부로 지목된 &lsquo인혁당 재건위&rsquo사건으로 사형 당하셨다.


 


◉여정남열사


- 1945년 5월 대구시 남일동 출생 경북고,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 1964년 6월 3일 한일회담 반대투쟁 주도이래 학생운동으로 3번 제적, 군입대


- 1969년 복학 


- 1971년 4월 정진희 필화사건으로 구속


- 1972년 11월 10일 유신반대 포고령위반으로 구속


-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 제 15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완, 이수병, 여정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당함.


&rsquo45년 대구에서 출생한 동지는 경북대학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3번 제적되었다. &rsquo71년 정진회 필화사건과 &rsquo72년 유신반대 포고령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출소 이후 . 민주와 민족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유신 독재권력에 &lsquo인민혁명당재건 단체사건&rsquo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rsquo75년 4월 9일 이날은 국제 법학자협회에 의해 &lsquo사법 사상 암흑의 날&rsquo로 규정된 날이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조작된 8명이 유신정권의 철저한 조작으로 사법 살해된 날이다


 


9. 4.9인혁열사 35주기 대구추모제 


○ 일 시 : 2010년 4월 10일(토) 15:00 11:00 여정남공원 제막식과 동시 진행


○ 장 소 : 여정남공원 건립부지(경북대학교 사회대 앞 동산)


○ 담당자 및 연락처: 박근식


 


10. 고 김상진열사 35주기 추모제


○ 일 시 : 2010년 4월 11일(일) 11:00 서울역 맞은편 금호빌딩 10시출발


○ 장 소 : 벽제 국제공원묘지 


○ 담당자 및 연락처: 김원봉 사무국장


○ 열사약력


- 1949년 11월 25일 서울 출생


- 1968년 보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과 입학


- 1968년 6월 이념 서클 &lsquo한얼&rsquo에 가입


- 1971년 가을 군입대


- 1974년 가을학기에 4학년 1학기 복학


- 1975년 2월 박정희 정권은 자신이 약속했던 구속학생과 교수들의 복학, 복직을 불허하고 극심한 언론탄압을 일삼음. 이에 4월 11일 서울대 농대 교정에서 있었던 연행학생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는 자유성토대회에서 3번째 연사로 등장하여 양심선언문 낭독후 할복자결. 그러나 서울대생 1,000여명은 긴급조치 9호 선포 등의 탄압에도 김상진 동지 장례식을 거행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임 


- 4월 12일 서울 의대 이송 도중 운명


- 제 8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rsquo68년 서울대 농대에 합격하여 대학생활 중 이념써클 &lsquo한얼&rsquo에 가입하여 문학과, 사회사상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많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등 사회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갖고 실천하게 된다. &rsquo75년 4월 서울대는 학원자율화 문제와 동아일보의 언론자유 문제로 인해 학생총회와 시위가 벌어지고, 자유성토대회 3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 동지가 양심선언문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끝부분의 &lsquo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rsquo 다음, 원문과는 달리 &lsquo나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완전한 이성을 되찾아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갖다가 명실상부하게&hellip&rsquo에 이르러 20cm가량의 과도를 품안에서 끄집어내어 할복을 하였다.

행사 정보

금요일 2010-04-09
지도보기 명동 서울 YWCA 4층 대강당 지도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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