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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사

고 최덕수열사 24주기 추모제

고 최덕수열사 24주기 추모제

 

○ 일 시 : 2012년 5월 20일(일) 11:00

○ 장 소 :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 열사약력

- 1968년 전북 정주시 출생

- 1984년 정읍 배영고등학교 입학

- 1987년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 입학후 학생운동에 헌신. ‘서도회’써클 가입, 활동. ‘호남향우회’회장 역임. ‘동학운동사 연구회’가입, 활동

- 1988년 1학기 가정형편으로 휴학. 공장생활

- 1988년 5월 17일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광주항쟁 성명서 낭독

- 1988년 5월 18일 시계 탑 앞에서 11시경 '광주항쟁진상규명', '국조권 발동'을 요구하며 분신

- 1988년 5월 26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분신 9일 만에 운명

- 제 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1988년 5월 18일 오전 11시경 최덕수 동지는 “광주항쟁진상규명”, “국조권 발동”을 외치며 시계탑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병원에서도 “광주는 아직도 살아있다”, “나는 괜찮으니 돌아가서 투쟁하라”고 동료에게 당부하며 분신 9일 만에 운명하였다.

87년 민중의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12월)와 국회의원 선거(88년 4월)를 거치면서 정국의 여소야대로 치달으며 각 당의 당리당략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즉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광주항쟁의 진상규명” “삼청교육대”언론탄압“ ”5공화국의 부정비리(6공도 포함)“ ”전두환 이순자의 부정비리 소환조사 구속“ 등의 진상규명은 허공에 떠버린 뜬구름이었다. 이러한 기회주의와 당리당략적인 모습을 보며 최덕수 동지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고통속에서도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2001년 정부에서는 최덕수 열사를 민주화운동관련 사망자로 인정했다.

행사 정보

일요일 2012-05-20
지도보기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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